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선출된 대표는 주권자인 국민의 질문에 응답하고 국정에 관해 설명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국민은 국정 최고책임자가 어떤 생각으로 국정에 임하는지 알 권리가 있다.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은 출근하는 대통령이 잠시 시간을 내어 대통령실 담당 기자들과 주요 현안에 대해 짧게 묻고 즉답을 듣는 ‘약식 회견’이나 ‘즉석 문답’을 말한다. 도어스테핑은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다.
도어스테핑은 저널리즘의 한 취재기법이다. 말 그대로 만나기 어려운 인물이 집이나 건물을 드나들 때 문간(Doorstep)에서 집요하게 질문하는 것을 말한다.
외국에서는 정치인 등의 집 앞에 버티고 선 기자가 답하기 곤란하거나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가 취재윤리 논란으로 번지기도 한다. 물론 한국 기자들도 중요한 취재원을 만나기 위해 누군가의 집 앞을 몇 시간이고 지키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 언론계에서는 이를 ‘뻗치기’라고 부른다.
미국 대통령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기자들과 마주친다.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와 기자회견장인 브리핑룸이 백악관 서관(웨스트윙) 1층에 같이 있기 때문이다.
190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위에 떨고 있는 기자들을 백악관 안으로 불러들여 방 하나를 내어준 게 브리핑룸의 시초라고 한다. 대통령 전용 헬기가 뜨고 내리는 백악관 남쪽 잔디밭(South Lawn)도 도어스테핑 단골 장소로 유명하다.
영국에서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기습과 괴롭힘’ 등 부정적 의미가 강해서 BBC에서는 취재원이나 가족 등에게 폭력을 당할 수 있으므로 주의하라는 안전 가이드도 있다고 한다. 또한 상사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고 되도록이면 지양하는 인터뷰 방식, 이게 바로 도어스테핑인 것이다.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는 도어스테핑 장소로 유명하다. 마거릿 대처는 1979년 5월 4일 총리로 선출된 직후 총리 관저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을 만나 도어스테핑을 했다. 총리로 선출된 소감을 묻는 말에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문을 인용했는데요. “분열이 있는 곳에 화합을”(Where there is discord, may we bring harmony)이라는 그의 발언은 영국에서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일본에서는 총리의 도어스테핑을 ‘부라사가리’(‘매달리기’란 뜻의 일본말)라고 부른다. 지난 2001년 취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가 출퇴근 때마다 나가타초의 관저 앞에서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준 이래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기시다 후미오 현 일본 총리는 지난해 지바현 지진 때는 새벽 1시10분에, 또 주요 사안이 있을 때는 밤에도 관저 앞에 나선다. 국정을 신속히 알리고, 위기 때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등 선제적 리스크 관리 수단으로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다.
정치는 언어의 예술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주가를 요동치게 할 수도 있고 외교관계를 경색시킬 수도 있다. 잘못하면 얻는 것 보다 리스크가 커진다.
이런 점에서 도어스테핑은 단문단답이라 오해의 소지가 있고, ‘언론플레이의 장’으로 역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언론이 사전 각본 없이 대통령의 생각을 물어볼 수 있는 ‘대면’의 기회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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