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국회의사당 지붕이 열리며 로보트 태권V가 출동한다.’는 도시전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전설일 뿐, 사실 거대한 돔 아래에는 로보트 태권브이가 아닌 로톤다(Rotonda)가 있다.
라틴어로 ‘둥글다’라는 의미를 지닌 형용사 ‘Rotundus’에서 유래한 건축 용어이면서 보통명사로, 원형 지붕 아래 홀 또는 그런 지붕이 있는 건물 자체를 뜻한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로톤다는 7층 높이에 “밑지름 64m” 규모의 거대한 돔을 이고 있다.
로톤다는 세계적인 건축물들에 많다. 이탈리아 로마의 판테온, 거기서 영감을 받아 브루넬레스키가 창조한 피렌체의 두오모, 다시 그 영향을 받은 미켈란젤로의 성 베드로 성당, 건축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팔라디오의 빌라 로톤다, 런던 대화재 이후 크리스토퍼 렌이 새로 지어 올린 세인트 폴 성당, 프랑스 파리의 팡테옹,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그리고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등이 모두 로톤다로 유명하다.
로톤다는 생김새 그대로 개방, 소통, 포용, 화합을 상징한다. 성당에선 신을 경배하고, 영면에 든 사도들을 모시는 경건한 공간이다. 워싱턴 국회의사당의 로톤다는 미국 민주주의의 아이콘이다. 미국 대통령은 그 앞뜰에서 취임 선서를 한다. 한국도 미국을 본떠 대통령 취임식 장소를 의사당 앞뜰로 정했다.

이처럼 국회의사당에는 숨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들이 있다. 국회의사당의 24개의 팔각기둥과 본회의장 천장의 365개의 조명은 전국 8도, 24절기, 365일을 의미하며 국민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라는 뜻이다.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모양인 본회의장과 예결위 회의장은 통일 후 양원제 운영을 대비한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돔은 다양한 국민의 의견들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하나의 결론으로 통합된다는 의회정치의 본질을 상징한다.
국회의사당이 돔인 이유
그런데 서양적 건축 형식인 돔이 어떻게 한국의 국회의사당에 생기게 됐을까? 1975년 국회의 초기 기본설계도면에는 돔이 없었다. 하지만 "외국 국회에는 있는데 우리는 왜 없냐!"라는 당시 국회의원들의 불만으로 돔 형태의 건축물이 만들어졌고, 구리로 만들어져 처음에는 붉은색이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산화되면서 현재의 청록색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에게 돔은 그저 위엄과 권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일까? 2000년 국회사무처에서는 돔에 황금색을 입히려는 계획을 세우다 국회운영위원회 심의과정에서 무산된 사건이 있었다. 밤에 보면 너무 우중충하니 돔을 황금색으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는 관계자의 의견이었다고 하는데, 이 계획이 실제 시행됐다면 4억 9000만 원의 예산이 들고, 4-5년마다 최소 4000-5000만원을 들여 손질해야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국회의사당도 돔 형태를 가지고 있을까? 우선, 미국과 독일의 국회의사당은 우리나라와 같은 돔 형태로 건축되어 있다.. 특히, 독일 국회의사당은 1933년 공산당원에 의한 방화와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에 의해 파괴된 채 방치되어 있다가 1999년 과거의 모습은 유지한 채, 현재의 투명한 돔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독일의 국회의사당의 돔에서는 나선형의 램프로 독일의 전경을 볼 수 있으며, 투명한 유리를 통해 국회의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투명한 돔은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상징으로 투명함과 개방성을 보여주며, 돔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국민이 정부보다 더 위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다음으로 영국, 캐나다, 헝가리의 국회의사당은 건축설계 당시 유행하던 고딕양식을 사용하여 첨탑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북한, 중국, 대만, 러시아, 말레이시아는 네모난 형태의 국회의사당이며, 뉴질랜드, 호주, 브라질, 방글라데시처럼 특이한 형태의 국회의사당을 가진 나라도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국회의사당의 형태는 다양하다. 모양은 달라도 모두 국회의사당에서 민의에 귀를 기울이고 민주적 합의를 통해 효율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자 함은 같을 것이다.
국회의사당 담장은 있어야 하는가?
하지만 한국의 국회의사당에는 이러한 목적과는 어울리지 않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국회의사당을 둘러싼 담장이다. 독일, 캐나다, 아르헨티나, 미국, 스위스, 뉴질랜드 등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하고 담장이 있는 국회는 없다. 담장을 비롯한 잔디마당 공간 사용 등 국회 출입 문제는 낡은 권위주의적 관행의 잔재라는 지적이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2000년대 초부터 지자체를 중심으로 시작된 ‘공공기관 담장 허물기’로 여러 공공기관의 담장이 허물어졌다. 하지만 국회는 예외였다. 국회 담장 허물기는 17대 국회에서도 거론되었고, 2017년 20대 국회에서는 일부 국회의원들이 ‘국회 담장 허물기 촉구 결의안’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21대 국회인 지금까지도 달라진 것이 없다.
우리 국민이 국회에 출입할 때, 가장 먼저 듣는 말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다. 국회의 주인인 국민이 국회 경내를 자유롭게 드나들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는 우리 국회가 ‘시민과 소통하는 공간’, ‘민주주의의 공간’으로 국회의사당을 활용하고 자유로운 접근과 이용을 보장하는 외국 선진 의회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회는 민의의 정당이고, 국회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주권은 국회 공간에 대한 국민의 이용, 참여 권리의 적극적인 보장에서도 구현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회는 담장을 고수하고 국회 공간을 폐쇄적으로 구성하며 국민의 접근권을 제한하고 있다. 선거철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겠다 약속하는 후보자는 많지만, 당선 후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는 국회의원들은 많지 않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국회의원들의 일터인 국회를 개방해 시민과 소통하는 공간, 민주주의의 공간으로 만들면 국회의원들도 좀 더 국민과 가까이에서 소통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Korean Politic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뒤베르제의 법칙, 선거제도와 정당체제 (0) | 2023.02.10 |
---|---|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까?"…인터뷰 with 챗GPT (0) | 2023.02.06 |
대통령 시계, 손목 위의 완장 (0) | 2023.02.04 |
레임덕의 유래와 대통령제 (0) | 2023.02.02 |
전국구 vs 비례대표 (0) | 2023.01.08 |
국회 입법 과정 요약 정리 (1) | 2023.01.08 |
국정감사 VS 국정조사 (0) | 2023.01.06 |
국회의원 회관의 편의시설들! (0) | 2023.01.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