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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Politics

정당 수명이 2.6년?

by 누름돌 2022.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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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갓 태어난 자식의 이름을 짓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서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1970년대 코미디에서 나온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이다. 손이 귀한 집안의 5대 독자의 장수를 기원하며 이름을 지었으나, 결국은 단명했다는 줄거리로 한국 코미디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한국의 정당들도 창당할 때 ‘100년 정당을 표방하고 탄생했다. 그러나 당명이 의도한 대로 장수한 정당은 찾기 힘들다. 이렇다 보니 정치에 정말 관심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대화 중 한국의 정당명을 제대로 기억하고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현재에도 여전히 한나라당, 새누리당, 우리당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정당명의 복잡함에 기겁하는 사람은 전라도당’, ‘경상도당’, ‘김대중당’, ‘노무현당으로도 사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정당의 수명

 

1987년 민주화 이후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정당은 모두 223개나 된다고 한다. 국회의원을 한 명이라도 보유했던 정당만 따져도 40개다. 선거 때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정당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창당할 때는 ‘100년 정당을 표방하지만 10년을 못 넘기는 정당이 허다하다.

 

실제 한국 정당사에서 10년 이상 이름을 유지한 정당은 단 4개에 불과하다. 한국 당명의 평균 수명은 국회의원 임기(4)에도 못 미치는 2.6년에 불과하다.

 

한국 정당의 수명이 짧은 것은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반증이며 정당정치 안착이 쉽지 않은 일임을 보여준다. 당명은 정당의 철학과 이념을 담은 간판이다. 이 때문에 당명을 선택할 때는 당의 정체성과 지지자들을 고려해 결정한다. 그러나 한국 정당의 이름이 자주 바뀌는 이유는 정치철학이나 이념이 아니라 인물 위주로 정치 지형이 재편돼 왔기 때문이다.

 

특히 역대 집권자들은 예외 없이 대통령 당을 만들었다. 자신들의 권력기반 강화를 위해 정당을 새로 만들거나 멀쩡한 당을 리모델링했다. 여당은 집권 연장, 야당은 선거용으로 당명을 개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민주공화당(박정희), 민주정의당(전두환), 민주자유당(노태우), 신한국당(김영삼), 새천년민주당(김대중), 열린우리당(노무현), 새누리당(박근혜), 더불어민주당(문재인)이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만 예외적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최장수한 당명은 민주공화당이다. 1963년 생겨나 80년 신군부에 의해 해산될 때까지 178개월 동안 존속했다. 이후 박정희 후계자를 자처했던 김종필 전 총리가 87년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했지만 902월 민주자유당, 통일민주당과 3당 합당을 이루면서 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민주공화당 다음으로 한나라당(143개월, 199711~ 20122), 신민당(138개월, 19672~ 198010) 그리고 자유민주연합(1010개월, 19953~ 20061) 순이다. 반대로 가장 짧은 역사를 기록한 당은 2011127일 창당했다 9일간 존속한 시민통합당이다.

 
 

 

정당의 이름

 

한국 정치권에서 가장 오랫동안 역사성을 갖는 당명은 민주당이다. ‘민주당1955년 자유당 정권에 대항한 야당으로 역사에 등장한 이래 모두 6차례나 사용됐다. 그리고 통일, 평화, 신한 등 수식어가 붙은 것에서부터 민주당이라는 단독 명칭까지 포함하면 55년 이후 줄곧 명맥을 유지해왔다.

 

야당이 즐겨 사용해왔다는 특징도 있다.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60년대엔 민주당이 두 번 생성과 소멸을 거듭했고 70년대 신민당을 거쳐 80년대에 신한민주당(85~88), 통일민주당(87~90), 평화민주당(87~91) 등으로 거듭났다.

 

90년대에는 꼬마 민주당과 민주당(91~95)이 자리했고 2000년대엔 새천년민주당이란 이름으로 부활했다. ‘민주라는 브랜드는 현재(2019)의 야권보다는 여권이 지식재산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정당 이름은 가끔 논란이 되기도 한다. 2004년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었다. 당명에 정치적 이념이나 가치를 표현하는 한자어가 빠져 파격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개방성을 뜻하는 열린과 다소 폐쇄적인 우리라는 개념이 서로 충돌해 모순적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들었다. , 새누리당은 특정교회 이름, 유치원, 개 이름이 연상된다는 평가를 받곤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약칭이다. 고유명사인 이름은 당사자가 불러 달라는 대로 불러주는게 정상이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열우당, 열당, 열린당뜻으로 비아냥거리려는 의도로 불렀다. 이유는 공식 약칭인 우리당으로 부르면 우리당(한나라당)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유사한 일이 자주 발생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을 새민련’, 통합진보당을 통진당’, 더불어민주당을 더불당’, 자유한국당을 자유당등으로 공식약칭 사용되신 유치한 정치공세를 벌이는 일이 다반사다.

 

오명으로 얼룩진 당명사로는 친박연대에 와서 절정을 이룬다. 2008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박근혜계정치인들은 부랴부랴 당을 조직했다. 일부는 무소속 연대를 택했고 또 다른 일부는 당을 만들었다. 그게 친박연대였다. 특정인의 이름을 상징하는 당명이 등장한 건 헌정사상 최초였다.

 

 

외국의 예

 

외국의 경우 100년 역사의 정당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미국 정당의 역사는 1800년 창당한 민주공화당부터 시작된다. 헌법을 기초하고 제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이 창당했다. 지금 민주당(Democratic Party)의 전신이다. ‘공화란 이름이 떨어져 나간 게 1830년이니까 민주당 간판을 내건 시간만 따져도 190년에 이른다.

 

공화당(Republican Party)도 장수하고 있다. 1854년 노예제 폐지를 강력히 요구하였던 북부지역을 주요 기반으로 출발했다. 166년 역사다. 1860년 대통령선거에서 신생 공화당의 링컨(Abram Lincoln)이 당선되었다. 미국은 1860년 전후로 현재와 같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당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미 양당의 상징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200년 가까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사진은 민주당 상징인 당나귀와 공화당 상징인 코끼리. 당나귀는 1828년 대선 때 공화당이 민주당의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 1767~1845)을 비방하기 위해서 사용한 이후 민주당 상징이 되었다.

 

 

코끼리는 유명 만평 기고가 토머스 네스트(Thomas Nast) 1874년 하퍼스 위클리(Harper’s Weekly) (몸집은 크지만 민첩하지 못한) 공화당을 코끼리로 그린 이후 공화당의 상징이 되었다.

 

 

 

의회정치의 시조인 영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보수당은 1912년에 창당했다. 기원은 1678년 찰스 2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공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한 휘그(Whig)에 맞서 토지를 소유한 귀족 계급을 대표했던 토리(Tory)가 보수당의 본류다. 1900년 노동대표위원회 형태로 결성됐던 노동당(1906년부터 사용)120년 간 명맥을 잇고 있다.

 

독일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집권 기독민주연합(기민당), 사회민주당 등이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독일의 현재 정당질서는 1945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시작됐다. 기민당은 그해 창설됐다. 사민당은 그보다 역사가 깊다. 1875년 설립된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그 전신으로, 1890년 사민당으로 이름을 바꿔 지금에 이른다. 현재 독일의 정당 중 최장수다.

 

당명에서만큼은 일본에 비해서도 후진적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뒤 아시아에서 최초로 의회정치를 시작해 긴 역사의 정당 정치를 갖고 있다. 집권당인 자유민주당(자민당)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현재의 이름을 얻고 65년의 긴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숱한 정계개편과 이합집산, 두 번의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65년간 흔들림 없이 정권을 잡는 저력을 보였다.

 

대만(타이완)의 국민당도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국민당은 동맹회(同盟會, 국민당의 전신)가 창당된 1895년을 창당의 해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국민당의 현재 나이는 120살이 넘는다.

 

1949년 중국 공산당에 쫓겨 본토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이후에도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를 기반으로 50년 넘게 집권했었다. 현재 토착민 중심으로 독립 성향인 집권당 민주진보당(민진당)1986년 창당 이래 35년간 단 한 번의 당명 개정도 없이 유지해 오고 있다.

 


당명 변경은 내용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정당들은 문패를 바꿔 부정적 이미지를 털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취지로 새로운 당명이 만들어졌다. 실질적인 변화 없이 인테리어만 바꾸는 것은 국민의 정치 불신만 가중시킬 뿐이다. 간판 자주 바꾸는 맛집치고 장사 잘 되는 집은 없다.

 

 

 

 

  참고자료

 

미국정치연구회 편, 미국 정부와 정치2, 오름(2013), 403~409.

심지연, 한국정당정치사: 위기와 통합의 정치, 백산서당(2004).

한겨레, “한국 정당 이름, 단골손님은 민주’”, (20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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