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경우, 대통령과 국회의원,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 교육감을 선거로 선출한다. 그리고 농협, 축협 조합장 선거 등과 같은 위탁선거 역시 제도화되어 선거가 실시되고 있다. 또한 우리 삶 가까이에 있는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선거, 재건축조합, 그리고 학교선거 등과 같은 선거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시민은 정기적 혹은 비정기적으로 선거에 참여하여 투표를 해야 한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일상적인 정치와 국가정책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의사표현과 행동이 필요할 때는 행동을 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정치적 행위에 정보를 취득하고 해석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선거와 관련된 정보는 여론조사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매일 여론조사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위 그림은 미디어를 통해 자주 접하는 여론조사 결과다. TV나 신문에서 시간과 지면상 상세한 설명 없이 간단한 결과만 전달한다.
이 여론조사 결과에 기초하여, 만약 오늘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면 누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을지를 예상할 수 있는가. 여론조사의 후보 지지도만 보고 일반적으로 문재인 후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다, 정답은 ‘알 수 없다’이다. 좀 더 멋있게(?) 두 명의 상위 후보자 지지도는 ‘오차범위 안’에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오차범위'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림에서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p’를 이해해야 한다. 여론조사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조사대상 전체에 대해 조사하지 않는다. 조사대상(모집단, population)을 대표하는 표본(sample)만 추출하여 표본조사를 실시하기 때문에, 조사한 값과 실제 값의 차이(오차)가 발생한다.
오차를 허용하는 구간을 오차범위라 한다. 표본조사 결과가 전체 집단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오차를 일정 수준 허용하기 때문이다. 이때 허용한 오차 구간을 오차범위라고 한다. 오차범위가 ±3.1%p라는 점은 지지율의 격차가 (-3.1%~3.1%) 즉 6.2%p 범위 내에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정확한 지지도를 알 수 없으며, 단지 틀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지도를 판단한다. 이를 통계적으로 신뢰수준(confidence level, 예를 들어 95%)과 신뢰구간(confidence interval, 예를 들어 ±3.1%)을 가지고 설명한다. 민주시민으로 살기 위해서는 (고달프지만) 이를 이해하는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다.
조금은 어렵지만 이해를 시도해 보자. 예를 들어 문재인 후보의 경우를 보자. 표본으로 추출된 1,042명 중에서 38.2%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전체 국민이 문재인 후보를 얼마나 지지하는가이다.
표본을 가지고 모집단을 추정해야 한다. 여기에 사용되는 것이 신뢰수준과 신뢰구간이다. 즉, 지지율 38.2%에서 표본오차 ±3.1%p를 적용하면, 35.1% ~ 41.3%의 신뢰구간이 발생한다. 이 신뢰구간 범위에 모집단의 지지율이 나타날 확률이 95%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만약, 이러한 통계적 의미를 믿을 수 없어서 동일한 설문문항을 가지고 100개의 여론조사 기관이 동일한 기간 동안 여론조사를 실시했다고 가정하자. 그 결과 95곳의 여론조사 기관의 결과는 35.1% ~ 41.3% 신뢰구간 안에 지지율 결과가 나온다. 다만 5곳의 여론조사 기관에서는 이러한 신뢰구간을 벗어나는, 예를 들어 46.7% 또는 31.0% 따위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방법을 위 여론조사에 대입하면, 문재인 후보는 35.1% ~ 41.3% 그리고 안철수 후보는 30.1% ~ 36.3% 신뢰구간이 나타난다. 따라서 두 후보 간 지지도의 신뢰구간이 겹치는 구간이 발생한다. 이를 ‘오차범위 안’ 혹은 경합, 박빙 등으로 표현할 수 있으나, 의미상으로는 어떤 후보자가 우세한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하게 빨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제시된 표본오차에 2를 곱한 값(3.1% × 2 = 6.2%)보다 두 후보자의 지지도가 차이가 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는 것이다. 만약 차이가 나지 않으면 ‘오차범위 안’으로 해석하고, 차이가 난다면 두 후보 간에 우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언론을 통한 여론조사 해석
그렇지만 그래프 상으로 문재인 후보가 5% 더 많은 지지율을 보이니, 그래도 문재인 후보가 조금은 우세한 것으로 판단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를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되어 표심을 왜곡하고 결국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론조사기관에서는 조사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오류를 ‘오차범위’라고 정해두고 신중한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 후보가 지지율 차이가 ‘오차범위’ 내에 있을 경우 ‘단정적’ 즉 ‘누가 앞선다, 앞지르다’등의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고 있다.
한국기자협회는 여론조사가 오차범위 내의 결과가 나왔을 때 보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여론조사 보도준칙 제16조를 보자.
제16조(오차범위 내 결과의 보도)
① 미디어는 후보자나 정당의 지지율 또는 선호도는 신뢰구간에 따른 표본오차를 감안해 보도해야 한다.
② 지지율 또는 선호도가 오차범위 안에 있을 경우 순위를 매기거나 서열화하지 않고 “경합” 또는 “오차범위 내에 있다”고 보도한다.
③ 위 경우 “오차범위 내에서 1, 2위를 차지했다”거나 “오차범위 내에서 조금 앞섰다”등의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④ 위 경우 수치만을 나열하여 제목을 선정하지 않는다.
현행 선거여론조사 보도준칙은 ‘오차범위 내 결과’에 대해 순위를 매기거나 서열화 하지 않고 ‘경합’이나 ‘오차범위 내에 있다’고 보도하도록 하고, ‘조금 앞섰다’거나 ‘1, 2위를 차지했다’는 등의 표현을 쓰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론조사는 그 자체보다는 언론보도를 통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조사결과는 동일한데 언론보도는 다른 언론기관과 차별화하기 위해 선정적 제목, 과도한 해석, 그리고 의도적 왜곡이 난무하고 있다. 누가 더 지지율이 높은가에만 주목하는 경마 저널리즘(horse race journalism), 속보경쟁, 자의적이고 과도한 해석이 반복되고 있다.
그 결과 언론에 대한 불신이 증가하고 있으며 여론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따라서 여론조사를 잘 이해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 시민으로서 필수 덕목이 되어 가고 있다.
참고자료
제프리 스톤캐쉬(강흥수 옮김), 『선거여론조사: 승리를 위한 유권자 마음 읽기』, 커뮤니케이션북스(2007).
평화뉴스, “‘오차범위 내’ 지지율에 순위 매긴 8개 신문, ‘신문윤리 위반’”, (2018.3.8).
Earl Babbie(고성호 외 옮김), 『사회조사방법론(The Practice of Social Research』, 센게이지러닝코리아(2013), 7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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