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핵심 문제점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부각되고 있다. 5년 단임의 대통령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위한 무리한 정책 추진뿐 아니라 책임정치의 부재, 임기 말 레임덕(lame duck)으로 인한 국정 운영 차질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따라서 정치권 개헌 논의의 초점은 권력구조 개편이다. 제왕적 행태를 막기 위한 이원집정부제, 레임덕의 문제를 줄이고 책임 수준을 높이기 위한 대통령 4년 연임제, 민의를 신속히 반영하는 책임정치 구현을 위한 의원내각제(내각책임제) 등이 대안으로 맞서고 있다.
군주제와 공화제
어떤 권력구조 혹은 통치형태로 바꿀 것인가와 관련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다양한 용어들을 들을 수 있다. 언급되어지는 통치형태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자.
통치형태란 정치공동체의 우두머리를 어떤 형태로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된다. 즉 우두머리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을 부여하고, 임기는 어느 정도로 할 것이지, 또는 누구로부터 견제를 받도록 할 것인지 등과 관련되는 문제의식과 관련된다.
세계의 다양한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통치형태는 크게 군주제와 공화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군주제(monarchy)는 세습군주에 의해 통치되는 형태로, 모든 권력이 군주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는 형태이다. 대부분 군주가 국가 원수이면서 헌법이나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의회가 없는 국가이다. 대표적인 국가로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등 세계적으로 극소수의 국가에 의해서만 채택되고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공화제(republic)이다. 민주적인 헌법에 의해서 통치가 행해지는 정치체제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여기에 속한다.
한편, 군주제와 공화제를 혼합한 형태로서 입헌군주제(constitutional monarchy)가 있다. 형식상으로는 군주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 정치는 군주가 아니라 헌법에 의거해서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정부형태다.
즉, 입헌군주제에서 “국왕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The King reigns but does not govern). 공화제와 큰 차이가 없으며 유일한 정부형태로 의원내각제를 가진다.
40여개 나라가 여기에 해당된다. 아시아(말레이시아, 부탄, 브루나이, 일본, 캄보디아, 태국) 6개국, 중동(바레인, 요르단, 카타르, 쿠웨이트) 4개국, 아프리카(레소토, 모로코, 스와질란드) 3개국, 북미(캐나다) 1개국, 중미(그레나다, 바베이도스, 바하마, 벨리즈,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세인트키츠네비스, 엔티가바부다, 자메이카) 9개국, 유럽(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모나코, 벨기에, 스웨덴, 스페인, 안도라, 영국) 11개국, 오세아니아(뉴질랜드, 솔로몬제도, 오스트레일리아, 투발루, 파푸아뉴기니, 통가) 6개국 등 이다.
공화제 종류
공화제에서 채택하고 있는 정부형태는 크게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이다.
대통령제(101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가 내각제(75개국)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보다 많다. 두 정부형태를 구분하는 방법은 그리 복잡하지는 않다. 통치자의 권위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행정부의 수반(head of government)으로서 행정부(내각)를 이끌고 국가의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최고 책임자의 역할이 있으며, 다른 하나는 국가원수(head of state)로서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고 대내적으로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서 최고 권위다.
대통령제라 함은 위 두 가지 권한(행정부 수반과 국가원수)이 1인(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는 정치체제를 말하며, 의원내각제는 두 가지 권한인 국가 원수(왕 혹은 대통령)와 행정부 수반(총리 혹은 수상)의 지위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경우이다.
의원내각제 채택 국가 중에서 국가 원수의 권한이 군주에게 있는 경우가 입헌군주제이다. 그 외 의원내각제의 국가원수는 일반적으로 대통령이 맡는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행정부의 존립이 의회의 신임에 의존하는지 여부이다. 또한 행정부가 의회에 의해서 구성되는지 여부도 중요한 차이이다. 이런 점에서 의원내각제는 권력융합형 정부형태, 대통령제는 권력분립적인 정부형태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제
미국은 대통령제(presidentialism)가 태동한 대표적인 국가다. 선진국 중 드물게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다. 입법과 사법, 행정 삼권 분립의 원리를 세우고 이를 철저히 지키는 곳이 미국이다. 예산과 인사를 의회가 통제하고 사법부의 독립도 보장돼 있어 제도적으로 대통령에게 권한이 덜 집중돼 있다.
또한 한국과 달리 원형적 대통령제 하에서는 의원의 장관겸직이 허용되지 않는다.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은 국민직선을 통해서 선출되면, 의회의 신임과 무관하게 헌법에 보장된 임기를 보장받는다. 따라서 임기보장으로 정해진 임기동안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할 수 있고, 신속한 의사결정과 책임정치 구현의 장점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제 하에서는 국민 직선을 통해서 대통령과 의회를 각각 선출하기 때문에 대통령과 의회가 모두 민주적 정통성을 갖는 이원적 정통성(dual legitimacy)의 문제가 발생한다. 즉, 하늘에 태양이 두 개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 소속정당이 의회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는 여소야대, 즉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 상황에서 대통령과 의회간의 대립이나 갈등이 발생할 경우 심각한 정치적 교착상태에 빠질 수 있다. 또 체계적인 정치훈련 없이 누구나 출마가능하고 대통령 개인의 자질에 따라 정부의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다.
대통령의 권한이 강한 국가는 주로 중남미에 있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칠레 등이 대표적이다. 오랜 기간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의 식민지였던 이들 중남미 국가는 독립 이후에도 수십 년간 군부 독재에 시달렸다. 대부분 미국을 본떠 대통령중심제를 도입했지만 제왕적 대통령이 군림하면서 정치·경제적으로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국가가 많다.
개헌 논의와 관련된 대통령 4년 중임제는 현행 정부 형태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변화 폭이 작은 방안이다. 미국처럼 대통령은 임기 4년에 한차례 연임이 가능해진다. 대통령이 연임을 위해 민의와 여론에 민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재선을 염두에 둔 1기 정부가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 또한 높다.
의원내각제
다음으로 영국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의원내각제(parliamentarism)는 다수당의 당수가 국가의 수장인 총리(prime minister, 수상)가 되는 권력구조다. 전제군주와 싸우는 과정에서 쌓은 전통과 다양한 계급·민족을 포용할 필요성 그리고 현대에 들어 겪은 탈공산화 과정 등이 한데 어우러져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자연스럽게 의원내각제를 채택했다.
행정부(내각)의 존립은 의회의 신임에 의존한다. 원칙적으로 의회는 내각불신임권(non-confidence)을, 내각은 의회해산권을 갖는다. 의회가 내각을 불신임하면 내각은 총사직하거나 의회는 해산해 국민에게 신임을 묻는 총선거를 실시한다.
입법권과 행정권이 조화를 이루면 장점이지만, 정국 혼란이 지속된다면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다수당 당수가 국가 수장으로 결정되는 구조여서, 최고지도자를 직접 선출하기 원하는 국민 정서와 배치된다는 평가다. 국회에 대한 낮은 신뢰와 그들이 재벌 혹은 관료와 결탁해 권력을 사유화할 경우 국민이 직접 견제할 방법이 없다.
이원집정부제
마지막으로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절충한 이원집정부제(dual executive system)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한 나라마다 형태는 다소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대통령은 국민 직선으로, 총리(수상)는 의회에서 선출된다.
대통령은 통일·외교·안보 등을, 총리는 내치를 나눠 맡아 분권형 대통령제(semi-presidential system)라고 불리기도 한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상호 견제를 위해 의회는 내각불신임권을, 대통령은 의회해산권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이원집정부제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유럽에서 많이 채택하고 있는데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요소의 절충 정도에 따라 구체적 내용이 다르다. 예를 들어 구(舊) 소련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권한이 강한 이원집정부제를 택했던 핀란드는 소련 해체 후 수차례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점차 줄였다.
이원집정부제 국가에서 만약 대통령 소속정당이 의회에서 소수당인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일 때 구성되는 동거정부(cohabitation)일 경우 국정의 주도권은 총리가 쥔다. 반면 여대야소(與大野小)의 상황 하에서는 대통령은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보다도 더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 이런 점 때문에 정치학자 레이파트(Arendt Lijphart)는 이원집정부제를 ‘대통령과 의회의 관계에 따라서 대통령제와 의회제를 오가는 권력구조’라고 보았다.
대표적인 이원집정부제 국가인 프랑스는 지금까지 총 3차례에 걸쳐 동거정부가 출현했다. 제1차 동거정부(1986~1988)에서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야당인 공화국연합과 민주연합의 당수인 자크 시라크를 총리로 임명하였다. 좌파대통령과 우파총리의 대립으로 갈등이 많았다.
예를 들어, 시라크 총리가 외교권한을 주장하고 국제정상회담에 대통령과 함께 동석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제2차 동거정부(1993~1995) 때에 미테랑 대통령과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 사이에는 큰 갈등이 없었다. 그러나 3차 동거정부(1997~2002)에서는 보수 진영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을 총리로 임명했다. 시라크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미미했고, 좌파 정부의 개혁 정책에 어떠한 거부도 행사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개헌과 관련된 세 가지 정부형태에 대해 살펴보았다. 저마다 장단점이 존재한다. 만약 한국이 정부형태와 관련하여 개헌을 한다면, 어떤 정부형태가 더 나을까? 다수의 국가는 저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정부형태의 변화를 시도했다.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변경한 경우는 있지만 대통령제를 바로 의원내각제로 변경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우며, 대통령제를 이원집정부제로 변경한 사례도 우루과이와 볼리비아 외에는 사례가 없다.
특정국가의 정부형태는 그 나라의 선거제도, 정당체계, 의회구조 그리고 정치문화의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똑같은 정부형태라 하더라도 정치적, 역사적 토양이 다른 곳에 이식되면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한국의 정부형태는 지금까지 대부분 권력자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국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정부형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좋은 제도라고 해도 국민이 싫어하면 도입할 수 없다. 어떤 정부형태든 국민들의 의견이 중요하고 헌법의 계약 당사자로서 국민들의 선택이 개헌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국가들의 정부 형태
22개국 중에서 정부 형태는 의원내각제가 다수다.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곳은 미국이 유일하고, 핀란드와 프랑스, 오스트리아 정도가 이원집정부제로 분류된다. 일본·호주·싱가포르·뉴질랜드를 제외하면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다.
의원내각제 국가는 선거제도로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2019년 유엔의 ‘세계 행복도 조사’에서 10위 안에 든 나라 가운데 덴마크·스웨덴 등 9곳이 비례대표제 국가다.
선관위 자료에 따르면, 비례대표제 국가들이 다수제 국가와 견줘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고 소득불평등도 낮으며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다고 한다.

정부형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리얼미터가 2016년 6월 16일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1.0%가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바람직한 권력구조라고 답했으며, 다음은 이원집정부제(19.8%), 의원내각제(12.8%)였다.
한편, 연합뉴스가 2016년 6월 19일 여야 국회의원 중 개헌찬성론자 250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46.8%(117명)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고 있으며 다음으로 이원집정부제는 24.4%(61명), 의원내각제 14.0%(35명) 순으로 답했다.
결과적으로 일반국민과 국회의원이 선호하는 권력구조는 비슷한 비율로 대통령 4년 중임제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론과 달리 정치인들은 의회권력이 강화되는 의원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로 개헌이 이뤄지길 내심 기대한다는 관점도 존재한다.
참고자료
강원택, 『대통령제, 내각제와 이원정부제』, 인간사랑(2006).
신명순·진영재, 『비교정치』, 박영사(2017), 117~212쪽.
전진영, “이원정부제 권력구조의 특징: 프랑스·오스트리아·핀란드의 비교”, 『이슈와 논점』, 국회입법조사처(2017).
중앙일보, “소득 3만 달러 넘는 국가엔 ‘제왕적 대통령제’ 없다”, (2018.3.16).
중앙일보, “레임덕, 의미와 유래는? ‘원래는 빚 안 갚는 증권거래인 뜻하는 말’”, (2016.4.14).
Lijphart, Arendt. “Presidentialism and Majoritarian Democracy: Theoretical Observation,” in Juan J. Linz and Arturo Valenzuela, eds. The Failure of Presidential Democracy(1994),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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