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은 1979년 수교 이후 소련에 맞서는 준동맹 상태로 긴밀해졌다가, 1989년 중국군의 천안문(톈안먼) 시위 무력 진압과 1991년 소련 붕괴로 멀어지기 시작했고, 1995~96년 대만해협 위기로 불신이 깊어졌다.
현재 미-중 관계는 역대 최악의 상태로 평가받는다. 대만해협 위기의 역사를 살펴본다.
대만해협 위기의 역사
대만해협은 중국 대륙과 대만 사이에 있는 길이 400㎞, 너비 150~200㎞가량인 바다다. 중국과 대만 관계는 이 해협의 양쪽 해안이란 뜻인 ‘양안’ 관계로도 불린다.
1949년 대만 정부가 세워진 후 세 차례 전쟁 직전의 갈등을 겪었다. 대만해협 위기는 1950년대 초반부터 중국이 대만을 두고 전쟁까지 불사하며 무력충돌이나 긴장을 고조시킨 일련의 위기이다.
중국이 주도적으로 도발한 1·2차 위기와는 달리 3차 위기는 중국의 수동적 대응이었다. 대만은 세 차례 모두 미국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1. 1차 대만해협 위기
1954년 8월 11일 중국은 본토 샤먼에서 불과 3㎞ 떨어진 대만 점유의 진먼섬과 마쭈섬에 포격을 가했다. 이날 저우언라이 당시 총리는 대만은 해방돼야만 한다며 인민해방군을 이 지역에 파견했다고 발표했다. 1차 대만해협 위기의 시작이었다.
1차 위기는 진먼과 마쭈섬에 대만이 대규모 방어병력을 배치한 것에 대한 대응이 명분이었으나, 실제로는 미국의 중국 봉쇄 강화 등에 맞선 역공이었다. 매일 계속되던 진먼섬 등에 대한 포격으로 9월 3일 미군 군사고문 3명이 숨졌다. 미국은 3개 항모전단을 파견했다.
하지만, 중국과 미국 모두는 긴장을 고조시키면서도 확전을 막는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마오쩌둥은 미군에 대한 공격을 전면 금지했다. 미국도 12월 대만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며 진먼섬 등은 배제했다.
2. 2차 대만해협 위기
1958년 8월23일 중국은 진먼섬 등에 다시 포격을 재개했다. 넉 달 동안 이어질 2차 대만해협 위기였다.
약 1천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2차 위기는 미국에는 “최초의 심각한 핵 위기”였다고 크리스찬 허터 국무장관이 평가했다. 진먼섬 포격은 그 이후에도 1979년까지 간헐적으로 계속되며, 일종의 의례가 됐다. 중국은 다시 한 번 미국과 타협하기를 선택했고 1979년 미·중 수교를 맺으며 포격은 중단됐다.
3. 3차 대만해협 위기
세 번째 위기는 1995년 발발했다. 1995년 6월 리덩후이 대만 총통이 모교인 코넬대 연설을 이유로 미국을 방문했다.
중국은 이를 ‘하나의 중국’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1995년 7월과 이듬해 중국은 대만 인근 해역에서 미사일 발사를 동반한 군사 훈련을 실시했다. 그러자 미국은 항모전단 2개를 대만해협에 급파했다. 베트남 전쟁 이후 동아시아에 배치한 병력 규모로 최대였다. 리 총통이 재선 된 후 중국과 미국이 각자 병력을 철수하며 상황은 종료됐다.
미국의 전력 앞에서 거듭 굴복했던 중국은 이후 본격적인 군비 확장에 나서게 된다. 중국의 대응은 미 항모전단의 제1도련선(오키나와~대만~필리핀) 접근을 막는 것에 집중됐다. 중국은 이를 위해 ‘항모 킬러’라 불리는 둥펑-26D 대함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등 중거리 미사일 전력 강화에 나섰다. 둥펑(DF)은 중국이 개발한 탄도미사일로, 단거리 미사일부터 대륙간 탄도미사일까지 다양하다. 이는 미국에 맞서는 중국의 군사전략인 반접근·영역거부(A2·AD) 전략으로 구체화되어 간다.
4. 4차 대만해협 위기(?)
미·중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면서 대만해협의 긴장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4일부터 대만 주변 바다 여섯 면을 72시간 동안 포위한 채 육해공군 합동 훈련을 벌이기 시작했다. 대만 상공을 가로지르는 미사일을 발사하고, 중국군이 대만 해협의 중간선을 넘는 것이 일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중 갈등의 한 복판에서 대만에 그 압력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전쟁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2023년 ‘다음 전쟁의 첫 전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중국군이 2026년 대만 점령을 위한 상륙작전을 감행하는 상황을 가정한 ‘워 게임’ 결과를 내놓았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승리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미-일 동맹도 중국의 침공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서로 1만 명 이상이 숨지고 2척의 항공모함과 수많은 함정·항공기가 파괴되는 등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각오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미국이 대만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몇십척의 함정과 몇백대의 항공기, 몇천 명의 병력을 잃을 것”이라며, 그로 인해 미국은 “몇 년 동안 국제적 위상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보고서는 “미국이 이기더라도 패배한 중국보다 장기적으로 더 고통받는 값비싼 승리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승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경고를 했다.
중국도 막대한 피해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1만명 남짓한 병력이 전사하고 주요 함정 138척, 항공기 155대를 잃을 것으로 예상됐다. 보고서는 “중국의 해군이 괴멸 상태가 되고 상륙부대의 핵심 전력은 파괴되고 몇만 명의 병력이 포로로 잡힐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군사력은 미국을 넘어섰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만과의 통일을 실현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겠다는 약속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통치 정당성의 핵심이며, 몇 달 뒤 열릴 중국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시 주석이 장기집권의 길로 들어서는 중요한 명분이다.
이번 상황은 미-중 간의 압도적 국력 차이가 존재했던 1~3차 위기 때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미·중 관계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빗댄 안보·국방 분야 석학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2021년 12월 보고서에서 양국이 대만 또는 중국 주변에서 국지적으로 충돌한다면 미국에 승산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이 대만 부근으로 군사력을 이동시키기도 전에 중국이 대만 장악을 끝낼 것이라고 그는 예상했다.
경제와 안보를 아우르는 모든 영역에서 치열하게 갈등하고 있는 두 나라가 예전 같은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줄지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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