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rean Politics

사람 ‘人’이 아니라 점 ‘卜’

by 누름돌 2022. 6. 15.
반응형

선거 때 홍보물이나 전단지에 보면 아직도 투표장에 가서 사람 인자 도장을 정확한 위치에 찍으라는 설명이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사람 인자가 아닌 점 복자다. 처음부터 점 복자 도장을 사용한 건 아니다. 도장의 문양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기표 도구의 변화 

 

한국은 1948년부터 지금까지 총 60번의 선거와 6번의 국민투표를 치르며 다양한 기표 용구를 사용했다. 초기 20년 동안 기표 도구로 사용된 것은 탄피(경기·강원)와 대나무였다. 당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길쭉하고 둥근 모양의 물건이 이 두 개였다고 한다.

 

1980년대 초 플라스틱 볼펜이 나온 뒤로는 볼펜 자루가 많이 활용됐다. 전국에서 통일된 기표 도구를 사용한 것은 198512대 총선부터다.

 

하지만 탄피와 대나무로 기표하면 원형 모양()이 찍히게 된다. 기표가 끝나고 투표용지를 접으면 반대편에도 인주가 묻어 누구를 찍었는지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기표 무늬가 자 이기 때문에 복수 투표인지 인주가 번진 것이지 구분이 되지 않아 무효표로 처리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렇게 발생하는 무효표를 방지하려고 고민 끝에 1990년부터 원 안에 글자를 넣기로 결정했다.

 

첫 번째 문양으로 결정된 것은 사람 인()자였다. 199214대 대통령선거에선 안에 사람 인자의 표식이 들어간 도장을 사용했으나, 이는 한 번만 쓰이고 만다. ‘()자는 좌우 대칭형으로, 원 표기와 마찬가지로 다른 칸에 묻었을 때 어느 쪽이 원래 기표인지 알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또한 기표 도구에 새겨진 사람 인자가 한글의 으로 보여 특정인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김영전 대통령이 당시 대선에 출마했기 때문에 빚어진 에피소드였다.

 

그래서 2년 뒤에는 점 복()자로 바뀐다(공직선거법 제159). 왜 하필 이 글자일까? 1994년부터 사용된 점 복자는 상하좌우 대칭 모양이 모두 다르다. 복수투표로 인한 무효표 처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용지를 접는 과정에서 인주가 찍힌 것이라면 점 복자가 뒤집혀 있기 때문이다. 무효표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모양이다.

 

 

공직선거법 제159: 선거인이 투표용지에 기표를 하는 때에는 점 복()’표가 각인된 기표 용구를 사용하여야 한다.

 

 

 

 

외국의 기표 방식

 

투표하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빨간색 인주와 도장을 떠올린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이런 방식으로 투표를 하지 않는다.

 

일본의 기표 방식은 기명식또는 자서식(自書式)이다. 유권자가 지지하는 후보자의 이름을 직접 투표용지에 적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표기를 잘못하면 무효가 되므로 후보자 이름을 안내문에 적어둔다.

 

프랑스에서는 후보자 성명이 따로 적힌 용지를 골라 투명 투표함에 넣기만 하면 된다. 후보마다 용지가 달라 기표를 할 필요가 없다. 특이한 점은 투표용지에 모든 후보자가 후보등록 때 자신의 이름과 함께 예비후보를 등록하며 투표용지에 같이 올린다는 것이다.

 

어떤 후보가 당선된 후 각료로 입각하거나 사망하게 되면 예비후보가 의원직을 승계한다. 우리처럼 재·보궐선거를 치르는 물적 자원의 낭비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제도이다.

 

미국은 연방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주마다 각기 다른 투표방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와 같이 투표용지에 특정기호(×)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며, 투표기의 손잡이를 당겨하는 방식, 소책자나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버튼을 누르는 전자투표, 찬반을 표시하는 방식 등 다양하다.

 

지난 2000년 앨 고어와 조지 부시(George W. Bush)가 맞붙었던 미국 대선에서는 플로리다 주의 선거 결과가 발표되지 못해 대통령 당선자를 한 달간이다 결정하지 못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2000년 당시 플로리다 주의 경우 천공식 투표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대통령 뿐 아니라 연방 상·하원, 주 상·하원, 주 판사, 주 검사, 주 공익 변호사, 주 교육위원, 주 헌법 개정안 등 엄청난 수의 투표를 한꺼번에 실시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도장에 인주를 묻혀서 찍는 식의 투표 방식으로는 투표를 하기도, 개표를 하기도 용이하지 않다.

 
 


다양한 국가에서 각양각색의 기표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개별 국가의 정치적 환경에 따라 상이하게 발전해 온 결과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전자투표 시스템을 개발했지만 해킹 시비등 보안 문제로 아직 활용하지는 못하고 있다.

 

점 복자는 본래 점을 치다’ ‘하늘의 뜻을 받아들인다라는 뜻이 있다. 정치인들에게 하늘의 뜻국민의 뜻일 것이다.

 

 

 

 

 

한국의 기표 방식

 

2005년에는 인주가 필요 없는 만년 도장식 기표용구가 개발돼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붉은 잉크가 내장돼 있어 5000회 이상 찍을 수 있고, 종이를 접어도 묻어나지 않는 순간 건조되는 유성잉크를 사용한다. 만약 잉크가 번져도 절대 무효표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점복자기표기의 경우 전사(轉寫)가 된 표시로는 절대 무효가 될 수 없다. 현재 사용 중인 기표 도구는 오른쪽 4시 방향으로 획이 돌출된 형태다(왼쪽). 이 형태의 인주가 반대편에 번지게 되면 전사된 표기는 오른쪽의 그림처럼 획이 8시 방향이 된다.

 

 

 

 

 

 

 

  참고자료

 

신명순·진영재, 비교정치, 박영사(2017), 341~390.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연구 2015(2015), 447~487.

허프포스터, “잉크가 번져도 절대 무효가 될 수 없는 이유”, (2017.5.9).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