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첫 정월 대보름은 대표적인 세시 명절이다. 설날은 새해를 시작하는 아침의 날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보름은 새해를 시작하는 밤의 첫날이란다. 그래서 음력의 세계관에선 실질적인 낮과 밤, 모두가 새롭게 출발하는 대보름을 그 시작으로 여긴다.
정월 대보름의 유래와 역사
최초 기록을 보면 《삼국유사》 권 1 <기이(紀異)> 편에 나온다. 신라 21대 소지왕(炤知王)이 정월 보름날 경주 남산의 천천정(天泉亭)을 산책하던 중에 쥐와 까마귀가 왕에게 다가왔다. 쥐가 사람처럼 소지왕에게 말하되, 까마귀를 쫓아가 보라 한다. 병사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니 한 노인이 왕에게 올릴 글을 바쳤는데 봉투에, 이 봉투를 열면 두 사람이 죽고, 안 열어보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씌어 있었다.
임금은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단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편지를 읽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한 신하가 왕에게 두 사람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소지왕을 뜻하니 열어보도록 권했다. 왕이 글을 열어보자 “사금갑(射琴匣, 거문고 통을 쏘라는 뜻)”이라고 적혀 있었지요. 왕이 대궐로 돌아와 거문고 통을 활로 쏘니, 그 안에 숨어 있던 왕비와 승려가 간음하고 반역을 꾀하였음을 알게 됐었다.
왕은 까마귀에 보답하기 위해 이날을 ‘오기일(烏忌日)’이라 명명(命名)하고, 해마다 약식(약밥)을 지어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왜 까마귀만 챙기냐면 쥐, 돼지는 십이지신에 들어가서 따로 기리는 일이 있었으나 까마귀는 그렇지 않기에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불과 관련된 풍속, 달집 태우기 vs 쥐불놀이
대보름날 행사에는 유독 불놀이가 많다.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심지어 횃불싸움에 억새 태우기까지 다양한 이벤트들이 대보름에 집중돼 있다.
이처럼 불과 관련한 행사가 많은 것은 대보름의 만월과 불의 주술적 힘이 서로 의미를 나누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을, 그리고 불은 모든 부정과 사악한 것을 태워버리는 정화의 상징이다. 그런 까닭에 달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동아시아에서 유독 대보름날 불을 사용하는 놀이를 즐겨온 것이다.
달집태우기는 달이 떠오르기 전, 즉 이른 저녁부터 치르는 놀이다. 이 놀이에 이어 쥐불놀이와 횃불싸움 등이 진행된다.
달집은 나무와 짚단을 이용해 뾰족한 집 모양으로 만든다. 달집에 불을 붙이는 순간은 달이 떠올랐을 때이다. 동네 사람들은 하나가 돼 불이 다 타서 꺼질 때까지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춘다. 또한 지난 액운을 떨치는 의미에서 헌 옷이나 속옷, 머리카락 등을 던져 태우기도 한다.
달집태우기는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고루 잘 타면 올 농사가 풍년이고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그러니 달집부터 정성을 들여 잘 타도록 만들게 된다.
끝나면 많이 알고 있는 쥐불놀이가 시작된다. 논두렁 위에서 작은 불덩이를 넣은 깡통을 원을 그리듯 돌리며 불씨를 살리는 놀이다.
‘쥐불’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새해 첫 쥐의 날에 불을 붙여서라는 설과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는 쥐를 쫓아내기 위해 붙이는 불이라는 설 두 가지가 있다. 쥐불을 놓으면서 논둑과 밭둑에도 불을 놓아 마른풀을 태우는데, 이는 그 풀에 숨어 있는 해충의 알들을 없애기 위함이다.
그리고 정월 대보름날 아침 해뜨기 전 만난 사람에게 “내 더위 사가세요!”라고 팔았던 더위팔기, 지신에게 고사를 지냈던 지신밟기 등이 있다.
음식과 관련된 풍속, '부럼깨기' '귀밝이술' '오곡밥과 나물음식'
정월 대보름에는 만사형통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며 아침 일찍 부럼을 나이 수만큼 깨물어 먹는 관습이 있다. 이를 '부럼깨기'라고 하는데 부럼을 깨물면서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비는 관습이 여전히 남은 것이다.
실제로 견과류는 불포화 지방산이 많고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다. 뿐만 아니라, 적은 양으로도 높은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는 견과류를 먹음으로써 건강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관습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
귀밝이술은 이름에서 추측 가능한 데로 귀가 밝아지고 귓병을 막아준다. 그리고 1년간 좋은 소식만을 듣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주기 위한 술이다. 그래서 이명주라고도 한다.
우리 조상님들은 정월대보름에 오곡밥과 볶음 나물을 꼭 먹었다. 오곡밥은 지역마다 다른 곡식을 넣어 지었으며 충청도와 경기도에서는 찹쌀, 팥, 콩, 차조, 수수를 넣었고 다른 지방에서는 보리쌀로 대체했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나물의 종류가 달라지지만 보통 9가지와 10가지의 나물을 먹었으며 이 역시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먹은 것으로 보인다.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 3~4잔의 커피는 건강에 해롭지 않을까?"…인터뷰 with 챗GPT (0) | 2023.02.06 |
---|---|
"너는 찍먹이야 부먹이야?"…인터뷰 with 챗GPT (0) | 2023.02.06 |
"은퇴 후에 어떤 사업을 하면 좋을까?"…인터뷰 with 챗GPT (0) | 2023.02.06 |
발렌타인 데이 vs 화이트 데이 vs 블랙 데이 (0) | 2023.02.03 |
생태 vs 명태 vs 동태 vs 황태 vs 노가리 vs 코다리 (0) | 2023.02.03 |
돈도점수 vs 돈오돈수, 성철 스님 vs 법정 스님 (0) | 2023.02.03 |
스포츠의 기원, 유희 vs 사냥 vs 전쟁 기원설 (0) | 2023.02.03 |
커피의 유래와 가배 vs 모카 vs 아메리카노 vs 커피믹스 (0) | 2023.02.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