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인구 절벽에 직면해 있다. 고령화 속도는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빠른데 출산율(합계 출산율 0.81명)은 꼴찌다.
마침내 2021년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총인구가 5174만 명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 감소했다. 생산연령 인구의 감소폭보다 고령 인구 증가폭이 더 큰 탓에 노인부양비는 매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인구절벽' 현황(2021년)
출산율은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준으로,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는 2.1명으로 추산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이의 평균은 커녕 절반에도 못 미치는 0.81명(2021년)이다.
출산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지면 30년 뒤 출생 인구는 절반으로 감소한다. 출산율이 2.1 아래로 내려가면 저출산, 1.3 이하로 3년 이상 지속되면 초저출산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초저출산 현상이 시작돼 20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출산율 하락 속도가 유례없이 빠르고 초저출산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급기야 2021년 총인구가 정부 수립 이후 72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넘어서는 인구 자연감소는 2020년부터 시작됐지만 총인구가 감소하는 시기는 2029년으로 예상됐었다.
학계에선 현재 상황이 지속된다면 일하는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2030년에 ‘인구절벽’을 넘어 ‘인구재앙’을 체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초저출산과 초고령사회
저출산은 인구 고령화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8년 고령 인구가 14% 이상인 ‘고령 사회’에 접어들었는데, 그때부터 불과 7년 만인 2025년에 초고령 사회(고령 인구 20% 이상)에 진입하게 된다. 세계에서 이렇게 고령화가 빠른 나라는 없다.
2021년 사상 첫 인구 감소 속에서 우리 인구 중위연령은 44.5살로 1년 전보다 0.6살 늘었다. 2021년에 유소년인구(0∼14살)가 16만 7천 명 줄고 생산연령인구(15∼64살)는 34만 4천 명 줄었는데, 고령 인구(65살 이상)는 1년 전보다 41만 9천 명 증가했다. 전체 인구의 16.8%가 노인이다.
노인을 부양하는 사회적 비용도 커지고 있다.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고령 인구 비율로 나타내는 ‘노년부양비’는 23.6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일하는 사람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셈이다.
고령 인구의 ‘초고령화’ 현상도 나타났다. 고령 인구 가운데 85살 이상 초고령자 인구가 1년 전보다 9.1% 증가해 가장 크게 늘었고, 전체 고령 인구 중에서 초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10.1%로 처음 10%대로 올라섰다. 이들 초고령 인구 4명 중 1명(25.1%)은 1인 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의 인구추계로는 오는 2040년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부양하는 노인 인구가 60명이 되고 그다음 2065년이 되면 100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초고령화사회로 접어들게 되면 노인들을 먹여 살릴 재정이 부족해진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65살 이상 빈곤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젊은 세대는 계속 줄어드는데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면 우리 사회의 부담이 가중될 것은 뻔하다.
통계청이 유엔 인구전망과 우리나라 장래인구추계를 비교 분석한 결과 50년 뒤 우리나라의 노인 부양 부담은 세계 평균보다 3배 이상 높아질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인구절벽'과 원인
저출산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전체를 가로지르는 주요 걱정거리다. 중국은 1961년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일시적으로 인구가 줄어든 뒤 61년 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유엔 경제사회국이 2022년 7월 내놓은 ‘유엔 세계 인구 전망 2022년’ 보고서를 보면, 동아시아의 저출산 위기가 유독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세계 238개국의 합계 출산율(2021년 기준)을 낮은 순으로 열거하면, 세계 10위권 내에 홍콩(1위·0.75명), 한국(2위·0.88명), 싱가포르(5위·1.02명), 마카오(6위·1.09명), 대만(7위·1.11명), 중국(10위·1.16명) 등 6개국이 포진해 있다. 세계 평균 ‘합계 출산율’(15~49살 가임기 여성 1명이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아이 수)은 2.3명이지만 동아시아 주요국은 1명을 넘기기 쉽지 않았다.
상위 20위권 안의 국가는 동아시아 7개국, 유럽 3개국(우크라이나·이탈리아·스페인)을 빼면 대부분 군소 도서 국가들이다. 전 세계가 산업화되며 공통적인 저출산 현상을 겪었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이 유독 더 심한 진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럴까.
동아시아 국가들의 출산율이 낮은 것은 높은 양육비와 집값 등 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이 지역의 깨지지 않는 ‘유교 문화’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 있다. 이 문화권에선 육아와 가사를 특정 성별의 책임으로 돌리다 보니, 여성들의 경력 단절 현상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출산을 기피하는 현실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국제 인구 저널들도 저출산 위기를 겪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유교 문화권’(Confucianism)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 지역에서 유교는 종교이자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2천 년 이상 사회 전체에 윤리 원칙을 제공해 왔다. 학자들은 그에 따라 이 지역에 △성에 관한 도덕적 엄숙주의 △엄격한 성 역할 구분으로 한쪽 성에 집중되는 육아 부담 △사회적 성취를 중시하는 입신양명 문화 △과거제 전통으로 인한 학력주의 △삶의 만족도보다 근면성실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등 출산율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고유의 특징’이 있다고 지적한다.
같은 아시아라도 유교 문화권이 아닌 국가들은 저출산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의 출산율은 2.75명이고, 불교 국가인 베트남은 1.94명이다.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1.80명), 인도네시아(2.18명) 등도 비슷한 수준이다. 힌두 문화권인 남아시아의 인도(2.03명)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3.47명),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3.08명), 우즈베키스탄(2.86명) 등도 2~3명대에 이른다.
대륙별로 보면, 북아메리카(1.64명)와 라틴아메리카(1.86명) 역시 상황이 양호한 편이고, 개발이 더딘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4.6명)과 북아프리카·서아시아(2.8명)는 세계 평균치보다 높다. 서아시아는 이란(1.69명), 이라크(3.5명), 사우디(2.43명) 등 세계 평균치 안팎으로 두터운 청년층을 보유하고 있다.
고령화로 경제가 활기를 잃고 재정과 사회보장 비용이 늘어나는 등 역효과를 상쇄하려면 출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출산율 제고 정책은 총체적 실패다.
국회 예산정책처 발표를 보면 2006년 이후 16년간 정부가 저출산 예산으로 지출한 금액은 200조 원에 육박한다. 최근에는 매년 40조 원을 쓰는데도 출산율은 2017년 1.052명에서 2021년 0.81명으로 떨어졌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만든 관련 제도가 2천개쯤 된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정책을 쏟아냈는지 모를 정도다.
출산율 저하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출산의 주체가 돼야 할 청년세대가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불안을 더 많이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1996년까지만 해도 43만건이던 결혼 건수는 2016년 28만 건으로 급격히 줄었고, 2021년에는 19만 건으로 떨어지면서 처음으로 20만 대가 붕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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