본문 바로가기
Issues

치매 간병 후기 4편 — ‘잔소리’가 사라진 다음에 깨달은 것들

by 누름돌 2025. 11. 29.
반응형

치매 간병을 시작한 지 2년째 되던 어느 날, 나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바로 어머니에게서 평생 듣던 잔소리가 더는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어릴 때는 “옷 챙겨 입어라”, “밥은 먹었냐” 같은 잔소리가 귀찮기만 했다. 직장인이 되고 집을 나와 살 때는 잔소리가 줄어든 대신, 가끔 전화로 “너 요즘 잘 지내니?”라고 묻는 목소리가 오히려 반가웠다. 하지만 치매가 찾아온 후, 어머니는 그 “잔소리의 언어”를 잃어버렸다.

 

이 사실을 깨달은 날, 나는 이유도 모르게 울컥했다.

■ ‘조언’이 아닌 ‘감정’을 잃어가는 과정

치매 환자들은 언어 기능보다 감정 기능이 먼저 무뎌지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도 그랬다.
어떤 감정으로 말해야 하는지, 무엇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지,
심지어 내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점점 모르게 되는 듯했다.

 

“엄마, 나 왔어.”
“그래… 어… 왔구나?”

반가움도, 걱정도, 옛날의 날카로운 잔소리도 사라지니,
남은 건 마치 ‘껍데기만 남은 언어’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나는 그것이
‘감정의 부재’가 아니라 표현 방식의 변화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변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표현 능력’

치매 환자의 감정은 여전히 안쪽 깊숙이 살아 있다고 한다.
다만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기억·언어·판단 능력이 사라져 갈 뿐이다.

 

어머니도 가끔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으려 할 때가 있다.
말은 흐릿하고 상황 파악은 되지 않지만,
그 손의 온기는 분명히 이야기한다.

“그래도 넌 내 아이야.”

 

나는 그 한 번의 손짓에
지난 2년의 고된 간병 시간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 하루 중 가장 힘든 시간, 그리고 가장 기쁜 시간

치매 간병에는 유난히 감정의 변곡점이 많다.
어느 날은 새벽 3시에 잠에서 깨서 불안을 호소하고,
어느 날은 하루 종일 말이 없고,
또 어느 날은 평소에는 하지 않던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한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하루에도 한순간,
그리워했던 예전의 어머니가 잠깐 돌아오는 시간이 있다.

“너 살 좀 빠진 것 같다.”
그 말이 얼마나 큰 감동이었는지 모른다.
문법도 매끄럽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어머니가 딱 2초 동안은 나를 ‘예전의 아들’로 바라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2초를 위해
나는 하루의 모든 수고를 견딜 수 있었다.

■ 나의 하루는 여전히 ‘치매와 살아가는 과정’

치매 간병을 하다 보면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고,
기억과 감정이 비틀리고,
어머니와 나는 문장보다 몸짓으로 소통하게 된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잔소리를 하던 어머니를 잃었지만,
대신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