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는 국가의 화폐와는 달리 특정 지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대체통화이며, 지역 내에서 자본을 순환시킴으로써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지역에 뿌리를 두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살리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출발하였다.
지역화폐의 역사
현대적인 의미의 지역화폐가 시작된 곳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서쪽으로 140km 떨어져 있는 작은 소도시 커트니(Courtenay)이다. 이 작은 소도시는 주요 산업인 벌목업의 침체와 그에 따른 실업의 증가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이로 인해 지역 내의 자본의 절대적인 총량이 부족해지자, 1983년 마이클 린튼(Michael linton)이 현금을 대신하여 물품과 서비스, 용역을 거래하기 위해 지역 내에서만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최초의 지역화폐,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이다.
마이클 린튼은 진짜 돈이 아닌 가상의 화폐를 자신의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지급했고, 마을의 다른 가게에도 이와 같은 방식의 화폐 거래를 하자는 약속을 만들어 나가며 이를 마을 전체로 확대해 나갔고, 이것이 확대되어 후에는 컴퓨터로 통제되는 통장계좌 형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마이클 린튼이 구상한 "LETS"는 침체되었던 지역경제를 순환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냈고, 지역화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커트니에서 처음 시작된 지역화폐는 90년대부터 캐나다, 뉴질랜드,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지로 퍼져 나가 세계 각지에서 발행되기 시작했다. 세계의 지역화폐 발행 추세에서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일컬어지는 것은 영국의 브리스톨(Bristol) 시에서 2012년부터 발행된 "브리스톨 파운드(Bristol Pound)"이다.
브리스톨은 지역에 진출한 유통 대기업들이 골목상권을 장악했었고, 이로 인해 지역의 자본은 외부로 유출되었다. 그러자 브리스톨 지역 사람들은 지역화폐의 도입을 통해 지역 내 자본의 유출을 최소화하고 지역 내에서 자본을 순환시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자 하였다.
시장이 자신의 월급을 지역화폐로 받을 정도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결과, 브리스톨의 지역화폐는 2012년에 도입이 되었고, 이후 브리스톨에 성공적으로 정착해, 도시 내 어디서든지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지역화폐 역사와 현황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지역화폐가 소개된 것은 1996년이지만, 실질적으로 지역화폐가 대두한 것은 1999년 대전에서 발행한 지역품앗이 "한밭레츠"부터이다. "한밭레츠"는 IMF 사태 이후 주민들이 자립할 삶의 토대를 마련하고 지역 주민들 간의 공생을 모색하기 위한 방식의 일환으로 제시되었던 지역화폐운동을 뿌리로 두고 있으며, 정책으로 발행하는 것이 아닌 지역공동체에 국한된, 지역화폐에 참가하는 회원들이 지역화폐를 매개로 서로 간에 노동력이나 물품을 교환하는 우리 전통의 품앗이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런 지역화폐가 본격적으로 정책의 일환이 되고 우리 사회에 정책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성남시의 지역화폐 "성남사랑상품권"의 발행부터이다.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은 지역화폐를 특정 소수가 아닌 다수가 함께 사는 공동체 경제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 당위성을 주장하며 자신의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고, 그 정책의 일환으로 청년배당이라는 복지수당을 지역화폐의 형식으로 발행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성남시의 지역화폐 정책은 성남시장이 교체된 이후로도 재정이 확대되었고, 2017년에는 278억, 18년에는 445억, 19년에는 942억을 발행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다.
지역화폐가 정책으로 도입된 이후, 우리나라에서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지자체의 숫자와 지역화폐의 발행량은 계속 증가했다. 2016년의 지역화폐 발행금액은 1168억 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2020년이 되어서는 9조 원으로 증가하였고, 2016년에 지역화폐를 발행하던 지자체의 수가 53개인 것에 비해 2020년에는 229개로 대폭 증가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지역단체의 수인 243개에 크게 근접한 숫자로써, 이미 우리나라의 많은 지역에서 지역화폐를 도입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역화폐는 정확히 무엇이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나라 지역화폐 발행의 근거는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두고 있으며, 지역화폐의 정의는 이 법조문 2조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 법률에 따르면 지역화폐의 정확한 법적 명칭은 “지역사랑상품권”이며, 이는 명칭과 형태 관계없이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일정한 금액이나 물품 또는 용역의 수량을 기재하여 증표를 발행, 판매하고 그 소지자가 자치단체의 장 또는 가맹점에 제시, 교부하거나 사용함으로써 증표에 기재된 내용에 따라 물품, 용역을 제공받을 수 있는 유가증권, 선불전자지급수단, 선불카드를 의미한다.
지역화폐의 종류는 크게 발행방식과 사용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발행방식은 일반발행과 정책발행으로 구분되는데, 우선 일반발행이란 소비를 위해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방식을 말한다.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서 지역화폐를 판매점에서 구입하거나 지역화폐 카드에 현금을 충전하는 모든 것이 일반발행에 포함된다.
정책발행이란 복지수당을 지역화폐로써 지급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산후조리비나 청년배당을 지역화폐로 발행하는 방식이나,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현금이 아닌 지역화폐의 형태로서 지급하는 것이 바로 정책발행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용방식에 있어서는 지류형, 카드형, 모바일형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지류형은 판매점에서 천 원권, 오천 원권, 만 원권처럼 종이화폐와 같은 방식의 지역화폐를 구입하여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고, 카드형은 금융사나 모바일 앱 등을 이용해 현금을 충전하여 체크카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며, 모바일형은 모바일 앱을 통해 스마트폰의 바코드 혹은 QR코드를 활용하여 결제하는 방식이다.
지역화폐의 발행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이며, 이로 인해 현금과는 다른 지역화폐 특유의 특징이 생겨난다.
첫 번째, 지역화폐는 사용 가능한 지역이 제한적이다. 국내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현금과는 달리 지역화폐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특정 지역 내에서만 통용되는 대안화폐이기에 구입에는 지역 제한이 없으나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은 그 지역화폐를 발행한 지역 내부에 있는 가맹점에 한한다.
성남시에서 발행한 "성남사랑상품권"은 성남에서만, 부산에서 발행한 "동백전"은 부산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며, 부산에 사는 사람이 "성남사랑상품권"을 구입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부산에서 사용할 수는 없다.
두 번째, 지역화폐는 사용 가능한 업종이 제한적이다. 지역화폐는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소상공인, 자영업자 보호, 지역자본의 유출을 막는다는 목적을 위해 발행되므로 대체로 수익이 지역을 벗어나게 되는 배달 앱, 백화점,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 프랜차이즈, 온라인 몰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며, 유흥업소, 레저업종, 사행업종 같은 사행업소에서는 사용을 제한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용 가능한 공간과 업종에 제한을 받기에 지역화폐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동일금액의 현금보다는 가치가 낮다. 그렇기에 대부분 지역에서는 지역화폐의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지역화폐 사용 시 캐시백, 할인, 연말정산 소득 공제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세 번째 특징으로, 지역화폐는 지역마다 발행방식과 혜택에 차이가 있다. 지역화폐는 발행하는 주체인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발행할 수 있으며, 그 예로 경기도의 지역화폐는 같은 "경기지역화폐"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음에도, 그 발행하는 방식이 시별로 지류형, 카드형, 모바일형으로 나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역화폐는 지역마다 제공하는 혜택이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A라는 도시에서는 지역화폐를 지류형으로 할인 혜택을 15% 제공하여 발행할 수 있고 B라는 옆 도시에서는 카드형으로 캐시백 혜택을 10% 제공하여 발행할 수 있다.
지역화폐의 효과 및 장단점
그렇다면 이러한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와 장단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지역화폐의 가장 대표적인 장점이자 경제적 효과로 손꼽히는 것은 바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자본의 유출 최소화다. 지역화폐는 그 화폐를 발행한 지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사용 가능한 업종도 지역 내의 소상공인, 자영업자로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지역화폐는 필연적으로 그 지역 내에서 소비되며, 지역화폐의 사용을 통해 대형마트 등의 수익을 대신 지역 내 소상공인들에게로 이전시켜 지역 내 소상공인들을 보호하고 지역의 자본이 타 지역으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 내부에 그대로 남아있게 할 수 있다.
또한 지역화폐에 주어지는 할인 혹은 캐시백 등의 혜택은 사용자가 더 값싼 값에 서비스와 물품을 제공받는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켜 소비심리를 증폭시킬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의 내수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효과에 대한 반박과 지역화폐의 단점 역시 존재한다.
만약 지역화폐를 사용하여 지역 내부의 자본 유출을 막고 지역의 소상공인 매출을 늘렸다고 가정해보자. 지역의 자본이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접한 다른 지자체의 매출이 감소한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되면 다른 지역에서도 자기 지역의 자본을 보호하기 위해 지역화폐를 도입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지역이 자신들만의 지역화폐를 도입하게 되는 결과에 수렴할 수 있으며, 이렇게 되면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하게 되는 제로섬 게임과 같은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지역화폐에 세금이 투입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것부터 세금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역화폐는 결과적으로 현금보다는 가치가 떨어지기에, 이를 사용하게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할인 판매나 캐시백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해주어야 하는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족분을 충당하려면 결국 세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일례로, 2021년의 지역화폐 발행분은 20조 2천억 원인데, 그중에서 할인율 10%에 대한 부족분을 지원하기 위해 국비로 1조 2천억 원, 지방 예산으로 7600억 원이 투입되었으며, 수수료, 발행비용 등의 부대비용을 충당하는 데 있어 약 1123억 원이 소요되었다는 행정안전부의 자료가 있다.
이로 인해 지역 재정이 열악한 지역에 대해서는 지역화폐의 사용이 오히려 지역 재정을 악화시킬 수 있고, 지역 재정이 악화한다면 지역화폐 혜택 역시 쇠퇴할 수 있다. 그 예로 2022년 4월 제주도는 제주지역화폐인 "탐나는전"의 이용 규모가 급속도로 증가하자, 지역화폐를 뒷받침해 줄 예산이 부족해졌기 때문에 지역화폐에 대한 할인혜택을 중지하기로 결의하였다. 지역 재정의 악화에 따라 지역화폐에 대한 혜택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지역화폐에 대한 경제적 효과에 대한 논쟁은 현재진행형에 있다. 지역화폐는 단순히 화폐를 대신하는 것 뿐만이 아닌,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 우리 사회에 지역화폐가 생겨난 지 2022년 기준으로 겨우 20년 정도가 흘렀을 뿐이다. 이 지역화폐가 앞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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