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지나갔다. 지위상승의 사다리는 사라졌다. 설상가상 청년들의 실업난은 갈수록 심각하다. 그래서 여기 양질의 일자리를 소개한다.
요구하는 조건은 없다. 이른바 수도권의 대학졸업과 최소 학점 등의 학력에 대한 요구사항은 없다. 여성차별도 법적으로는 없다. 아니 우대해 준다. 신장이나 몸무게 따위의 신체조건은 보지도 않는다. 나이 상한선도 없다. 또 구직자를 힘들게 하는 TOEIC, TOFLE 성적은 필요도 없다.
경쟁률은 최저 2.3:1에서 최고 3.2:1이다. 면접기간은 조금 길어 14일간이다. 잘하면 시험도 치르지 않고 취업될 확률도 있다(최근 80여명이 무시험 합격). 연봉은 최소 5,000만원에서 최대 8,000만원까지 있다(공무원 계장에서 과장급 보수 수준).
물론 4대 보험도 된다. 계약기간은 최소 4년이며, 잘하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다. 더하여 투잡을 합법적으로 뛸 수 있다. 업무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도 불이익도 없다. 하는 일, 별로 없다. 꿈의 직장이다. 어떤가. 혹하지 않는가?
바로 지방의회 의원이다. 그런데 마지막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200~300만원의 돈이 필요하다.
선거 기탁금과 선거비용 보전
선거에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기탁금이다. 기탁금은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가 후보 등록할 때 선거관리위원회에 일정한 액수의 금액을 기탁한 후 당선여부 및 득표율에 따라 전부 혹은 일부 금액을 반환받거나 국고로 귀속하는 제도이다.
기탁금제도는 후보자의 무분별한 난립을 방지하고, 당선인에게 가급적 다수표를 몰아줌으로써 정국의 안정을 기하며, 아울러 후보자의 성실성을 담보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대통령 선거 기준으로, 1987년 제13대 대선에서 처음으로 정당 추천 후보는 5000만원, 무소속 후보는 1억 원이라는 기탁금 제도가 생겼다. 이후 제14대 대선 때 정당 추천 후보와 무소속 후보의 기탁금이 모두 3억 원으로 늘었다. 제15·16·17대 대선은 5억 원이었다.
2008년 헌재는 ‘대선 기탁금 5억 원’에 대해 “5억 원을 입후보 예정자가 조달하기에 매우 높은 액수로, 재산이 많고 적음에 따라 공무담임권(국민이 공무를 담당할 수 있는 권리) 행사 기회를 비합리적으로 차별한다”라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18대 대선부터 대통령 후보 등록 기탁금은 3억 원으로 내려갔다. 그 외 기탁금 액수는 국회의원 1,500만원, 광역단체장 및 교육감 5,000만원, 기초단체장 1,000만원, 광역의원 300만원, 그리고 기초의원 200만원이다.
기탁금뿐 아니라 선거운동 비용도 만만치 않다. 현행 선거법은 선거비용제한액 내에서 후보자가 청구한 선거비용을 득표율에 따라 보전해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후보자 입장에서 당선도 중요하지만 최소 두 자릿수 득표율 기록이 당선 못지않게 중요하다.
일정 비율 이상을 득표한 후보자에 한해 선거 비용을 국가가 보전해준다. 재력이 없어도 선거에 후보로 나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선거공영제’ 원칙이다(헌법 제116조 2항).
헌법 제116조②: 선거에 관한 경비는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
후보자가 당선되거나 사망한 경우 또는 유효 투표 총수의 15% 이상을 득표한 경우 선거운동에 직접 사용한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 받을 수 있다. 후보자가 유효 투표 총수의 10% 이상, 15% 미만을 득표하면 지출한 비용의 절반을 보전해준다.
만약 득표율 10%를 못 넘으면 어떻게 되나? 한 푼도 보전 받지 못한다. 10%를 못 넘기면 후보 등록 기탁금도 반환받지 못한다. 기탁금도 유효 투표 총수의 15% 이상을 득표하면 전액, 10%이상 15% 미만을 득표하면 절반을 돌려받을 수 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선거 비용은 원칙적으로 후보자가 부담했다. 1970년대부터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선거 비용 일부를 직접 부담하는 형태의 선거공영제를 실시했다.
2000년 선거법 개정으로 후보자가 쓴 선거 비용 중 기탁금 반환 기준 득표율(당시에는 20%)을 획득한 후보자에게는 선전물, 선거사무 관계자 수당 등 일정 항목에 대해 국가나 지자체가 선거일 뒤 보전하는 선거공영제가 실시됐다.
이후 2004년 선거법 개정으로 후보자가 지출한 선거 비용 전액을 국가가 보전해주는 ‘완전 선거공영제’가 실시됐다. 득표율 기준도 이때 정해졌다.
선거 비용 보전 기준이 2010년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에 오른 적이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비용 보전 기준에 대한 판단이었는데, 결과는 재판관 ‘7(합헌) 대 2(위헌)’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합헌 결정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선거 비용을 국가가 모두 부담한다면 후보자 난립으로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10% 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후보자는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18대 총선에서 후보자의 49.9%가 비용을 보전 받은 점에 비춰볼 때 10%라는 기준이 높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 조대현과 송두환 재판관은 다음과 같이 반대 의견을 냈다.
10% 득표율이라는 과도한 기준은 소수 정당의 후보자나 무소속 후보자로 나서는 것을 주저하게 해 민주 정치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재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만 입후보 난립 방지 효과를 가짐으로써 선거의 기회균등 보장 정신에 위배된다.
외국의 사례
선거관리위원회가 2015년 발간한 <각 국의 선거제도 비교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웨덴·스위스 등 23개국은 기탁금 납부제도 자체가 없다.
우리나라의 국회에 해당하는 입법기관 선거에서, 영국은 약 75만원(한화기준), 캐나다는 약 88만원, 뉴질랜드는 약 23만원을 선거 전 후보 등록비용으로 납부한다.
일본의 기탁금은 약 3,300만원(비례대표 선출의원은 약 6,400만원), 한국은 1,500만원이다.
기탁금제도를 운용하는 나라 중 1인당 국민소득대비 기탁금액이 높은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청년의 정치 참여가 활발한 유럽 국가들과 일본·한국의 40세 이하 의원 비율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선거비용 보전의 경우, 결선투표제를 실시하는 프랑스는 대선 1차 투표에서 유효 투표수의 5% 이상 득표한 후보는 선거 비용 한도의 절반을 보전 받는다. 캐나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등록된 정당이 승인한 후보가 선거에서 전체 유효 투표수의 2%를 득표하거나, 선거구에서 유효 투표의 5%를 확보하면 선거 비용 절반을 보전하다.
따라서 한국의 선거 기탁금이 너무 비싸고 기탁금 반환과 선거 비용 보전 기준 득표율도 지나치게 높다는 의견이 많다.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안 되는 정당이나 후보자는 선거 출마를 포기할 수 밖에 없어서 피선거권뿐 아니라 시민들의 선택도 제약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 기탁금을 대폭 낮추고 기탁금 반환, 선거 비용 보전 득표율 기준도 5% 등으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서두에서 이야기한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로서 지방선거 출마는 시기상조인 것으로 보인다. 원내 정당·현역·돈 있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 현행 선거법이 바뀌지 않는 한, 권하고 싶지 않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기탁금과 선거비용 보전제도의 축소 또는 폐지로 인해 선거비용을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치러야 하는 부담에 대한 지적에 대해 오히려 세금을 통해서라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선거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는 주장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길용원, “기탁금제도의 헌법적 타당성에 대한 검토”, 『선거연구』, 제9호(2011), 145~170쪽.
이종문, “기탁금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재검토와 입후보 진정성 제고 방안”, 『선거연구』, 제2호(2011), 419~446쪽.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연구 2015』(2015), 254~255쪽.
한국일보, “낙선한 청년후보 빚더미... 세대교체 가로막는 ‘쩐의 정치’”, (2019.6.17).
황아란, “지방선거”, 강원택 편, 『지방정치의 이해 2』, 박영사(2016), 183~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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