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총선거, 지방선거 등 선거일이 가까이 되면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국회의원이 많다. 국회의원의 직무가 바쁨에도 불구하고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이유와 개최 시기가 왜 선거일과 가까이 있는지 알아보자.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는 일반적인 행사와 다르다.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과정 속 많은 편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 행사가 시작되면 국회의원은 자신의 책을 홍보하기보다 곧 있을 선거를 위해 자신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출판기념회를 이용한다.
일부 책들은 작가의 대필을 요구하기도 하며, 내용 역시 부실하다. 일회성 판매를 목적으로 이후 온라인 서점에서조차 구매할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이 있더라도 부수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책 판매량의 공식 집계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국회의원이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정치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다. 물론 정치인의 역량에 따라 편중 현상도 나타난다. 국회의원의 선수나 직책에 따라 출판기념회의 수입은 천차만별이며, 여당 국회의원실 보좌관은 "선수가 높을수록 주요 직책을 맡은 경험이 있고, 인적 네트워크도 풍부해 당연히 출판기념회는 성황을 이룰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2007년 3월, 당시 대선 출마를 앞두고 있던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책을 제작하고 출판기념회도 진행했던 한 출판사 간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시 유력한 대선 후보였기 때문에 참석자가 많았고, 1만 2000원인 저서만 22만 부가 팔려 순수 책값으로 2억 4000만원이었을 것이라며 책을 받지 않고 돈만 내고 간 사람까지 더하면 수입은 훨씬 더 큰 규모일 수 있다고 말했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받은 수익금과 후원금들의 사용 여부도 주목된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누구든지 선거일 전 90일부터 선거일까지 후보자와 관련 있는 저서의 출판기념회를 개최할 수 없다'라고' 기간만 제한하고 있으며, 출판기념회 때 이뤄지는 기부 행위에 대해서는 금액 등을 제재하지 않고 있다. 수익금과 후원금은 책값의 일종으로 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 대상이 아니며, 신고할 의무도, 공개할 의무도 없는 것이다.
책 한 권 값이 1만 5천 원, 2만 원임에도 불구하고, 5만 원권 여러 장을 내거나 심지어 몇백만 원가량의 돈을 수표, 카드로 지급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책과 봉투를 교환하는 현장에서는 봉투에 담긴 금액을 확인하지 않으며, 잔액을 거슬러주는 사람도 없다. 고액이 오가더라도 확인할 방법이 없어 이를 ‘깜깜이 모금함’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렇게 걷힌 수익은 최고 기밀 사항으로 국회의원들은 액수 공개를 꺼린다.
검찰은 서울 종합예술실용학교의 청탁 의혹을 받은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을 수사하던 중, 그의 대여금고에서 1억 원대 뭉칫돈을 발견했다. 신 의원은 국회 교육 문화 체육관광위원장으로 유치원 경영주에게 유리한 법률안을 통과시킨 바가 있었고, 이를 통해 검찰은 뭉칫돈 중 약 3000만~4000만 원 정도는 신 의원 출판기념회 당시 한국 유치원연합회 관계자로부터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였던 국회의원 황희는 2019년 말 출판기념회를 통해 7000만 원 상당의 수익을 얻었다며, 그 수익으로 아파트 전세 대출금을 갚았다고 밝혔다. 앞서 언급했듯이 출판기념회 수익은 선관위(선거관리위원회) 관리 대상이 아니므로 대출금을 갚는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더라도 정치자금법 위반이 아니다. 이에 한 현역 의원은 "출판기념회는 사실상 우회적 정치자금 모금 행사인데 이를 개인 대출을 갚는 데 썼다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2004년 오세훈 법으로 불리는 정치자금법이 통과되면서 국회의원들이 정치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크게 줄었다. 반면, 여전히 사무실과 조직 유지 등 지역구 관리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은 출판기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책을 출간하고 이를 축하하기 위한 출판기념회의 본 개념을 깨뜨리고, 불법적인 정치자금모금의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와중에 투명성 제고를 위해 힘쓴 국회의원이 있다.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김상민 의원은 2014년 5월에 열린 출판기념회에 신용카드 결제기를 배치하여 수익금과 세금을 세세히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2011년 6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총 6차례 출판기념회를 연 것으로 알려진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은 국회의원 재산 신고 당시 지적재산권 항목으로 출판기념회 수입을 공개하고, 국세청에 종합소득세를 신고해 별도의 세금을 내기도 했다.
국회의원의 정치자금 창고가 돼버린 ‘출판기념회’. 출판기념회란 행사 자체를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개최 시기만 제한할 것이 아니라, 도서 판매 방법을 정가로만 구매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치인은 출판기념회의 총 수익금을 어디에 썼는지 스스로 밝힐 수 있어야 하고, 정당한 정치활동에 사용될 수 있도록 투명성 제고를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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