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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Politics

전국구 vs 비례대표

by 누름돌 2023.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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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란 흔히 알고 있듯 득표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이 당선되고 그 사람이 대표가 되는 제도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출방식은 아이러니하게 다수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가령 세 명 이상의 후보자가 경합해 35%, 33%, 32%를 득표했을 때 가장 많이 받은 35%가 당선되지만 역으로 그는 65%의 지지를 받지 못한 사람이다. 단순 다수제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한 사람을 택하게 되면 다수가 지지하지 않은 사람을 선출하게 되는 역설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등장한 것이 바로 비례대표제이다. 지역구에 당선되지 못한 소수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보다 더 다양한 계층, 세대, 직군을 대표하기 위해 과다득표자나 최다득표자뿐만 아니라 모든 투표 결과를 의석수에 반영하기 위한 선거제도이다.

 

 

 

 

 


 


우리나라는 1963년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처음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는데 이때 전국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초기 전국구 제도의 배분 방식은 전혀 비례적이지 않았는데 당시 국회의원 175명 중 44명을 전국구에서 선출했으며 제1당이 득표를 절반 이상 하게 된다면 정당별 득표 비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지만 제1당의 의석수는 전국구 의원정수 2/3를 초과하지 못하며 또한 절반 미만일 시  제1당에 전국구의석의 절반을 주고 이후 제2당 이하의 잔여 의석을 득표 비율로 배분하였다. 즉, 제1당에 의석 배분을 최소 절반 이상을 보장하는 이런 방식은 제1당에 유리할 수 밖에 없고 또한 유권자의 의사에 비례한다고 볼 수 없었다.

 

 



민주화 이후 제 9차 헌법이 개정되고 나서야 비로소 제1당 몰아주기는 벗어났으며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전국구라는 명칭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비례대표로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1인 1표 제로 인한 문제점들이 남아있었다. 이는 내가 후보자를 찍으면 그 후보자가 속한 정당에도 표가 가는 방식이었는데 이때 무소속을 찍은 유권자들은 정당투표를 따로 할 수 없으니 사표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2001년, 헌법재판소는 정당에 대한 투표를 별도로 실시하지 않고 지역구 후보자에게 행해진 투표를 각 정당의 비례대표에 대한 투표로 간주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후 바뀐 비례대표제는 현재 우리가 아는 1인 2 표제를 채택하게 되었고 후보자 1표 정당 1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바뀐 현 비례대표제에도 많은 문제점이 존재한다. 비례대표제의 취지인 다양한 계층 및 직업,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과는 다르게 특정 세대 및 직군에 집중되어 있다.

 

한 보도기사에 따르면 현행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2004년 17대 총선부터 2016년 20대 총선까지의 비례대표 당선자 211명을 전수 조사한 결과 가장 높은 직군은 정치인으로 19.4%에 달했으며 이외에 정치인으로 분류되지 않은 많은 인사들이 캠프 혹은 특정 계파에서 활동한 공적을 인정받아 논공행상 형 공천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한 연령별 비율에서는 40~60대에 90% 이상이 몰렸으며 20대 국회의원은 20대 국회 들어서야 처음 배출되었다. 17대 때는 30대가 전무했고 18대 1명, 19대 5명, 20대 1명이었지만 모두 재선에 실패해 국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이공계 출신은 18대에서 1명에 불과했고 17~20대까지 전체의 10%를 넘긴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경제와 법학 등 이른바 기득권 학문 분야에 몰렸다.

 

물론 오랜 기간 정치 경험을 쌓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는 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으나 재정적, 정치적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입법부 진출 기회를 열어준다는 비례대표 취지와는 어긋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렇게 힘들게 진출한다고 하여도 1인2표제가 도입된 17대 총선부터 19대까지 비례대표 의원들이 재선 한 경우는 고작 1.8%에 불과했다. 지역과 비례 상관없이 재선에 성공한 비례 의원도 10.9%에 그치며 비례대표가 초선들의 무덤이란 말도 나온다.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의원들 대부분은 새로 지역구를 찾아 정치생명을 연장하거나 지역 기반이 없어 낙선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또한 여야를 떠나 비례대표 연임은 금기 중의 하나였다. 이에 일부 정당은 당규에 비례대표 연임에 제동하는 조항을 넣어놓기도 했다. 민생당의 경우 당규 제46조 1항에 따르면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는 정치신인으로 추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례를 무시한 현역의원들이 재선을 위해 비례대표 명부에 이름을 올리면서 재선을 노리는 의원 또한 존재한다.

최근에는 21대 국회부터 들어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보다 다양한 군소정당에서 비례대표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되었다. 이 당시 41개의 정당이 출사표를 냈고 그중 비례대표 확보에 나선 정당만 35개로 투표용지만 48.1cm에 달하는 역대 최고로 많이 참가한 것이다. 군소정당들도 국회에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지만 이 과정에서 큰 변수가 들어섰는데 바로 거대양당에서 비례대표 의석수 확보용, 소위 위성정당을 창당한 것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인해 지역구 당선자가 많은 거대양당은 지역구 당선자가 없는 군소정당에 비해 비례대표의석수를 많이 확보할 수 없게 되었는데 이때 뜻을 함께한다는 정당을 창당, 소위 위성정당을 만들어 이에 대항한 것이다. 이는 군소정당들의 국회 진출을 통해 더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려는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비례대표제는 유권자들로부터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고안되었다. 전국구부터 1인 1표제 그리고 지금 우리가 아는 비례대표제까지 많은 진통을 겪었다. 그러한 진통을 겪으면서 추구해왔던 여러 계층 및 세대 직업 등 소수 세력의 목소리를 들으며 국회가 국민 전체를 대변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그러나 개선을 거듭할수록 다시 여러 문제점이 제기되는 추세며 점차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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