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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Politics

의무투표제란?

by 누름돌 2022.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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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많은 민주주의국가에서 정치적 무관심의 확대와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 등으로 인해 투표율이 감소하고 있다. 정치와 선거에 대한 실망이 높아질수록 투표율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도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참여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투표율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은 기존의 부재자투표를 넘어 국외부재자 투표, 재외선거인 투표, 그리고 사전투표제도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유권자의 적극적 권리행사를 돕고 있다.

 

 


 

투표율 저하

 

우리나라 대선 투표율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이래 1992년과 1997년까지 연속 3차례 80%를 넘겼다. 그러나 2002년 대선(70.7%)20007년 대선(63%) 때 투표율이 급락했다가 201275.8% 그리고 201777.2%로 조금 상승했지만, 여전히 최근 네 차례 투표율이 80%를 넘기지 못했다.

 

역대 총선 투표율은 15(63.9%), 16(57.2%), 17(60.6%), 18(46.1%), 19(54.2%), 그리고 20(58%)로 최근 상승 곡선을 타고 있다. 역대 지방선거 투표율도 제1(1995) 68.4%, 3(2002) 48.9%, 그리고 제7(2018) 60.2%로 최근 상승세를 보였다.

 

투표율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그 내용이 더 좋지 않다. 한국의 투표율은 OECD 36개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특히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투표율 격차가 가장 크다.

 

최근 발표된 OECD더 나은 삶 지수(the better life index) 2015년 판자료를 보면, 한국의 소득 상위 20% 계층의 투표율과 하위 20% 계층의 투표율 격차는 29% 포인트에 달한다.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투표를 안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최대 14배 이상 높은 수치다. OECD 회원국들도 대부분 소득 하위층보다 상위층의 투표율이 높았지만 그 중 한국의 격차가 가장 컸다.

 

반대로 호주의 경우 소득 상위 20% 계층과 하위 20% 계층 간 투표율 격차는 2%포인트에 불과했다. 룩셈부르크(3%포인트), 덴마크(4%포인트), 스웨덴(6%포인트) 등 여타 유럽 국가들도 격차가 한 자릿수에 불과했고, 미국·영국(23%포인트), 독일(22%포인트) 등은 투표율 격차가 비교적 컸지만 한국에는 미치지 못했다.

 

경제적 불평등에 불만이 많은 저소득층이 정작 투표참여에는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저소득층 80%가 시간 빈곤을 겪고 있어 정치에 관심을 갖거나 투표할 여유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OECD 회원국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한국, 그 가운데서도 저소득층은 선거 당일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01218대 대선 후 유권자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49.6%개인적인 일과 출근 등으로 투표를 못했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연구결과는 저소득층의 투표율이 증가할수록 소득 재분배가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저소득층의 요구를 정치인들이 수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도 재분배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투표율이 높다. 이는 재분배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미국에서 부자들은 거액 기부자일 뿐 아니라, 투표장 또한 지배하고 있다. 한국도 일자리 관련 공약의 주요 대상인 저소득층의 투표 참여 비율이 낮다고 한다.

 

 

 

의무투표제 실시 국가들

 

이러한 선거환경에서 투표율 상승을 이끌기 위해 의무투표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의무투표제(compulsory voting)는 의무적으로 유권자에게 투표에 참여하거나 선거일에 투표장에 오도록 하는 제도다.

 

의무투표제에서는 유권자에게 투표가 권리일 뿐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는 취지에서 투표 불참자에게 일정한 벌칙이나 불이익을 부과한다. 많은 국가들이 투표를 함으로써 이득을 얻는 방식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벌칙을 가하는 사실상의 강제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의무 투표제 실시 국가>

나라 투표 불참 때 불이익
호주 벌금, 20~50호주 달러
스위스 벌금, 3스위스프랑(샤프하우젠 주에서만)
그리스 1개월 이하 징역형 또는 여권·운전면허증 취득 제한
브라질 벌금, 거주 지역 최저 임금의 3~10%, 공직·여권 취득 제한
벨기에 벌금, 1회 불참 10유로, 공무원 승진 제외
싱가포르 투표권 박탈(5싱가포르 달러 내면 투표권 회복)
아르헨티나 벌금, 20달러, 3년간 공직 취임 금지
이집트 벌금, 20이집트파운드(남자만 의무적)
필리핀 벌금, 100페소, 공직 출마 금지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 세계 의무투표제 실시 국가는 22개국이며 이 가운데 11개국이 의무투표를 강제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의무투표제의 위반 시 벌칙은 벌금형, 참정권 제한, 징역 및 은행 거래 금지 등으로 시행되며, 대부분 70~75세 이상 유권자나 선거 당일 외국에 있는 사람은 의무투표제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그 결과, 강제적 처벌 조항 때문에 논란이 있지만 투표율을 올리는데 효과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세계 최초로 의무투표제를 전국 단위로 실시한 나라는 벨기에다. 1893년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가난한 시민들의 투표를 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첫 위반일 경우 50유로(66000)의 벌금이 부과된다. 두 번째 위반부터는 최고 125유로(164200)까지 증액된 벌금이 부과된다.

 

15년간 투표에 4회 불참할 경우 10년간 투표권이 박탈되고 공직취임도 제한을 받는다. 그 결과 2003년 벨기에는 96.4%의 높을 투표율을 기록했다. , 투표불참 사유를 지방법원에 제출하면 제재를 피할 수 있다.

 

1924년부터 연방정부 차원에서 의무투표제를 실시하는 호주도 시민권자는 의무적으로 선거인명부에 등록해야 한다. 타스마니아 주, ·서 오스트레일리아 주 등 일부 중에서 지방선거시 자유선거를 실시하고 있으나,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선거인명부에 등록하지 않을 경우 벌금이 부과된다.

 

스위스도 미화 2달러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아르헨티나·브라질·룩셈부르크·싱가포르 등도 벌금 부과 국가다.

 

멕시코는 헌법에 의거해 의무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투표 불참시 1년간 은행 신용거래가 제한된다.

 

브라질은 투표를 하지 않으면 공직제한은 물론 여권취득을 제한한다.

 

아르헨티나는 3년간 공직취임 및 고용을 제한하고, 우루과이는 아예 투표권이 상실된다.

 

베네수엘라는 투표를 안 하면 은행대출과 해외여행을 제한한다.

 

볼리비아에서는 투표불참자가 은행에서 월급을 인출할 수 없도록 한다.

 

이런 강제투표제 때문에 싱가포르와 호주는 투표율이 90%를 웃돌고 있고, 터키와 몽골, 페루, 칠레 등의 국가도 80%를 넘는 투표율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이런 국가들 중 상당수는 노령이나 병자, 원거리 거주자, 문맹자 등에겐 벌칙을 가하지 않는다.

 

 

 


정치적 권리의 행사를 독려하는 의무투표제는 몇 가지 장점을 갖는다. 첫째, 높은 투표율을 통해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을 높일 수 있다. 둘째, 사회경제적 차이에 따른 투표 참여의 편중 현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 셋째, 젊은 세대나 특정 계층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을 줄여 선거에서 돈의 역할을 감소시킬 수 있다.

 

각국에서 이처럼 투표율 제고를 위해 벌칙을 통한 강제투표를 시행하고 실제로 즉각적인 효과를 보았기 때문에, 중앙선관위도 오래전부터 페널티 방안을 구상했지만 투표자유권 침해라는 여론 때문에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도 지난 2003년 투표율 하락을 막기 위해 의무투표제를 도입해 투표 불참 시 벌금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 논의가 있었지만 여론에 밀려 좌초된 바 있다.

 

정치 참여는 민주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참여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한 시민의 정치적 권리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의무투표제는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시민의 정치적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 현실은 민주주의 후퇴를 막는 장치로서 젊은 세대나 사회적 약자의 참여를 높이는 의무투표제를 고려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게 변화하고 있다. 분명히 공동체 안에 존재하고 있지만 정치과정에 반영되지 않는 사각지대의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사회구성원의 목소리가 빠짐없이 대표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에 비추어 보자면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당원 감소 및 투표율 하락과 같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에 직면하여 투표율 80~90%를 유지할 수 있는 의무투표제의 성과는 강력한 유인 요인이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이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속성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시민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국가가 강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국가들이 저항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즉 제도의 성과만큼 사회 내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의무투표제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참고자료

 

김래영, “의무투표제의 합헌적 시행방안에 관한 연구”, 법학연구232(2015), 28~29.

연합뉴스, “투표율도 부익부 빈익빈 ... 투표 외면하는 저소득층”, (2017.4.27).

조희정, 낮은 투표율에 대한 제도적 해법: 투표 인센티브제와 의무투표제, 더미래연구소(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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