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referendum), 국민발안(initiatives, 국민이 직접 법안 발의)과 함께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 제도로 평가 받는 것이 국민소환제(recall)이다. 국민소환제란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대표 중에서 유권자들이 부적격하다고 생각하는 자를 임기가 끝나기 전에 국민투표에 의하여 파면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민투표와 주민투표, 지자체에 의하여 주민소환제가 운영되고 있지만, 국민발안과 국민소환제는 도입되지 않은 상태이다.
영어로 ‘리콜(recall)’이라고 불리는 소환제도는 실제로 산업계의 ‘리콜제도’와 같은 원리다. 결함이 발견된 제품을 보상해주듯이 국민소환은 선출직 공직자가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 국민이 투표로 해임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논의되는 국민소환제는 주로 ‘국회의원 소환제’다.
일반적으로 국회의 파행이 장기화하면서 의원의 ‘무노동 무임금’이 등장하고, 국회의원들 행태에 분노한 국민이 유권자가 직접 의원을 해임할 수단을 달라는 요구 순으로 이뤄진다. 국회의원을 믿지 못하겠고, 필요하다면 내 손으로 직접 해임시키고 싶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소환제 원리와 작동방식
국민소환제는 오래 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됐다. 2006년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소환할 수 있게 했지만, 정작 이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은 국민소환 대상에서 빠졌다.
형평성 시비가 계속되는 이유다. 대통령도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도 소환할 수 있는데 유독 국회의원에 대해서만 소환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현행 헌법상 대통령은 국민이 소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입법부인 국회가 탄핵소추를 하고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대통령 탄핵소추 절차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헌법 제65조 ①항과 ②항).
헌법 제65조①: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헌법 제65조②: 제1항의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의결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파면한 경험이 있다. 2016년 12월 3일 171명의 국회의원이 대통령탄핵소추안에 참여해 발의를 했고, 엿새 후인 9일 본회의 표결에서 찬성 234, 반대 56으로 가결했다. 이어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 10일 전원일치 의견으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헌법기관 간의 견제로 대통령이 해임될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의미라면, 현행 제도는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이를 허용한다. 행정부 소속 검찰의 기소와 사법부의 재판 결과로 국회의원직 박탈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 헌법에는 국회의원 탄핵에 대한 내용은 없다. 대신 국회의원 제명에 대한 내용만 있다(헌법 제64조 ②항과 ③항). 현역 국회의원이 제명된 건 역대 총 4명으로, 동료들의 온정주의 때문에 실제 제명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헌법 제64조②: 국회는 의원의 자격을 심사하며, 의원을 징계할 수 있다.
헌법 제64조③: 의원을 제명하려면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현 상황에서 논의되어 지고 있는 국민소환제의 구체적인 사항은 알 수 없으나, 2017년 발의된 법안을 보면 주민소환제와 유사하다. 소환사유는 ① 헌법에 따른 국회의원의 의무를 위반한 경우, ② 직권 남용·직무 유기 등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 ③ 국회의원의 품위에 맞지 않는 언행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 등 세 가지이다.
절차는 일정 수 이상이 서명하여 국민소환이 발의되면 그 즉시 해당의원의 직무는 정지되며, 이후 일정 기간 동안 공고한 뒤 국민투표를 진행한다. 투표에서 일정 이상의 투표율을 충족하지 못하면 개표할 수 없고, 통과된다면 해당 의원의 자격이 박탈된다.
외국의 예
여론은 국민소환제에 대해 절대다수가 찬성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2019년 5월 31일)가 국회의원을 국민이 소환하는 ‘국민소환제’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민의 위반 국회의원의 퇴출장치가 필요하다’는 찬성 의견이 77.5%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고, ‘의정활동 위축, 정치적 악용을 우려’하는 반대 의견은 15.6%를 차지했다. 국민 10명 중 8명이 국민소환제를 지지한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는 일부 헌법상 원리와 충돌하고, 정치적 악용 우려가 커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거의 도입하지 않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국회의원을 유권자 발의·투표로 소환 가능한 국가는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등 10여국이다. 이 중 선진국은 영국이 거의 유일하다.
<국민소환제 도입 외국 현황>
국가 | 적용대상 |
영국 | 하원의원 |
벨라루스 | 대의원(하원의원 격) |
에콰도르 | 대통령, 자치 지역 주지사, 시장 등 |
에티오피아 | 하원의원 |
키리바시 | 국회의원 |
나이지리아 | 상원의원, 하원의원 |
팔라우 | 국회의원 |
베네수엘라 | 대통령 포함 모든 선출직 |
키르기스스탄 | 의원 |
리히텐슈타인 | 전체 의회 |
미크로네시아 | 주지사, 부주지사, 주법원판사, 상원의원 |
영국의 국민소환법(Recall of MPs Act 2015)은 2009년 하원의원들이 의원수당을 남용한 ‘지출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의원윤리를 강화하려는 취지에서 2015년 도입됐다. 그리고 첫 번째 사례로 2019년 5월 3일의 하원의원소환에 성공하였다.
다만 영국의 국민소환법은 하원의원이 형사문제로 기소돼 형이 확정된 경우, 의원 윤리위원회에서 정직 14일 이상 당한 경우 등 소환 사유를 엄격하고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정책적 활동으로 인한 의원 소환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의원이 정책적 결정이 소환사유가 되지 않도록 하여 대의기관의 자유위임원리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일정한 사유가 있으면 자동으로 소환절차가 시작되고, 6주 동안에 유권자의 10%가 소환에 찬성한다는 서명을 하면 국회의원이 소환된다는 것이다. 별도의 소환 투표 없이 소환이 되는 것이다.
그 대신에 소환된 국회의원은 소환으로 인해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출마해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한 번 더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소환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를 하고, 연이어 보궐선거를 함으로써 두 번의 선거를 하게 되는 것을 피한 것이다.
국회의원 소환제의 문제점
그러나 국민소환제는 위헌의 소지가 많다. 대표적으로 공무담임권, 신임투표, 자유위임 원칙,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그리고 과잉금지의 원칙 등에 위배된다. 국민소환제가 도입될 경우 국회의원이 전체 국가이익을 위해 활동하게 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인 ‘헌법상 자유위임원칙’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자유위임원칙은 국회의원이 국가이익을 위해 내린 결정이 국민의 뜻에 반해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도록 보장한다. 만약 국민소환제가 도입돼 국민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한 국회의원을 언제든지 끌어내릴 수 있다면, 자유위임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
판례(2007헌마843)에 따르면, 직접민주주의가 아무리 중요할지라도 대의제의 원리를 우선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국민주권주의는 국가권력의 민주적 정당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국민 전체가 직접 국가기관으로서 통치권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직접민주제를 도입하는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대의제와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대의제의 본질적인 요소나 근본적인 취지를 부정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재적인 한계를 지닌다.
2009년 한국행정연구원이 하남시 광역장사시설, 제주도 해군기지, 부천시 장사시설 등의 주민소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주민소환제가 갈등 관리의 측면에서 비선호시설 입지와 관련하여, 집단이기주의(님비) 등 특정 집단의 정치적인 목적에 악용되었다고 보고했다.
분석에 따르면, 주민소환은 비선호시설과 같은 시설 입지 관련 정책 결정 및 집행을 추진하는 행정기관에 부담을 줌으로써 입지 갈등 양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낙선한 후보 측에서 당선인 흔들기 용으로 국민소환을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적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국회의원 개개인의 소신은 사라지고 입법 활동이 지역주민들의 요구에만 초점을 맞추는 인기영합주의로 흐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입법과정에서 스스로를 옥죄는 엄격한 국민소환제도를 만들 가능성도 낮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지역구와 비례대표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례대표 의원은 누가 어떻게 소환할 것인가 등의 문제도 존재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정치사회적 환경이 달라졌고, 깊어진 정치 불신을 극복하고 주권자의 권리를 용이하게 행사하도록 하기 위해 도입하자는 논의도 지속되고 있다. 주민소환제가 도입되었음에도 자치단체장, 지방의원 소환이 남발되지 않았고 성공률도 낮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의원들의 예산부정사용,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 등 김영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당한 혹은 당할 국회의원의 수는 수십 명에 이를 것이다.
정리하면 국민소환제는 효과는 적고 부작용은 커 국회의 불성실함을 해결하기에는 부적절할 수 있다. 정치인의 자질과 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장기적이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17년 발행한 ‘헌법개정 시 국민소환제 도입의 쟁점’에서 “대의기관의 자율적인 자정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전에 주권자가 직접 신임을 철회하는 방식으로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민소환제가 도입되려면, 대의제의 기본원리인 국회의원의 국민대표성 및 자유위임원리와 조화되어야 하며, 불필요한 정책의 도구나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설계가 필요하다.
도편(ostraka)
고대 아테네는 그들의 민주정(民主政)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에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이름을 도편(도자기 파편)에 써 넣어 10년간 국외로 추방하는 ‘도편추방제(Ostracism)’를 운영했다. 70년(기원전 487~417년) 동안 시행되었고, 이 시기 11명을 추방했다.
아테네의 정치인, 페리클레스는 30여 년 동안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는 데에 이를 악용하는 등 국민소환제와 유사한 도편추방제는 아테네의 찬란했던 민주정을 중우(衆愚)정치로 전락시켰다. 이와 같이 직접민주주의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물론 많은 결함이 존재하는 체제이다.
요즘은 ostracism이 본래의 의미뿐만 아니라 ‘왕따’의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참고자료
김선화, “헌법개정시 국민소환제 도입의 쟁점(헌법 개정의 주요 쟁점 시리즈4)”, 국회입법조사처(2017).
노컷뉴스, “국민소환제 압도적 찬성, 영국 사례 보니”, (20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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