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rean Politics

한국 선거제도 이해하기

by 누름돌 2022. 6. 16.
반응형

정치는 물리학보다 더 어렵다.” ‘상대성이론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말이다. 매일 관심을 가지고 신문의 정치·경제·사회면의 뉴스를 찾아서 읽는데도, 어느 순간 이해하기 힘든 개념과 용어가 나오면 당혹감을 가질 것이다.

 

특히 정치면의 선거제도와 관련해서는 이해하기 힘든 용어뿐만 아니라 수학까지 동원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면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인슈타인도 어렵다고 생각했으니, 기죽지 말자.

 

 

 


 

다수제와 비례제

 

조금은 번거롭고 성가실지 모르지만 21대 총선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선거제도에 대한 이해를 시도해 보자.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선거제도는 크게 다수제와 비례대표제로 구별할 수 있다.

 

다수제(majoritarian electoral system)는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 중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후보자가 당선되는 제도이다. 우리에게 이 제도는 익숙하다. 어릴 적부터 회장선거, 동호회 회장 선거, 동장선거 등 일상의 선거에서 우리는 이러한 선거제도를 이용했고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다수제는 단순다수제와 절대다수제로 나뉜다.

 

단순다수제는 상대다수제라고도 불리는데, 선거에서 한 표라도 더 많이 득표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와 미국 의회선거가 여기에 해당된다. 반면 절대다수제는 과반이상을 획득해야 당선되는 구조이다. 50% + 1표의 당선자가 나오도록 기계적으로 설계되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선거에서는 다수의 후보자가 나오기 때문에, 1차 투표에서 과반이상을 획득하기 힘들다. 그래서 1차 선거 후 1~2주 후에 1등과 2등의 득표율을 획득한 후보를 대상으로 2차 투표를 실시한다. 프랑스가 대표적인 국가이다.

 

또 다른 종류의 선거제도는 비례대표제이다. 비례대표제(proportional representation system; PR)는 득표수에 비례하여 정치적 대표를 실현하는 것이다. 영국을 제외한 서유럽국가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다.

 

20세기 초에 정치적으로 다수자 지위에 있던 집단들이 소수집단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그들을 기존 정치체제에 편입시키는 일환으로 도입되었다고 한다.

 

두 선거제도는 장단점이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득표율과 의석율간의 불일치, 즉 불비례정도의 차이점이 있다. 다수제는 불비례정도가 큰 반면, 비례제는 그 정도가 작다.

 

다수제와 가까운 한국의 선거제는 불비례성이 높아, 유권자들이 투표한 표가 정당과 후보자의 의석 할당에 반영이 잘 되지 않는다.

 

 

병립형과 연동형

 

한국의 선거제도는 단순다수제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한 12표 혼합제(two-vote mixed system) 혹은 혼합선거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한명의 유권자가 다수제 선거에서 1표로 후보자를 선택하고, 또한 비례대표제 선거에서 지지정당을 선택하는 1표를 행사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유권자는 혼합형 선거제도의 경우 단순다수 소선거구제로 진행되는 후보자 투표에서 당선 가능성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진행되는 정당 투표에서는 순수하게 선호를 표명해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12표 혼합제에도 두 가지 종류의 선거가 있다. 하나는 병립형(parallel)이고 또 하나는 연동형(compensatory)이다. 우선 한국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던 것은 12표 병립제였다. 후보자 투표와 정당 투표에 의해 배분되는 의석이 상호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 상대적으로 다수결 선거제도의 특징이 강한 제도이다.

 

반면 12표 연동제는 각 정당의 의석수가 제2투표(비례대표 선거)에서의 정당투표 득표율에 비례하도록 한다. 병립형보다는 비례성의 수준이 높다.

 

혼합형 선거제도의 취지는 다수제 선거제도에서 나타나는 득표와 의석간의 불비례성(disproportionality)을 비례대표제 방식의 도움을 통해 완화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회의원 정수 300명 가운데 추가 의석(비례의석)의 규모는 47석으로 전체의석의 17%에 불과하며 단순다수제 선거제도로 인한 불비례성을 완화시키는 효과는 매우 미미하다. 또한 지역구선거에서 사표(死票)가 다수 발생하는 등 국민의 의사가 선거결과에 정확히 반영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비례성이 높지 않은 선거제도를 가진 나라다. 거대 정당은 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가져가고, 소수 정당은 득표율에 미치지 못하는 의석을 가져간다. 민의가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권자의 뜻을 왜곡하고 정치발전과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에서 50.92%의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을 획득하고도 전체 의석의 92.7%를 차지했다(110석 중 102). 반면 자유한국당은 25.24%의 득표율을 보였지만 의석은 5.4%에 불과했다. 심각한 불비례성이다.

 

경기도는 더하다. 더불어민주당이 52.8%의 정당득표율을 획득했지만, 의석은 95%를 싹쓸이 했다. 자유한국당은 25.4%의 정당득표율을 획득했음에도 의석은 2.8%에 그쳤다. 다른 지역의 경우도 비슷한 결과였다(지방선거도 총선과 의석배분 방식이 거의 유사하다).

 

<혼합식 선거제도의 의석비>

국가 지역구 비례 지역구 대비 비례의석 비율
한국 253 47 5.38 : 1
태국 400 100 4.00 : 1
필리핀 233 58 4.02 : 1
파키스탄 272 70 3.89 : 1
타이완 176 49 3.59 : 1
루마니아 315 97 3.25 : 1
세이셸 25 9 2.78 : 1
베네수엘라 110 52 2.12 : 1
레소토 80 40 2.00 : 1
타지키스탄 41 22 1.86 : 1
일본 300 180 1.67 : 1
멕시코 300 200 1.50 : 1
세네갈 90 60 1.50 : 1
스코틀랜드 73 56 1.30 : 1
뉴질랜드 65 55 1.18 : 1
볼리비아 68 62 1.10 : 1
리투아니아 71 70 1.01 : 1
독일 299 299 1.00 : 1
우크라이나 225 225 1.00 : 1
안도라 14 14 1.00 : 1
조지아 73 77 0.95 : 1
헝가리 176 210 0.84 : 1
기니아 38 76 0.50 : 1
아르메니아 41 90 0.46 : 1

출처: 김종갑

 

 

 

1인 2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이러한 사유로 정치권도 오래 전부터 현행 선거제도의 불합리성을 심각하게 생각했다. 선거제도 개편의 본질은 정당이 받은 득표율과 그 정당의 의석수 비율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비례대표제연동형 비례대표제든 국회는 선거결과의 비례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화두였다.

 

이때부터 독일식 비례제는 우리와 같은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혼합식 선거제도이면서도 득표와 의석점유의 높은 비례성을 보여 큰 관심을 받아왔다. 독일식 비례제(German mixed member proportional)도 우리와 같은 12표제 방식이다. 유권자는 2표 중에서 1표는 지역구후보에게, 다른 1표는 선호하는 정당에 기표한다.

 

그러나 독일식 비례제는 투표수를 의석수로 할당할 때, 정당이 얻은 득표율로 전체 의원총수를 결정하고, 당선인은 지역구의원과 비례대표의원의 순으로 채우는 연동형방식이다.

 

또 하나의 큰 차이는 한국의 국회의원 의석수 300석은 하늘이 무너져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독일은 매번 바뀐다. 왜냐하면 독일식 비례제에서는 정당득표로 배분된 의석수보다 지역구의석이 많아 초과의석(overhang seat)이 발생할 경우, 그에 대한 의석보정(seat compensation)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아렌트 레이파트(Arendt Lijphart)<민주주의 양식(Patterns of Democracy)>에 따르면, 총선 결과에서 나타나는 불비례성(실제 의석수로 반영되지 못하는 유권자 표의 비중)은 한국이 21.97%로 독일의 2.55%에 비해 현격히 높다.

 

한국이 그만큼 사표가 되는 표의 비율이 높다는 의미다. 그래서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도입해 승자독식과 민의 누수를 방지하자고 주장했다. 독일식 선거제도가 대안으로 거론되며, 많은 정치인들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전문가들이 지지하는 제도가 되었다.

 

슈가트와 워텐버그에 따르면 19세기말부터 시작하여 20세기에 진입하여 추진된 선거제도 개혁에서는 비례대표제가 많이 도입되었다. 그런데 20세기 말부터는 2표 혼합제 채택의 추세가 있어 이를 21세기 선거제도라고까지 일컫기도 한다.

 

혼합제의 도입은 양당제 경향을 보이면서도 소정당의 대표성이 제고되었다는 점에서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현재 독일식 비례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국가로는 뉴질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등이 있다.

 

마침내 한국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입을 핵심 내용으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20191227일 국회 본회를 통과했다. 20181215일 여야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큰 틀에서 합의한 지 377일 만이다.

 

득표율보다 과대 대표되어온 거대 양당의 몫은 줄이고, 과소 대표된 중소정당의 의석은 득표율에 좀 더 근접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개혁성이 뚜렷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의회정치를 지탱해온 소선거구-단순다수대표제에 기반 한 양당제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선거법에 따라 20204월 치러질 21대 총선은 지역구 253, 비례대표 47석 총 300석으로 유지하되,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에만 정당득표율을 50% 연동시키고, 나머지 17석은 현재와 같은 병립형으로 한다.

 

 

 

출처: 한겨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계산방식

 

 

유권자가 기존처럼 지역구에 1, 지지정당에 1표를 찍는 것은 변함이 없다. ‘연동형이란 정당득표율과 지역구 의석수를 연동시켜 비례대표 의석수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정당득표율이 의석수 배분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표심을 온전히 반영하여 불비례성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총의석수는 300석으로 고정해 초과 의석이 없도록 설계했다.

 

여기서 수학이 등장한다. 득표수를 의석수로 할당하는 과정이 조금 복잡할 수 있지만 찬찬히 살펴보자. 예를 들어 A당이 정당득표율을 10% 얻었다고 가정해보자. 정당득표율만큼 의석을 보장한다면 30(300석의 10%)이 된다. 이를 편의상 목표의석이라 하자.

 

A당이 지역구 20곳에서 승리했다면 목표 의석까지 필요한 10석을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게 100% 연동형이다. 그러나 여야 합의안은 50%만 채우기로 했다. 100%를 목표로 비례 의석을 모두 채워주게 되면 30석으로 이를 충족시키기엔 모자라서 결과적으로 전체 의석이 300명을 넘기는 초과의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준연동형 방식을 따르면, A당은 10석의 절반인 5(10×50%, 무소속 당선자가 없다고 가정)을 먼저 배정받게 된다. 연동형 50%를 채워주고 남는 의석은 병립형 17석이다. 다음 A당은 17석의 10%2(1.7)을 추가로 갖고 온다.

 

그런 방식으로 A당이 확보하는 최종 의석은 지역구 20, 연동형 비례대표 5, 병립형 비례대표 2석을 합친 27석이 된다. 이런 식으로 비례대표를 배정 받으려면 정당득표율 3% 이상은 돼야 한다. 이른바 봉쇄 조항으로 소수정당이 난립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개정된 선거제 개혁안을 20대 총선에 적용해보면 거대 양당의 비례대표 의석수는 줄고, 소수정당이 약진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대 총선에서 36.01%의 정당득표율을 얻은 자유한국당의 전신 새누리당은 지역구에서 105석을 차지하고 비례를 17석 가져가 민주당에 이어 제2당이 됐다.

 

새 선거법을 적용하면 새누리당이 가져갈 비례대표 의석수는 6석으로 줄게 된다. 지역구 당선자(105)가 준연동형을 적용해 확보할 수 있는 의석수를 이미 초과해 연동제 캡(30) 안에서 가져갈 수 있는 비례대표 의석은 없고, ‘병립형이 적용되는 17석 가운데 정당득표 비율(6)만큼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27.46%를 얻은 민주당도 지역구에서 이미 110명의 당선자를 냈기 때문에 준연동형 비례대표 대신 병립형으로 배분되는 비례대표 의석 5개만 확보하게 된다.

 

반면 정의당 등 소수정당의 의석수가 큰 폭으로 확대된다. 지난 총선에서 7.78%의 정당득표율을 얻은 정의당은 새 선거법안을 적용할 경우 의석수가 11(지역구 2, 비례대표 9)으로 늘게 된다. 정의당이 지난 총선에서 얻은 의석수는 지역구 2석과 비례대표 4석을 포함해 총 6석이었다.

 

 


어떤가. 조금은 어려운 것 같지만 2~3번 반복해서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처음 상대성이론을 발표했을 때 세계 물리학자 중에서 정확하게 상대성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이 단 세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선거제도는 상대성이론보다는 어렵지 않다.

 

결국 새로운 선거제도 시행으로 거대 양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는 지금보다 더 힘들어진다.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된 다당제 국회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정당 간 연합이 불가피한 의석 구조가 제도화된다는 뜻이다. ‘승자독식의 양당 체제에서 벗어나 다양성이 보장된 합의제 민주주의로 가는 첫발을 뗐다.

 

또한 정당 지지율에 비해 지역구 의석수가 많을 경우 상대적으로 비례대표 의석수를 적게 갖고, 반대면 비례대표 의석을 더 받게 된다. , 지역에서 큰 세를 얻지 못할지라도 정당 지지율이 높으면 국회 내 의석을 늘릴 수 있게 되면서 지역구도 타파와 정책 중심의 정당 출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됐다.

 

우리나라는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이 지역주의에 현혹되어 특정 정당에 묻지 마 투표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대중매체에서는 선거전문가나 여론 지도층에서 제발 정당이 아닌 후보자를 보고 찍어세요!”라고 홍보한다.

 

한국이 새로운 선거제도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21대 총선부터는 후보자가 아닌 정당을 보고 찍어세요!”라고 선전할 것이다.

 

유럽의 유권자는 정당을 보고 투표한다.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E. E. Schattschneider, 1892~1971)는 정당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결국, (국민이) 가진 능력만큼 그에 맞는 유형의 정치체제를 가진다. 정당 체계는 민주정치의 소중한 수단이다. 그러나 그것은 수단일 뿐이다. 그 수단을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할 것인지는 인민의 몫이다. 무시하거나 잘못 또는 어리석게 활용하면 나쁜 결과를 얻을 것이다. 우리와 무관한 누군가가 완벽하게 작동하는 훌륭한 정당 체계를 대신 만들어 줄 수는 없다. 민주주의 수단을 잘 활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민에게 맡겨진 책무다. 이것이 분석 결론이다.

 

 

물론, 권력구조와 선거제도만 바꾼다고 우리의 시민성이 반영된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더 좋은 정치가 필요하고, 더 좋은 정치를 만드는 것은 더 좋은 선거제도로의 개혁일 것이다.

 

 

 

 

 

 

  참고자료

 

경향신문, “한국, 민의 반영 선거 비례성최하위... 비례대표제 국가는 상위”, (2015.8.5).

김종갑, “국회의원 선거구제 및 비례대표 선출방식의 현황과 과제”, 이슈와 논점, 국회입법조사처(2017).

데이비드 파렐(전용주 역), 선거제도의 이해, 한울아카데미(2012), 153~189.

샤츠슈나이더, E.E.(이철희 역), 민주주의의 정치적 기초, 페이퍼로드(2010), 107.

안순철, 선거체제비교: 제도적 효과와 정치적 영향, 법문사(1998), 215~264.

주간한국, “내년 4월 적용 새 선거법 통과”, (2019.12.27).

한겨레, “‘4+1 선거법’ 20대 총선 적용 땐 민주·새누리 연동형 0”, (2019.12.24).

Lijphart, Arend, Patterns of Democracy: Government Forms and Performance in Thirty-Six Countries 2,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2012).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