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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Politics

의제 정당, 녹색당 vs 동물당 vs 해적당

by 누름돌 2023.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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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투표할 때 정당들이 제시하는 제각각의 정책 노선들을 보고 투표한다. 많은 정당들이 사회 전체적인 정책을 제시하지만 여기 조금 특별한 정당들이 있다. 바로 의제 정당이 그것이다.

 

의제 정당이란, 다양한 사회 이슈 중 하나를 구체적 의제로 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정체성이 짙은 당이다.

 

 

 


이러한 정당들에 법적 구분은 없지만 당의 이름이 의제를 내포하고 있거나 특정 의제를 강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쉽게 구분된다. 대표적인 의제 정당으로는 다들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녹색당이 있다. 녹색당은 환경을 중심에 두는 정당으로 주로 생태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당이다. 세계 90여 개국에 널리 퍼져 있으며, 정당 중 몇 없는 국제 네트워크를 형성한 세계 정치연합체로 글로벌그린즈라는 국제조직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최초의 녹색당은 독일 녹색당으로 1979년 창당되어 1998년 연방 선거에서 6.7% 득표율로 사회민주당과 연방정부를 탄생시켰고, 현재도 주요 정당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미래는 녹색이다'라는 강령에 맞게 2022년까지의 완전 탈핵을 결정하게 했고, 2030년까지 100% 완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을 계속해서 정부에 요구해오고 있다.

 

독일 외에도 오스트리아에서는 2016년 녹색당 출신의 무소속 후보인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Alexander Van der Bellen) 후보가 53.3%의 지지율을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비록 그는 무소속이었지만 10년간 녹색당에서 활동했고 선거 당시에도 녹색당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최초의 녹색당 출신 대통령이 등장했다며 이슈가 되었다. 이런 국민들의 관심을 보여주듯 이후에도 오스트리아 녹색당은 2017년 득표율 3.8%에서 2019년 총선 득표율 13.9%로 제4당이 되어 국민당과 연립정부를 이루어 내각에 진출하게 되었다.

 

1989년 창당 이후 처음 정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성장하는 국민들의 의식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연립정부 구성에 참여한 이들은 2040년까지 탄소의 순 배출량을 0으로 줄이는 탄소 중립국이 되겠다고 선언하면서 그 본래 목적에도 충실함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의제 정당으로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개고기에 대한 이슈와 같이 동물의 권리에 관해 주장하는 당이 있다. 바로 동물당이다. 동물당은 동물에게 사람의 인권과 시민권과 같은 권리를 부여하는 정책을 통과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세계 19개국에 등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20년 창당의 필요성에 대한 토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네덜란드의 동물당은 2002년에 처음 설립되어 2017년 총선에서 3.2%의 득표율을 얻어 하원 150석 중 5석을, 상원 75석 중 2석을 차지하고 의회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의 활동으로 인해 네덜란드에서는 강화된 동물보호법으로 동물 유기가 약 2500만 원의 벌금형 혹은 징역 최대 3년의 중범죄에 해당하게 되었으며 동물 보호 경찰팀도 별도로 구성하게 되었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네덜란드는 2019년 공식적으로 조사된 유기견이 없는 '유기견 없는 나라'라는 목표를 달성해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앞선 정당들처럼 의회 진출에 성공한 의제 정당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정당들도 많다. 스웨덴의 해적당은 2006년 창당된 의제 정당으로 정보의 자유와 개인정보보호를 주장했다. 정당 명칭에 포함된 해적은 음반과 영화산업단체가 저작권법 위반을 해적판이라 칭한 것을 비꼬기 위해 사용된 것이며, 불법 복제의 확대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용도의 복제 권리의 보장을 확대하고, 개인 사용자 간 파일 공유의 비범죄화만을 추구한다.

 

저작권과 특허법의 개혁을 주장하는데 인터넷이 관련된 분야인 만큼 젊은 인터넷 세대가 당원들과 지지층에서 주를 이루고 있으며, 비록 스웨덴에서의 의석확보에는 실패했지만, 해적당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 국제해적당이라는 연합체를 구성하기도 하는 등 정보의 자유를 하나의 정치적 의제로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세계 각지의 의제 정당에는 당명만 들어도 어떤 당인지 예상이 가는 이스라엘의 은퇴자당, 캐나다의 마리화나당, 일덜하기당 등 정말 다양한 이슈에 관해서 많은 정당들이 창당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의제 정당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21대 총선 결과 의석을 획득한 원내 정당으로는 이름 그대로 국민 기본소득 지급을 주장하는 기본소득당이 비례대표 의석으로 1석을 차지했다. 그 밖에 원외 정당으로는 앞서 나왔던 녹색당, 여성의 권리 신장과 불평등 해소를 위하는 여성의당, 탈북민이 주축이 되어 자유 통일을 위하는 남북통일당, 자영업자의 의견을 대변하기 위한 자영업당 등이 있으며, 각각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비례대표 또는 지역구에 후보를 출마시키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의제 정당들은 2020년 초에 창당된 정당이 많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당들이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최근 개정된 준연동형 비례 대표제를 들 수 있다. 비례대표 47석에 대해 지역구 득표와 상관없이 정당 득표율에 따라 추가로 배정받던 이전 제도와 달리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비해 지역구 당선자가 많은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받지 못하고 반대의 경우 득표율에 맞게 의석을 받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30석에 적용하고 17석은 전과 같이 배분하는 제도이다.

 

제도가 바뀜에 따라 정당 득표율은 높아도 지역구 당선자 수가 적어 국회 내에서 실질적 힘을 발휘하지 못하던 군소 정당들에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졌다. 정당 득표율에 비해 모자란 의석수를 득표율에 맞게 비례대표 의석에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군소 정당의 국회 의석 확보를 방해하던 제도 중 하나가 개선된 것을 최근 이러한 정당들의 출현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의제 정당은 당사자들의 정치 무대다. 정치인에게 주문서를 전달하는 대신 정책이 필요한 소비자들이 직접 정당을 꾸려 입법 공급자가 되기 위해 나선다. 청년이면 청년, 여성이면 여성들이 직접 당을 만들고 문제점을 모은다. 의제에 공감하는 이들이 모이기에 이슈에 대한 분석력도 높고 의견 일치를 보기도 더 쉽다.

 

또한,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체계화하여 정치적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정당 그 본래 목적인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도움을 주고 기존 거대 정당에 묶이지 않는 새로운 선택지를 주기도 한다. 아직 우리나라의 의제 정당들은 정당이 아닌 동아리라며 비꼬는 사람들도 존재하며, 외국의 의제 정당들에 비해 인지도와 득표율 모두 저조한 편이지만, 여러 의견을 수렴하면서 발전하게 될 우리나라의 정치, 의제 정당의 활성화가 그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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