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인간의 생존에 직결되며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 중 하나에 해당된다. 하지만 음식의 역할은 이러한 생리적인 역할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 문화적으로도 많은 역할을 지니고 있다. 특히 국가의 대표들이 모여 외교를 할 때 음식은 그 안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음식을 통해 국가의 대표가 원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하며, 맛있는 음식을 통해 다른 나라의 대표들에게 호감을 얻기도 한다.
한국의 예
우리나라의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필두로 하여 동년 북미정상회담과 외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외교에서의 음식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018년에 행해진 남북정상회담을 보면 음식을 통해 남과 북의 평화의 역사를 음식에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라남도 신안군 가거도의 민어와 해삼초로 민어해삼편수를 대접하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상남도 김해시 봉하마을의 오리농법을 이용한 쌀로 지은 밥을 사용하였다. 통일을 위해 북한을 우호적으로 대하였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에서 나온 재료들로 음식을 만든 것이다.
또, 과거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한 것을 착안하여 서산 목장의 한우로 숯불구이를 준비했다. 정주영 회장은 1998년, 6월과 10월 2차례에 걸쳐 남북간의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며 소떼 1001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을 방문하였는데, 이는 분단 이후 민간 차원의 합의를 거쳐 군사구역인 판문점을 통해 민간인이 북한에 들어간 첫 사례였으며 향후 10여 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될 남북 민간교류의 물꼬를 튼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1990년 평양 공연을 성사시킨 윤이상 작곡가의 고향인 경상남도 통영시 문어로 만든 냉채 또한 남북정상회담의 음식으로 준비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으로 옥류관의 냉면 또한 준비되었다. 냉면은 백범 김구 선생을 연상케 하는 음식으로써, 김구 선생이 1948년 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에서 김일성과 담판을 짓다가, 밤에 숙소에서 몰래 빠져나와서 냉면을 먹었다는 기록에서 착안하였다. 옥류관 냉면을 제안함으로써 남한 측이 구성한 만찬상에 북측이 메인요리를 가져오게 배려한다는 의미도 생겼다.
그리고 회담의 주역인 두 사람,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인 부산의 명물인 달고기 구이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스위스의 뢰스티를 우리식으로 재해석한 스위스식 감자전이 메뉴로 등장했다. 한반도기와 봄꽃으로 장식한 망고무스, 백두대간의 송이버섯과 제주도 한라봉으로 만든 차와 다과 등 ‘남북 화합’의 의미를 담은 디저트들이 만찬의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이와 같이 통일과 평화를 위해온 역사와 두 정상의 유년시절을 음식에 상징적으로 담아 회담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모두가 한마음으로 바랐다.
2018년에 행해진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양식과 한식의 조화를 볼 수 있다. 트럼프(Donald Trump)는 평소 패스트푸드를 즐겨먹고, 스테이크에 케첩을 곁들이기를 좋아하는 등 음식 취향이 확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당시 저녁메뉴를 들여다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에 한식의 요소가 가미된 것이 눈에 띈다.
먼저 미국에서 파티 음식이나 식전메뉴로 많이 등장하는 슈림프 칵테일이 준비되었다. 그리고 주메뉴로는 마리네이드 된 등심구이와 배속김치가 준비되었다. 배속김치란 음식은 배의 속을 파내 그 안에 백김치를 말아 넣은 음식으로써 이미 몇 차례 북한 측에서 주최한 만찬에 호평을 받았던 음식이다. 디저트로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초콜릿 케이크와 수정과가 나왔다. 미국과 북한의 음식들을 조화롭게 활용하여 두 국가 간의 외교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외국의 예
지금까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서 외교를 위해 음식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외교에 음식이 활용된 외국의 사례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음식외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바로 빈 회의(Congress of Vienna)가 있다. 빈 회의는 나폴레옹 전쟁의 사후 처리에 대한 논의를 위해 열린 국제회의이다. 회의를 주도한 건 승전국인 오스트리아,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 연합과 패전국인 프랑스였다. 어떻게 패전국인 프랑스가 승전국들과 함께 회의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일까.
프랑스가 승전국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하도록 할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음식이었다. 당시 프랑스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외무장관 탈레랑(Charles Talleyrand)은 당시 유럽 최고의 셰프였던 카렘(Antoine Careme)을 빈 회의에 데리고 갔다. 빈 회의는 정식 총회 형식이 아닌 강대국 대표끼리 비공식적인 1대1 회담을 하는 방식을 통해 대부분의 회의가 진행되었다. 이런 회담에서는 어떤 음식과 술로 어떻게 상대방을 대접하느냐가 특히 중요했을 것이다.
패전국인 프랑스로서는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면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감동시킬 필요가 있었다. 카렘은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이름난 요리사인 카렘의 요리가 나오는 탈레랑의 초대를 어떤 외교관이 거부할 수 있었을까. 결국 승전국 대표들의 입을 즐겁게 해준 카렘의 음식이, 패전국이었던 프랑스로 하여금 강대국들에 의해 영토가 쪼개지는 비운을 막고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회의를 진행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음식이 외교에 좋은 영향을 끼친 또 다른 사례로는 오바마(Barack Obama)의 베트남 분짜 식당 방문이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6년 5월 23일 비공식 일정으로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분짜 식당 '분짜흐엉리엔(Bun Cha Houng Lien)'을 찾았다. 이날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베트남 무기 수출 금지 조치를 32년 만에 해제하는 역사적 선언을 내놓은 날이기도 했다. 당시 그는 베트남과의 화해 관계를 어필하기 위해 수행원이 아닌 CNN 음식프로그램 진행자와 함께 분짜를 즐기며 맥주를 마셨다. 현지인들과 어울려 국수를 먹는 그의 소박한 모습은 베트남 국민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세 번째로는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의 사례가 있다. 영부인 시절 힐러리는 인도 외교사절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들에게 익숙한 향신료인 카르다몸이 들어간 차를 대접했다. 이에 인도 외교사절단들은 힐러리의 배려심이 깊다며 극찬했다고 한다. 인도 외교사절단을 위해 인도의 향신료를 사용하여 그들로부터 호감을 이끌어낸 것이다. 음식을 통해 상대방을 배려하여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한 좋은 사례이다.
자국의 음식을 널리 알리는 데에 도리어 외교를 활용한 사례도 있다. 2016년 5월 일본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아베(Abe Shinzo) 총리는 일본 정주 중 최고라고 불리는 '순미대음양주'와 일본 3대 최고급 소고기인 마쓰자카 와규 스테이크를 대접하는 등 일본의 식자재와 식품을 적극적으로 내놓았다. G7 정상회의는 주요 7개국 정상들이 모이는 자리인만큼 세간의 관심 역시 크다. 여기에 일본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색 있는 요리를 통해 일식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물론 좋은 사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5년 이란의 하산 로하니(Hassan Rouhani) 대통령의 유럽 순방 중, 프랑스와의 정상회담에서 조찬이 취소되는 일이 발생했다. 프랑스는 자국이 뽐내는 포도주를 오찬 메뉴에 넣으려 하였다. 이에 이란 측은 기분이 상했다. 그들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주류를 마실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란 측에서는 주류를 빼고 할랄 음식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프랑스가 뒤늦게 술을 뺀 조찬 회동을 제시했지만 이미 마음이 상했던 이란은 결국 조찬마저 취소해 버렸다..
주최 측의 잘못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사건도 있었다. 1992년 일본의 미야자와(Miyazawa Kiichi) 전 총리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아버지 부시(George. H. W. Bush) 전 대통령의 만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만찬을 즐기던 도중 아버지 조지 부시 미 전 대통령이 갑자기 위장염으로 쓰러졌다. 그는 곧 10분 정도 휴식을 취하였으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만찬을 종료하고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연어회가 막 나오기 시작해 먹던 도중 발생한 일이라 연어회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고, 그가 위장염을 앓고 있었던 사실이 밝혀지며 상황은 일단락되었으나,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깨져버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렇듯 외교에서 음식은 굉장히 중요하다. 음식 하나로도 국가 간 외교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준비한 음식들을 보면 식재료 하나하나에도 음식 하나하나에도 모두 의미가 담겨 있다.
외국의 사례를 보아도 음식이 외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대방을 응대하는 입장에선 그 나라의 문화와 특성을 파악하여 음식을 준비한다면, 외교에서 좋은 분위기를 갖고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음식에도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상대방의 호감을 사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외교를 이끌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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