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영은 정치 천재다. 20여 년 전만 해도 황당하기만 했던 그의 공약들이 다수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1997년) 주장한 토요 휴무제 실시는 2011년부터 실시되고 있다.
그리고 10년 전(2007년) 공약인 65세 이상 월 70만원 노인수당 지급은, 2014년부터 월 20만원씩 기초연금으로 지급되고 있다. 출산 시 3천만 원 출산수당 지급은, 지자체 중 출산 및 보육수당이 많은 곳은 2천만 원이 넘는 곳도 있다. 그리고 청년 중소기업 입사 시 100만원 5년 지원은, 2015년부터 중소기업 청년 인턴제로 실시되고 있다.
‘허경영 혁명공약 33’의 제1공약은 국회의원 수를 100명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경험에 비추어 제1공약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지 못하겠다.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이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당선되고, 프랑스에선 극우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이 결선 투표에 오르는 세상이다.
인기 없는 국회의원에 대한 ‘의원정수 축소’는 항상 국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아왔다. 국민들의 국회에 대한 비판여론과 혐오정서에 편승해 오히려 정치개혁 방안으로 ‘의원수 축소’를 주장한 의원도 여럿 있었다.
대표적으로 안철수 전 대표도 국회의원 수를 200명으로 줄이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현재보다 100명을 줄이면 4년 동안 2000~4000억 가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경제논리를 폈다.
이런 환경에서 ‘의원정수 확대’ 주장은 얼마 전까지 금기어였다. 그러나 국민들의 의사와 이익이 반영되지 못하는 선거제도 문제에 접하면 의원정수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이슈가 된다. 현재 의원정수 확대는 두 가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첫째는 ‘민심’을 반영하는 선거제도로 평가받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려야 하고 그러려면 의원정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측면이다. 둘째는 ‘대표성’ 문제다. 정치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가 적어 대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의원수를 늘려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 정치개혁의 요체인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정치 혐오’가 큰 장벽으로 남아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과 국회 의석수를 가능한 일치(비례성 강화)시키는 것을 뼈대로 한다. 한마디로 ‘민심’을 국회 구성에 제대로 반영하자는 것이다.
지역구 선거에서 1위를 한 이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소선거구제 성격이 강한 현행 선거제도는 거대 정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자금력·조직력에서 열세인 소수정당이 지지율에 걸맞은 의석수를 확보하려면 비례대표 의원 수가 충분해야 한다. 현재처럼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47석의 구조로는 민심을 반영하기 힘들다.
의원정수 확대는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 전문가 집단에서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항상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곳은 거대 정당이다. 의원정수 확대가 안 될 테니 선거제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겠다는 속내를 가지고 있다. 현행 선거제도가 유지되면 정당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어 선거제를 바꾸고 의원수를 늘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정수 변화 과정
그럼 한국 국회의원의 정수 변화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현재의 모습을 가졌을까. 1948년 제헌의회 당시 우리나라 인구는 2,000만 정도였는데, 국회의원은 200명이었다. 왜 미 군정 시기 과도입법 의원들이 의원정수를 200명으로 설정하여 선출하였는지 그 근거는 없다.
그 뒤 제헌국회에서 제정한 1948년 헌법은 국회의원 숫자를 따로 규정하지 않았다. 즉, 한국에서 국회의 규모는 치열한 논의와 고민 없이 결정된 측면이 존재한다.
헌법에 국회의원 수가 들어간 것은 1963년 헌법으로 “국회의원 수는 150인 이상 200인 이하의 범위 안에서 법률로 정한다”고 했다. 그러나 국회의원 수는 박정희 정권 시절 국회무력화 차원에서 그 수가 줄었다가(175명), 5공화국에서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고 헌법(41조 2항)으로 규정했다.
상한선은 없고 하한선만 규정하고 있다. 이후 2000년 국회의 규모가 299명에서 273명으로 10% 감축되었는데, 이것은 IMF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국회도 구조 조정된 결과이다.
그 뒤 2016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회는 지역구 국회의원을 246명에서 253명으로 늘리고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54명에서 47명으로 줄였다. 헌법재판소의 지역구 인구 편차 ‘2대 1’결정에 맞추기 위해 지역구 의석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는 소선거구제로 뽑는 지역구 의원 253명과 비례대표 의원 47명을 합하여 30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국가는 어떤가?
한편 국회의장 직속 선거제도개혁 국민자문위원회가 2015년 7월 발표한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의원정수는 다른 OECD 국가들에 비교하면 현저히, 그리고 유럽 복지국가들에 견주어보면 심각하게 적은 편이다. OECD 국가 34개국 가운데 31위로 최하위권이다.
한국을 포함한 OECD 34개국의 의원 1인당 인구수 평균은 9만9469명이지만, 한국은 의원 1인이 16만7400명의 국민을 대표하고 있다. 의원 1인이 반영해야할 민의가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1.7배 정도 많다는 것이다.
의원 1인당 인구수가 한국보다 많은 국가는 34개국 중 멕시코, 일본, 미국 밖에 없다. 이탈리아는 6만5000여 명당 1명, 프랑스는 11만 명당 1명이고 비교적 높은 독일은 13만 명당 1명이다. 인구수를 기준으로 한국의 의원수를 OECD 평균 수준에 맞추려면 514명이 되어야 한다.
<OECD 국가의 선거제도와 의원정수>
국가 | 인구수(명) | 하원 의석 |
비례 대표 비율 (%) |
의원 1인당 인구수 | 선거제도 유형 |
오스트레일리아 | 23,131,000 | 150 | 154,207 | 다수대표제 | |
오스트리아 | 8,468,600 | 183 | 46,277 | 비례대표제 | |
벨기에 | 11,178,400 | 150 | 74,523 | 비례대표제 | |
캐나다 | 35,158,000 | 338 | 104,018 | 다수대표제 | |
칠레 | 17,557,000 | 120 | 146,308 | 비례대표제 | |
체코 | 10,510,700 | 200 | 52,554 | 비례대표제 | |
덴마크 | 5,591,600 | 179 | 31,238 | 비례대표제 | |
에스토니아 | 1,320,200 | 101 | 13,071 | 비례대표제 | |
핀란드 | 5,439,000 | 200 | 27,195 | 비례대표제 | |
프랑스 | 63,519,100 | 577 | 110,085 | 다수대표제 | |
독일 | 82,105,000 | 598 | 50.0 | 137,299 | 혼합형(MMP) |
그리스 | 11,090,000 | 300 | 36,967 | 비례대표제 | |
헝가리 | 9,894,000 | 199 | 46.7 | 49,719 | 혼합형(MMM) |
아이슬란드 | 323,800 | 63 | 5,140 | 비례대표제 | |
아일랜드 | 4,593,100 | 166 | 27,669 | 비례대표제 | |
이스라엘 | 8,056,700 | 120 | 67,139 | 비례대표제 | |
이탈리아 | 60,667,900 | 630 | 96,298 | 비례대표제 | |
일본 | 127,298,000 | 480 | 37.5 | 265,204 | 혼합형(MMM) |
대한민국 | 50,220,000 | 300 | 18.0 | 167,400 | 혼합형(MMM) |
룩셈부르크 | 537,000 | 60 | 8,950 | 비례대표제 | |
멕시코 | 118,395,100 | 500 | 40.0 | 236,790 | 혼합형(MMM) |
네덜란드 | 16,755,000 | 150 | 111,700 | 비례대표제 | |
뉴질랜드 | 4,471,000 | 120 | 41.6 | 37,258 | 혼합형(MMP) |
노르웨이 | 5,080,000 | 169 | 30,059 | 비례대표제 | |
폴란드 | 38,502,000 | 460 | 83,700 | 비례대표제 | |
포르투갈 | 10,722,900 | 230 | 46,621 | 비례대표제 | |
슬로바키아 | 5,415,900 | 150 | 36,106 | 비례대표제 | |
슬로베니아 | 2,056,300 | 90 | 22,848 | 비례대표제 | |
스페인 | 46,609,700 | 350 | 133,171 | 비례대표제 | |
스웨덴 | 9,519,400 | 349 | 27,276 | 비례대표제 | |
스위스 | 7,996,900 | 200 | 39,985 | 비례대표제 | |
터키 | 76,055,000 | 550 | 138,282 | 비례대표제 | |
영국 | 62,571,400 | 650 | 96,264 | 다수대표제 | |
미국 | 316,129,000 | 435 | 726,733 | 다수대표제 | |
OECD 평균 | 36,968,785 | 99,649 |
출처: 이정진
또한 한국과 인구수가 비슷한 스페인(약4660만 명)은 상·하원 총 616명으로 한국의 2배가 넘는다. OECD국가 가운데 한국처럼 단원제 국가들은 평균 6만2000명당 1인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국회의원 정수는 802명이 되어야 한다.
강원택 교수의 경우는 초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국회의원 1명이 대표하는 인구수를 기준으로 국회의원 정수를 산출했다. ‘인구 1919만 명·국회의원 수 200명’이었던 제헌국회(1948년) 때는 국회의원 1명이 인구 9만5천명을 대표했지만, ‘인구 5100만 명·국회의원 수 300명’인 20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원 1명이 인구 17만 명을 대표하고 있다.
제헌국회보다 1.8배나 많은 수치다. 만약 제헌국회 당시 의원 1명이 대표했던 국민 규모(9만5천명) 수준을 따른다면 현재의 국회의원 정수가 538명이 돼야하고, 독재정권 시절인 유신(1973년)과 5공화국(1981년) 당시 의원 1명이 국민을 대표했던 규모를 기준으로 해도 각각 359명, 378명으로 늘어나야 한다. 민주화운동(1987년) 시기를 기준으로 삼아도 372명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도종과 김형준 교수는 의원정수 산출의 기준을 대표성과 효율성으로 제안하고 그 지수는 대표성의 경우 총인구와 GDP규모, 효율성의 경우 중앙정부예산과 중앙공무원수를 활용한 결과, 우리나라 국회의원정수는 368명에서 379명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적정한 의원 정수 산출에서 현재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인구 및 사회경제적 요소를 활용하여 적정 규모를 제시한 타게페라(Taagepera)와 슈가트(Shugart)의 “의원 정수는 인구의 세제곱근에 비례한다”는 공식인데, 이 공식에 따르면 한국의 적당한 의원 수는 368명이 넘는다.
적정한 의원수와 관련하여 학계에서 여러 가지 기준으로 산정해 보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최소 368명에서 최대 802석까지 의원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결론적으로 어떤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한국의 국회의원 수는 적다는 것이다.
오히려 늘어난 인구수만큼 민의를 반영할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저명한 정치학자 아렌트 레이파트(Arendt Lijphart)는 전 세계 27개국의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선거제도와 무관하게 의회의 규모가 작을수록 불비례성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입증했다.
국회의원 증원 관련 여론조사에서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효능감이 낮으며, 결국 국민의 반감이 주요한 배경일 것이다. 하지만 일 안하고 밉다고 입법부인 국회를 없앨 수는 없다. 국회의원 수를 줄인다고 일을 더 잘한다는 보장도 없다.
소수의 사람이 권력을 나눠 갖는 것보다 다수의 사람이 권력을 공유하는 것이 권력남용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예컨대,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집권하면서 바꿔 놓은 것 중에 하나는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는 것이었다. 박정희가 집권했을 당시 국회의원 수는 291명이었다.
그러나 63년에 치렀던 선거에서 국회의원 정수를 175명으로 줄였다. 자신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을 왜소화하면서 대통령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겠다는 발상이었다.
또한 예산의 문제로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제안도 근본적인 접근이 아닌 듯하다. 국회의원 정수 감축은 대통령을 견제하고 재벌과 언론, 검찰과 관료, 군대, 사법 등 각 영역의 권력을 감시하는 국회의 역할을 왜소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전두환, 노태우정부 시절 이들이 부정하게 받은 뇌물액수는 수조원에 이른다. 그리고 대통령 배경으로 대기업한테 수백억원을 뜯어낸 최순실 국정농단도 있다. 만약 제대로 일하는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있었다면, 이들이 이렇게 거액의 뇌물을 쉽게 받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국회의원 정수를 확대하는데 거부감은 줄어들 것이다.
국민들의 다수는 ‘일 안하는 국회’의 의원들을 늘리는 데 반대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높은 이유는 국회의원 수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정치행태가 지속되고, 특권에 비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크기 때문이다.
특권을 줄이고 현재의 예산 규모에서 국회의원 수를 늘리겠다고 한다면, 국민의 저항감도 줄일 수 있다. 특권은 줄이거나 폐지하고 의정활동비 공개와 국민소환제 도입 등의 감시를 강화해서 일하는 국회의원이 많아지도록 해야 한다.
참고자료
김도종·김형준, “국회의원 정수산출을 위한 경험연구: OECD회원국들과의 비교· 분석을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제43집 3호(2003).
머니투데이, “허경영 화났다 ‘내 대선공약 따라하지 마!’”, (2016.9.29).
박재창, 『한국의회정치론』, 오름(2003), 59쪽.
의회정치연구회, 『한국 국회와 정치과정』, 오름(2010), 103~108쪽.
이정진,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황해문화』 87(2015), 190쪽.
중앙일보, “심상정 공격 황교안 ‘의석수 확대 염치없다, 정의당은 불의당’”, (2019.10.28).
Taagepera, Rein, and Matthew Soberg Shugart. Seats and Votes: The Effects and Determinants of Electoral Systems.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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