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을 공부하는 강원(승가대학), 참선하는 선원, 계율을 공부하는 율원 등을 모두 갖춘 사찰을 총림, 이런 사찰의 최고 지도자를 방장이라고 한다. 가야산 해인사는 불교계 대표 종단인 조계종의 첫 총림이다. 일제강점기에 득세한 대처승(결혼한 승려)을 몰아내기 위한 8년간의 불교 정화 운동 끝에 1962년 현재의 조계종이 출범했고, 5년 뒤 해인총림 설치와 함께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1912~1993)이 방장에 추대됐다.
성철 스님이 그해 동안거 때 100여 일 동안 불교의 교리와 사상 등을 두루 강설한 것이 그 유명한 ‘백일법문(百日法門)’이다. 당시 법문에는 선방 스님은 물론 강원 학인, 절 살림을 맡은 사판승, 인근 사찰의 스님들까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해인사가 유명한 것은 치열하기로 유명한 수행 풍토 덕분이다. 여름·겨울 석 달간의 안거 때는 선원뿐만 아니라 강원, 율원 스님들 모두가 1주일 동안 전혀 잠을 안 자고 수행하는 용맹정진에 참여한다. 스님들 사이에서 해인사 강원 출신이라고 하면 세속의 명문대 출신처럼 알아준다.
해인사는 성철 스님, 혜암 스님, 법전 스님 등 조계종의 상징인 종정을 가장 많이 배출한 본사인 데다 조계종 비구 승려들의 10%가량이 속해 있어 가장 무게감 있는 사찰로 꼽히고 있다.
성철 스님은 보조국사 지눌의 돈오점수(깨달은 후 점차 닦는다)를 비판하며 돈오돈수(단박에 깨치면 더이상 닦을 것이 없다)를 주장했다. 조계종 창시자인 지눌에 대한 정면도전이었다.
심지어 “조계종 종헌에서 보조 스님을 빼야 한다”며 당시 자신이 방장으로 있던 해인사 선방에서 보조국사가 지은 수행지침서 <절요>를 가르치지 못하게 했다. 토굴에서 8년 동안 장좌불와(잘 때도 눕지 않음)하며 면벽참선했던 성철 스님은 ‘점수’를 핑계로 시주만 축내는 게으름뱅이들을 가장 멸시했다.
해인사가 이렇게 나오자 보조국사를 모시는 송광사는 현대판 ‘분서갱유’라며 반발했다. 송광사는 해인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종의 양대 사찰로, 보조국사가 돈오점수설을 주창한 곳이다.
송광사는 1987년 보조사상연구원을 개설해 돈오돈수설에 대응했는데, 첫 원장으로 당시 송광사 수련원장이었던 법정 스님이 취임했다. 법정 스님이 성북동에 창건한 길상사는 송광사의 옛 이름이며, 법정 스님의 오랜 보금자리였던 송광사 불일암은 지눌의 시호(사후에 왕이 내리는 이름) ‘불일보조’에서 따왔다.
법정 스님은 “한꺼번에 단박 깨닫고 단박 닦는다, 혹은 더 닦을 것이 없는 깨달음, 말은 그럴듯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은 삶의 진실에서 벗어나 있다”며 “깨달음이 무언지, 닦음이 뭔지도 모르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인간의 선의지를 이웃과 함께 나누어 가지는 쪽이 오히려 더 진실한 신앙인이요, 보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성철과 법정, 두 큰스님이 모두 입적한 지금 돌아보면, 전자가 불교계 내부의 각성을 촉구한 불호령이었다면, 후자는 외부로 열려 있는 실천을 강조한 자비심이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로 따지기 어렵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불교 수행자들이 식사 때마다 외우는 오관게(五觀偈)의 첫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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