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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Politics

NOTA, 후보를 선택하지 않을 권리란?

by 누름돌 2022.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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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의 양과 질

 

대의민주주의에서 투표율이 절대적으로 중요할까? 모든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이 선거에 참여해야 바람직할까? 이러한 문제에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하나는 보수주의 혹은 엘리트주의 시각이다. 이들은 일반 시민은 정치에 관심과 지식을 가질 정도로 시간과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표율만 높다는 뜻은 우매한 대중들이 타인의 선동이나 협소한 개인 이익을 위해 참여한 것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 등의 사회주의 국가, 독일의 파시스트 권력이나 한국의 군사 독재시대에는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이러한 투표율은 결코 그 사회의 정치발전의 척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결국 투표의 (quality)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트주의 시각은 계몽된시민만의 참여가 가져오는 과소대표의 문제를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시민의 목소리가 투영되는 유일한 통로이다. 결국 정치공동체 구성원이 많이 참여할수록 더 민주적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일반시민의 역할이 커질수록 기득권 세력인 부자와 대기업이 불편하다. ‘11로 움직이는 자본주의와 달리 정치는 ‘11의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이다.

 

 

 

 

기권이 유일한가?

 

한국은 민주화 이후 투표율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도 정도의 차이만 있지 비슷한 현상이다. 주요한 투표율 하락 요인으로 젊은 층의 저조한 투표 참여를 꼽을 수 있다.

 

다음으로 정치효능감과 정당일체감이 하락하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행위가 정치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신념이 약해지고 있으며, 특정 지지정당에 대한 심리적 일체감의 약화도 꾸준히 진행 중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거환경 하에서 유권자의 선택지는 무엇일까?

 

허시만(Hirschman)이 설명하는 소비자의 시장행위(market behavior)를 대입해보자. 소비자는 기존에 사용해 오던 특정 제품의 질이 떨어졌다고 판단하면, ‘퇴장(exit)’, ‘항의(voice)’, ‘충성(loyalty)이라는 세 가지 선택지와 마주하게 된다.

 

, 제품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한 번 더 믿고 구입하던지(충성), 직접 회사에 전화해서 불만족스러운 것을 항의해서 개선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던지(항의), 아니면 다른 대체 상품을 구입하던지 동종 제품에 대한 구입을 중단(퇴장)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선거에서도 만약 어떤 유권자가 특정 정당에 대해 지지를 계속해 왔지만, 그들의 정치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도 위와 같은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문제는 퇴장을 할 경우 대안정당이 존재하는가가 문제이다.

 

기존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불만을 해소할 새로운 대안 정당이나 후보자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가 문제다.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을 할 수 있다. 최악의 후보가 당선되는 꼴이 보기 싫어 다른 후보를 선택하는 것과 기권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유권자는 유쾌하지 않다.

 

이럴 경우 유권자에게 제3의 길인 지지후보 없음을 표명할 수 있는 선택지가 필요하다. 선거를 앞두고 실시되는 여론조사에 빠지지 않고, 때로는 위협적인 득표력을 자랑하는 정치세력이 있다. 바로 지지정당 없음’, ‘지지후보 없음세력이 그것이다.

 

 

NOTA란?

 

‘NOTA(None Of The Above)라는 선거 용어가 있다. 이 말은 투표용지에 적인 후보 중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다이다. ‘후보를 선택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투표용지에 지지후보 없음기표란을 따로 만들어 선택의 폭을 넓히는 방안이다. 미국 녹색당 대통령 후보였던 랠프 네이더(Ralph Nader, 1934~ )가 제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 NOTA에 과반수 투표해서 NOTA1위를 차지하게 되면, 그 선거를 무효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재선거를 하는데, 앞서 출마했던 후보들은 출마가 금지된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후보들로 다시 선거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미국 네바다(Nevada) , 캘리포니아 녹색당 당내 경선, 스페인, 우크라이나, 그리스, 콜롬비아에서 시행 중이며 러시아에서는 2006년 폐지되기 전까지 시행되었다. 물론 NOTA 때문에 재선거를 치른 경우는 극히 드물다. 1976년부터 실시된 네바다 주의 경우 NOTA의 평균득표율은 7.7%에 불과했다.

 

특히 유권자 9억 명이 참가하여 6주간에 걸쳐 진행하는 세계 최대 선거를 가진 인도가 2009년부터 ‘NOTA'제도를 선택하고 있다. 2014년 총선에서는 600만 명이 넘는 유권자가 NOTA를 선택했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기권보다는 NOTA가 훨씬 적극적인 정치의사 표시 아니겠는가. 투표율과 같은 양적 측면도 중요하겠지만, NOTA는 질적 측면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이다. 지방선거나 재·보선의 낮은 투표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또한 쉽지 않을 것 같다. 201941일 백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현행 정당법 제41유사명칭 등의 사용금지항목에 대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발의한 법안 개정 내용은 아래와 같다. 만약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국에서 정당을 설립할 경우 마지막에 을 붙여야 한다.

 

 

정당의 명칭이 해당 정당이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와 관련 없이, 투표 시 유권자의 착오를 일으키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 경우에 특별한 제재 규정이 없는 실정임. 일본의 경우 최근 참의원 선거에서 지지정당 없음이라는 정당명의 원외정당이 원내정당보다 높은 득표수를 획득하여 논란이 되기도 하였음.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당은 정당의 명칭의 끝에 이라는 명사를 사용하도록 하려는 것임.

 

 

이와 같은 투표방식에 대해서 헌법재판소에서 10여 년 전인 2007년 유일하게 판단한 사례가 있다. 헌재는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각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전부 거부제도를 포함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 선거권 행사 자체와는 무관하고 선거권을 제약하는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그러한 입법을 하지 않았다고 헌법상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 원칙과 충돌하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공직선거에서 투표용지에 후보자들에 대한 전부 거부표시방법을 마련하지 않은 공직선거법 제150, 151조 제8항에 대한 위헌확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헌재 2007.8.30. 2005헌마975)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거권 제한) 조항이 전부 거부를 규정하고 있지 않은 것은 국민의 선거권행사 자체와는 무관하고 선거권행사를 제약하는 것도 아니다. ‘전부 거부와 같은 투표제도를 추가적으로 마련할 것인지 여부는 입법자가 정책적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일 뿐이며, 이를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을 두고 입법자가 선거권 보장을 위한 입법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결국 이 사건 조항이 전부 거부를 배제하고 있는 것이 청구인들의 선거권을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

 

(선거권자 표현의 자유 제한) 조항이 선거권자로 하여금 전부 거부방식에 의한 정치적 의사표시를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은, 선거권자인 청구인들의 그러한 의사표현을 금지하거나 제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선거제도에서 투표방식을 일정하게 규정한 결과일 뿐이다. 이 사건의 경우 표현의 자유의 보호범위에 국가가 공직후보자들에 대한 유권자의 전부 거부의사 표시를 할 방법을 보장해 줄 것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 할 수 없다.

 

 


현행 투표에서 후보자 전체를 거부하는 방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른바 전부 불신임’, 내지는 전부 거부권이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선거에 나선 후보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 거부 뜻을 밝히려면 현재로서는 기권이거나 무효표가 되도록 할 수 밖에 없다.

 

 

 

 

 

  참고자료

 

김찬완, “유권자 9억 명 참여, 세계 최대 민주주의의 장”, CHINDIA Plus(2019), 27.

러셀 J. 달톤(서유경 역), 시민정치론: 선진 산업민주주의 국가의 여론과 정당(Citizen Politics), 아르케(2010), 54~56.

에스비에스, “일본에 지지정당없음 당까지 나온 이유?”, (2017.10.19).

오마이뉴스, “정당 이름까지 법으로 규정? ‘꼰대법안의 등장”, (2019.4.12).

전용주 외, 투표행태의 이해, 한울아카데미(2009).

Hirschman, Alberto O, Exit, Voice, and Loyalty.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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