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 현상을 빗대어 말할 때 레임덕(lame duck)이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말로 옮기면 ‘절름발이 오리’이다. 이 말에는 동물 폄하뿐만 아니라 장애 비하도 함께 들어 있으니,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은 결코 아니다. 안 쓰면 좋을 말이다.
레임덕 용어의 유래는 18세기 런던 증권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61년 호러스 월폴은 주식시장과 연관하여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황소, 곰, 그리고 레임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는 주가가 오르는 장세를 황소에, 내려가는 장세를 곰에, 주식 투자에 실패해서 채무불이행 상태에 이른 투자자를 절름발이 오리에 비유한 것이었다.
영국 금융계에서 쓰이던 레임덕은 19세기 미국으로 건너가 정치 용어로 활용되었다. 미국 남북전쟁 발발 직전인 1860년 11월 6일 대통령 선거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이 당선되었으나 제임스 뷰캐넌 현직 대통령의 임기가 다음 해 3월 4일까지였기 때문에 4개월 동안이나 국정 혼란이 있었다.
이후 미국 대통령의 레임덕은 거의 대부분 신임 대통령 당선일과 현직 대통령 퇴임일 사이의 문제에서 야기된 것이었다. 그 기간을 특별히 ‘레임덕 기간’(lame duck period)이라고도 불렀다.
경제 대공황 시기였던 1932년에 당선되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계기로 미국 의회는 1933년 수정헌법을 제정해, 11월 선거 이후 퇴임할 대통령이 다음해 3월 4일까지 재직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을 1월 20일로 앞당겨 레임덕 기간을 단축했다.
레임덕이라는 말은 영국에서 탄생했지만, 영국 정계를 대상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실제로 분명한 레임덕 현상도 없다. 이는 내각책임제의 특성이기도 한데,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의 대표는 선거 직후 바로 총리로서 내각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수의 정당이 연립내각을 구성할 필요가 있을 때는 새 정부의 일정이 지연될 수 있지만, 이때도 퇴임할 총리가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관리 총리’(caretaker prime minister) 역할을 충실히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임기가 반쯤만 돼도 레임덕이라는 말로 집권 정부를 비판한다. 레임덕을 ‘임기 말 현상’이라고 풀어 쓰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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