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지금 한국의 선거에서 유권자가 어떤 후보(또는 정당)를 찍을 것인지를 알기 위해 한 가지 질문만 할 수 있다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정답은 나이다.
그 사람의 나이를 알면 높은 확률로 어떤 정당 혹은 어떤 후보를 찍을 것인지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나이에 대한 질문이다.
연령효과와 세대효과
현재 한국 유권자의 투표 참여에 가장 분명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회경제적 변수는 연령이다. 한국에서 특이하게 발견되는 현상은 교육이나 소득 등 다른 사회경제적 변수가 투표 참여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데 비해 유독 연령만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연령효과(age effect) 혹은 인생주기 효과(life-cycle effect)는 생물학적 연령에 따라 의식과 행동에 차이를 보이는 정치적 성향의 변화를 일컫는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젊을 때 보다는 가진 게 많아진다.
우선은 가족을 이루게 되고 자식이 생겨나게 되고, 집도 전월세든 자가든 있게 마련이다. 또 인적 네트워크도 다양해지고 확대되어진다. 더불어 지금까지 정치사회적 환경에 더욱 익숙하게 적응해왔다. 이러한 배경이 기존의 관습, 제도, 그리고 체제의 변화에 반대하고 저항하게 되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보수화가 되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보수의 정체성은 ‘지키는 것’이며 반면, 진보는 ‘변화 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나이가 많을수록 보수적이며, 그리고 보수정당을 더 지지한다.
이러한 현상이 한국 선거의 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건 16대 대선에서부터 뚜렷해졌다. 한국사회의 경우 민주화(1987년) 이전에는 민주 대 반민주가 주요한 균열 축이었던 반면, 민주화 이후에는 지역이 균열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여기에 이념과 연령(혹은 세대)이 또 다른 균열 축으로 영향력을 더해 가고 있다.
흔히 혼용하지만 연령과 세대는 개념적으로 차이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연령은 변화지만, 세대는 고정되어 변화지 않는다. 세대효과(generation effect)는 각 세대가 겪은 독특한 사회적·문화적·정치적 경험의 결과 생성된 그 세대 특유의 성향을 지칭한다.
유사한 시기에 출생한 한 세대 집단이 성장해 오면서 공동으로 겪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정치사회화가 이뤄지고 그로 인해 일정한 정치적 태도와 성향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사회화 이론(political socialization theory)에 따르면 인격형성기(formative period)에 경험하고 형성된 정치의식은 쉽게 변하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된다고 한다.
선거와 세대효과
한국 선거에서 세대 균열이 나타난 것은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맞붙은 2002년 대선이었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젊은 세대의 압도적인 지지에 힘입어 당선된 이후, 세대투표는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20대와 30대는 노 후보와 이 후보 득표율이 각각 62% 대 32%, 59% 대 34% 등으로 노후보가 두 배 가량 높았다. 중간층인 40대에서 두 후보 득표율이 48%로 같았지만, 50대 이상은 이 후보(58%)가 노 후보(40%)를 크게 앞섰다.
이러한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는 노무현의 개인적 속성보다 지역주의의 약화와 함께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있던 정치적 변화에 대한 욕구가 반영되어 생겨난 결과임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즉, 우리사회에 미친 과거 냉전 시대의 유산을 바라보는 세대 간의 시각 차이가 드러난 것이며 그것이 노무현과 이회창이라고 하는 상반된 시각을 대변하는 두 후보 간의 경쟁을 통해 보다 극적인 형태로 표출되어 나타났다.
후기물질주의(post-industrialism) 사회에 접어든 우리사회에서는 젊은 세대가 나이든 세대와는 차원이 다른 가치관을 소유하고 있으며, 투표성향에서도 탈물질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의 확산은 구미사회에서 오랫동안 계급 못지않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여왔던 종교의 비중이 꾸준히 감소되는 세속화(secularization) 현상과 더불어 시민들의 의식 및 가치 정향을 바꾸어 왔다.
한국의 경우, 이들은 주로 한국전쟁과 빈곤을 경험한 구세대들이 안보·경제적 배분 등의 양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는 데에 반해, 참여·비핵·여성의 권리·소수자 인권·인권·환경 등 삶의 질(well-being)에 관심을 두며 사회 집단적 투표가 아닌 이슈별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의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탈피하여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투표행태를 보였다.
이후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가 경쟁했던 2007년 대선은 모든 연령층에서 이 후보가 일방적으로 우세했다. 17대 대선의 경우, 세대균열의 영향력이 16대 대선에 비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12년 대선에서 다시 30대 이하와 50대 이상의 세대 대결 구도가 재현됐다. 18대 대선에서는, 한국전쟁세대, 산업화세대로 대변되는 5060세대의 보수적 성향과, 386세대, IMF세대 혹은 월드컵세대로 불리는 2030세대 혹은 3040세대의 진보적 성향이 더욱 뚜렷해졌다.
20~30대에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 비해 두 배가량 득표율이 높았던 것과 정반대로 50대 이상은 박 후보가 2~3배 더 높았다.
한편 2017년 대선은 40대의 정치 성향이 청년층과 비슷해지면서 40대 이하와 60대 이상의 대결로 구도가 바뀌고 중간층이 50대로 상향된 첫 대선이었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문재인 후보 득표율과 홍준표·유승민 후보 득표율 합은 20대(48% 대 21%), 30대(57% 대 18%), 40대(52% 대 19%) 등으로 문 후보가 20~40대에서 압도적이었다. 중간 지대인 50대(37% 대 33%)는 양쪽이 비슷했고, 60대 이상(25% 대 50%)은 홍·유 후보에 비해 문 후보는 절반에 그쳤다.
결국 세대 대결 구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심축은 86세대이다. 세대갈등이 처음으로 등장한 2002년 대선에서 당시 30대였던 86세대는 2030연대를 구축해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켰다. 2012년 대선에서는 86세대가 주축을 이룬 2040대가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다.
이제 86세대의 대다수가 50대이다. 2017년 대선의 방송사 출구조사를 보면 50대는 문재인 36.9%, 홍준표 26.8%, 안철수 25.4% 등으로 지지했다. 문재인 지지만 보면 40대 52.4%, 30대 56.9%에 비해 꽤 낮다. 이러한 결과만으로 86세대의 보수화를 말하기는 이르지만, 최소한 50대의 이념적 분화는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다.
586세대의 분화?
이런 점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86세대의 연령효과와 인구구성 변화에 초점을 두고, 향후 한국정치의 보수우위 지형이 확대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예를 들어 30년 전인 1987년 대선에서 20대와 30대 유권자 비중이 각각 30.4%와 24.6%로 30대 이하가 절반 이상이었다. 이들이 50·60대 장·노년층으로 변신한 2017년 대선은 50대(20.0%)와 60대 이상(24.4%) 유권자 비중이 44.4%로 절반에 육박했다. 유권자 4명 중 1명이 60대 이상인 ‘실버 민주주의’ 시대로 접어들어 보수가 우세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현실은 인구고령화와 장·노년층 보수화가 결합했다면 최근 선거에서 진보진영이 불리했겠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원인은 86세대의 투표행태이다. 50대의 탈 보수화가 미친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19세부터 51세까지는 각 연령별로 진보가 보수에 비해 11~35% 포인트 높았다. 52세는 차이가 8% 포인트로 좁아졌고 54세부터 보수(35%)가 진보(34%)를 역전하기 시작했다. 이후 59세부터 80세까지는 보수가 진보에 비해 14~43%포인트 높았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가 10%포인트 내로 비교적 적은 52~58세가 승부처인 셈이다.
유권자의 각 연령별 정치 성향은 최근 10여년 사이에 급속히 바뀌었다. 2009년 미디어리서치의 조사에서는 보수가 진보를 역전하기 시작한 나이가 44세였다. 당시엔 보수와 진보 차이가 10%포인트 이내였던 연령대가 40~48세였다. 40대가 선거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세대별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관적 이념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86세대는 연령상 30대말에서 50대까지 중도 근처에서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86세대를 중심으로 윗세대는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되는 연령효과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반면 아랫세대는 오히려 진보의 방향으로 움직였다.
2009년의 40대와 2017년의 50대는 대부분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생 또는 사회 초년생으로서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이른바 86세대다. 이들은 전후 산업화 세대와 베이비붐 세대 등이 50대가 되면 젊은 시절과 다르게 보수 성향이 전반적으로 강해진 것과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다.
한국 선거에서 ‘86세대’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당분간 중요한 변수로서 작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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