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가장 넓고 국회 의정활동의 가장 큰 무대가 국회 본회의장이다. 반원형 극장처럼 설계된 국회 본회의장은 연단에서 멀어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 구조로 돼 있다.
현행 국회법에 따르면 본회의장 좌석은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협의해 결정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각 당 지도부가 결정권을 갖고 있다.
좌석 배정 방법
현재는 국회의장 단상을 바라보는 기준으로 가장 왼쪽에 국무위원이 앉는다. 본회의장 중앙에 원내 제1당이 자리하고, 이를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제2당, 왼쪽에는 제3당과 비교섭단체·무소속 의원의 자리를 배치하는 게 우리 국회의 관례였다.
이와 같은 ‘여야 분리형’ 전투대형식 좌석 배치는 1948년 제헌국회 이후 7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같은 당내에서 의원들의 자리는 어떻게 정할까? 일단 법적으로는 국회의장과 교섭단체 대표가 협의해 결정하도록 돼 있지만 관례적으로 같은 상임위원회에 소속된 의원들끼리 논의하기 편하도록 가까운 자리에 배치를 한다.
국토교통위·산업통상자원위·정무위 등 의원들이 선호하는 인기 상임위 소속 의원들은 앞쪽에, 법제사법위·환경노동위·외교통일위 등 비인기상임위는 뒤쪽에 앉는 관행이 있다.
이와 함께 보통 국회는 선수(選數)에 따라 자리를 배정한다. 앞쪽에는 초·재선 의원들이 주로 앉고 뒤쪽으로 갈수록 다선 의원들의 차지다.
주로 맨 뒷줄은 당 대표와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앉는다. 이런 배치는 여야 중진과 지도부가 뒤에 않아 초선 의원들을 지시하거나 배후조종하는 듯 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외국의 예
반면 북유럽 국가 대부분은 지역별 배치가 원칙이다. 오페라 극장식의 회의장 구조는 비슷하지만 스웨덴, 노르웨이 등은 지역별로 여야 구분 없이 앉고, 특히 다선 의원이 앞줄에 앉는 게 관행이다.
스웨덴 국회의원들은 한국처럼 정당별로 떼를 지어 앉지 않는다. 의원들은 지역별로 모여 앉아 수시로 지역 현안을 논의한다. 자리에는 명패도 없다. 좌석이 지역별로 묶여 있을 뿐 그 안에서 선착순으로 원하는 자리에 앉는다.
의회 정치의 선진국으로 불리는 영국을 보자. 의장석을 기준으로 부채꼴 모양을 한 우리 국회와 달리 영국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은 비좁은 직사각형 구조다. 조그만 의장석 아래에 긴 대형테이블이 놓여 있고, 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양편에 계단식으로 의원들이 않는 벤치형 의자들이 놓여 있다.
영국 의회는 우리와는 반대로 의장석 앞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양쪽 맨 앞줄 벤치에 정당의 당수, 간부나 중진 의원이 자리를 잡고 앉고, 뒷줄에는 대개 일반 의원들이 앉는다. 국민 앞에 당의 얼굴이 전면에 나서 관심을 끌어 모으고, 의회 정치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얘기다.
미국 의회 본회의장 좌석은 우리처럼 부채꼴 모양이지만, 의석이 벤치형으로 길게 붙어 있다. 지정석 없이 자유롭게 앉을 수 있다.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한 양당제 정치가 자리 잡은 탓에 중앙 통로를 경계로 민주당과 공화당이 나눠 앉는 게 관례다.
한국 국회의 좌석배치와 관련해서 논의가 많은 편은 아니다. 다만 정당별로 나뉜 본회의장 좌석배치부터가 갈등과 대립을 야기하는 구조라는 인식에서 좌석배치 변경론이 제기된 적은 있다.
당별로 나눠 앉는 것은 당이 개별 의원을 통제하던 권위주의 시대 잔재라는 지적이다. 이런 좌석배치 관행을 바꿔 소속 정당에 구애받지 않고 섞여 앉거나, 소관 상임위원회별로 앉거나, 아예 선착순·무작위로 앉는 등의 방식으로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또 북유럽국가처럼 지역별로 좌석을 재배치하거나 아예 이름의 가나다 순서나 추첨으로 좌석을 정하자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하지만 효율성을 이유로 반대 의견도 나오는 상황에서 오랜 관례를 바꾸기가 쉽지만은 않다.
행동이 생각을 좌우하고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본회의장 좌석배치를 협치와 소통의 정신에 맞는 구도로 바꾸자는 제안이 가끔 나오는 배경이다. 서로 다른 당 소속 의원끼리 옆자리에 앉게 되면 비공식적 대화를 할 시간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는 여야가 섞어 앉으며 상대편을 향해 고함치고 삿대질하는 모습도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를 기초로 한다.
그러나 본회의장 좌석배치를 바꾼다고 갈등과 대립의 한국 정치 문화가 변화될까? 본질적으로 뭐가 달라질까? 결론은 회의적이다.
영국 의회
의장석에서 볼 때 오른쪽이 여당석, 왼쪽이 야당석으로, 여야가 정면으로 마주 보고 앉는다. 영국 하원 회의장 바닥에는 붉은 ‘검선(劍線, sword line)’을 기준으로 기다란 벤치형 좌석이 5줄씩 마주보게 놓여 있다. 의회주의 역사가 깊은 영국에서는 과거 의원들이 칼을 들고 논쟁을 벌이기도 해 ‘칼이 닿을 수 없는 거리(2.5m)만큼의 공간을 띄어놓았다’는 의미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는 영국 의회의 상징이다. 다만 지정석은 없다. 게다가 의원정수(하원 650석)보다 좌석 수가 적어 지각하는 날이면 선 채로 회의에 참여해야 한다. 사진 정면에 서 있는 의원들이 지각한 사람인 것이다.
참고자료
매경이코노미, “결국 끼리끼리 앉았다 ... 20대 국회 與野 섞어 앉기 흐지부지”, (2016.6.20).
한국일보, “英, 美 의회 좌석 여야로 분리돼 있지만 지정석은 없어”, (2016.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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