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1만 원의 돈을 내고 들어가 2시간짜리 영화를 본다. 10분이 지났는데 너무 재미가 없다. 아무래도 잘못 선택한 것 같다. 어찌할 것인가?
이미 흘려보낸 10분의 시간과 한번 치른 티켓값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회수하지 못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매몰비용(sunk cost)’이라고 한다. 현명한 사람은 매몰비용은 깨끗이 잊는다. 남은 시간마저 영화를 볼지, 극장을 나가 다른 일을 할지를 따진다.
기회비용은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기 위해 포기한 나머지 중 최선의 가치를 일컫는다. 매몰비용은 이미 투입하고 파묻힌 탓에 회수하기 어려운 비용이다. 이미 들어간 비용이 아까워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본전’ 생각에 비합리적 선택을 하는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콩코드의 오류’다.
콩코드(Concord)는 1962년 영국과 프랑스가 힘을 합쳐 만든 세계 최초 초음속 여객기다. 세련된 디자인과 마하 2.04에 이르는 빠른 속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속도에 중점을 두고 몸체를 너무 좁게 설계해 탑승 인원이 100명밖에 되지 않았고, 연료 소모량은 많았다. 타 기종의 일등석보다 20%나 요금이 비싼 데다, 비행거리가 짧아 취항할 수 있는 노선도 한정돼 사업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두 나라 정부는 투자비가 아깝고 그만두는 것은 체면도 구기는 일이라, 사업을 계속 끌어갔다. 결국 적자가 크게 늘어나고 2003년에야 상업 비행을 중단했다.
심리학자 핼 아크스와 피터 에이턴은 1999년에 발표한 ‘매몰비용과 콩코드 효과: 인간은 하등동물들보다 덜 합리적인가?’란 논문에서 매몰비용에 연연하는 것이 성인 인간 특유의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재화를 낭비하고 있다고 손가락질받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 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당신은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TV로 영화를 보다가 재미가 없으면 주저하지 않고 꺼버린 후 다른 영화를 찾아서 보거나 다른 일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5만원을 내고 어떤 공연을 보러 갔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기대와 달리 공연은 너무 재미없고 지루하기만 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당신은 계속 공연을 볼 것인가, 아니면 중간에 나올 것인가.
재미가 없어도 계속 공연을 본다면 당신은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진 셈이다.
우리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라는 말을 자주 쓴다. 위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이미 낸 5만원이5만 원이 아깝긴 하지만 이미 낸 돈은 매몰 비용, 즉 돌이킬 수 없는 비용이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할 때 고려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이미 낸 돈 5만 원이 아까워 계속 자리를 지킨다면 그것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아니다.
입장료는 공연을 끝까지 보던 중간에 그만 보고 나오든 간에 이미 낸 비용이다. 따라서 남은 공연 시간 동안 지루함을 억지로 참아내며 버티기보다는 그 시간에 나와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훨씬 개인의 만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매몰 비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매몰 비용'(sunk cost)이란 이미 어떤 일을 진행하면서 비용이 지출되어 다시 회수할 수 없게 된 비용을 의미한다.
또한 이미 지출한 매몰 비용이 아까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더욱 깊이 개입해가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용하여 다른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을 '매몰 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라고 한다.
이러한 '매몰 비용의 오류'에 대해 행동경제학에서는 매몰 비용에 매달리는 인간의 경향성은 인간의 합리성이 심리적 요인에 영향을 받아 제한적으로 작동하는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인간에게는 이미 투자된 금액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싫어하는 '손실 회피' 성향이 내재하여 있다고 보고, 이로 인해 포기해야 할 매몰 비용이 많이 들수록 손실 회피 기제는 더욱더 강하게 작동할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 대해서 행동경제학자들은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가장 대표적인 실험이 머그잔 실험이다. 사람들에게 머그잔을 보여주면서 만약 자신이 머그잔을 산다면 얼마에 살 것인지 가격을 매겨 보라고 했다. 그리고 머그잔을 공짜로 나눠준 후 다시 물었다. 만약 머그잔을 판다면 얼마에 팔 의향이 있는지.
재미있는 것은 머그잔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보다 머그잔을 가지고 있을 때의 머그잔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머그잔을 판다는 것은 곧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때 머그잔 상실에 대한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매몰 비용의 오류'라도 이를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그 반응은 달라질 수 있다. 개인과 기업에서는 매몰 비용 처리가 중요하다면 정부와 국가에서는 미래를 결정할 중차대한 사안이 될 수도 있다. 수십 년간 대한민국을 달군 국책사업 논쟁만 봐도 예외 없이 매몰 비용의 문제가 숨어 있다. 사업 추진 측은 매몰 비용을 매몰하고 싶어 하지 않는 국민 정서를 적절히 활용했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를 잇는 대운하 사업을 추진하다가 경제성 문제와 여론 악화로 추진이 어렵게 되자 4대강 사업으로 전환하였다. 4대강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9년 이후 홍수 예방과 수량 확보의 실효성 문제나 수질오염과 생태계 훼손에 대한 우려로 사업 중단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정부는 "공사가 상당히 진척됐기 때문에 중단할 수 없다"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이미 투자된 수조 원이 아까워서라도 사업을 멈출 수 없다는 반박 주장이 거셌다. 이는 전형적인 매몰 비용의 오류이다.
우리는 이렇게 매몰 비용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약 2달 전 세계적으로 큰 쟁점이 되었던 도쿄올림픽을 기억하는가? 7월 23일 일본 도쿄에서 막이 오른 2020도쿄올림픽은 시작 전부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한차례 연기됐던 일이 있었고 취소와 강행 사이의 곡예 끝에 개막이 되었다. 그러나 도쿄올림픽을 개최한 당시의 상황은 한차례 연기된 1년 전 상황보다 더 악조건이었다. 올림픽이 개최되는 도쿄의 경우만 해도 하루 확진자가 1천 명 이상을 기록하는 등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태였고 선수촌 등 곳곳에서도 감염자가 잇따라 나왔다.
또한 일본 국민들은 경기장 밖에서 올림픽 기간에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올림픽을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수십억 달러가 걸린 문제이자 IOC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계약, 스가 총리의 정권 유지를 위한 일본 정부의 결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IOC는 이른바 '개최 도시 계약'이라는 조항에 따라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통제권을 갖고 있다. 또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방송 중계권 판매와 스폰서 수익을 잃을 수 있으므로 스스로 대회를 취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도쿄올림픽은 주 수입원인 중계권 판매로만 26억 4,600만 달러, 한화로 약 2조 9,000억 원이 걸려있다. 무엇보다 일본은 올림픽이 1년 연기되면서 개최 비용이 1조 6,440억 엔, 한화로 약 16조 8,000억 원까지 늘어나게 됐다. 만약 대회가 취소되면 위약금 등 피해는 눈덩이처럼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도쿄올림픽을 강행한 가장 실질적인 이유는 올림픽을 취소하게 되면 지금까지 투입한 자금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즉, 매몰 비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매몰 비용은 경제적 가치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시간과 노력 등도 포함된다. 그렇기에 이번 도쿄올림픽을 취소하면 그동안의 노력과 비용이 허사가 되어 정책 결정자의 전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핵심적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미 써버린 비용에 사람들이 이처럼 애착을 갖는 이유는 뭘까?
과거 지출한 비용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또 앞으로 상황이 호전되면 들인 비용을 모두 회수할 수 있으리라는 낙관도 품는다. 무엇보다 중도 포기는 과거 자신의 결정을 무력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다. 즉 과도한 낙관성과 자신의 판단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향후 판단을 어지럽히는 요인이다.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될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는 유연한 태도와 용기가 필요하다.
세계적인 투자가인 워렌 버핏은 "당신이 구덩이에 빠져있음을 깨달았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삽질을 그만 멈추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매몰 비용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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