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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스포츠의 기원, 유희 vs 사냥 vs 전쟁 기원설

by 누름돌 2023.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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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발생에 대한 설명은 크게 1) 유희 기원설, 2) 사냥 기원설, 3) 전쟁 기원설이 있다.

 

 


 

유희 기원설

 

유희 기원설은 스포츠가 놀이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의례·축제·유희 연구의 권위자인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의 본성을 지칭하는 용어 목록에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를 보탰다.

 

그는 자신의 책 <호모 루덴스>에서 인간의 놀이는 에너지 발산, 모방 본능, 긴장 해소, 경쟁과 지배 욕망 등 ‘생물적 특성’을 지닌 목적의식적 행위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열광·몰두·광분 등 원초적 특징을 설명하지 못한다며, 놀이의 본질은 ‘재미’라고 주장했다. 하위징아는 “고대인의 생각 속에는 전쟁과 놀이의 두 개념이 절대적으로 혼융돼 있었다”며 스포츠를 그런 행위 유형의 하나로 봤다.

 

유럽어에서 ‘스포츠’(Sport)라는 단어는 ‘즐거움을 찾다’ ‘즐겁게 놀다’라는 뜻의 고대 프랑스어 ‘Desporter’에서 유래한다. 라틴어 ‘Disporter’에 뿌리를 대고 있다. ‘Dis’(분리·분산·제거)라는 접두어와 ‘Porter’(물건 따위를 운반하다)라는 밑말의 합성어로, ‘기분을 전환해 신체적, 정신적 즐거움을 누린다’는 뜻이다.

 

 

 

 

사냥 기원설

 

사냥 기원설은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축구 종족>이라는 책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나섰던 사냥이 점차 스포츠로 대체됐으며, 축구는 사냥 욕구를 충족해 주는 대표적 운동경기라는 것이다.

 

모리스는 축구를 즐기는 사람을 ‘축구 종족’(Soccer Tribe)으로 규정했다.그는 “공을 골문으로 겨냥하는 행위는 사냥감에게 무기를 조준하는 것과 같으며, 공이 골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냥감을 해치웠음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축구단은 하나의 부족,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는 사냥에 나선 전사, 구단 이사진과 감독(트레이너)은 부족 원로, 구호·슬로건·환호성·야유 등은 부족 언어에 비유했다.

 

 

 

 

전쟁 기원설

 

전쟁 기원설은 스포츠의 원형이 전쟁, 또는 전사의 전투 훈련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축구는 그런 주장을 직관적으로 뒷받침한다. 잔디 경기장(탁 트인 들판)에서, 두 맞수 집단의 감독(지휘부)과 선수(전사)들이, 각각의 포지션을 나누고 전술을 세워, 상대의 골문(사령부)에 공을 차 넣거나 엔드라인(최후방)을 통과(점령)해 득점(승리)하는 경기 형태는 전투 행위의 축소판처럼 닮았다.

 

축구 경기에는 슈팅(투사 무기의 발사), 대포알 슛, 전술, 태극전사, 명장, 전차군단, 무적함대 등 유난히 군사용어가 많이 쓰인다. 실제로 축구 경기가 과열돼 전쟁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을 앞두고 1969년 6월 북중미 지역 예선에서 국경을 맞댄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가 맞붙었다. 양국 팀은 1·2차전에서 난투극에 가까운 격전을 벌이며 각각 홈경기에서 한 차례씩 승리했다. 이어 멕시코에서 열린 3차전에서 한 장 남은 본선행 티켓을 두고 다시 격돌했다. 연장전까지 치른 접전 끝에 엘살바도르가 결정골을 터뜨려 3-2로 승리했다.

 

그러나 1·2차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양국 응원단 사이에 패싸움이 벌어져 사망자까지 나올 만큼 악감정이 쌓인 뒤였다. 급기야 온두라스가 외교 단절을 선언하자 엘살바도르는 기다렸다는 듯 선전포고와 동시에 전차와 전투기까지 동원해 온두라스를 침공했다. 어처구니없는 축구 전쟁은 정치·경제적 갈등이 근본 원인이었지만 축구가 기폭제 구실을 했다. 전쟁은 닷새(100시간) 만에 주변국의 중재로 멈췄지만 두 나라가 평화협약을 맺고 국교를 정상화하기까지는 11년이 걸렸다.

 

반대로 생사가 갈리는 전쟁 중에 축구가 인간의 우호적 본성과 평화의 염원을 보여준 해프닝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첫해인 1914년 12월25일, 벨기에 전선의 영국군과 독일군 병사들은 혹한의 추위 속에서 빗발치는 기관총탄을 피해 참호전을 벌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당일 오전 어느 쪽에선가 조용히 캐럴이 흘러나왔고, 전선에는 총성과 비명 대신 아름다운 캐럴 화음이 번져갔다.

 

갑자기 독일군 병사 두 명이 위험을 무릅쓰고 참호에서 나와 영국군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독일군 병사의 손에는 총이 아니라 작은 크리스마스트리가 들려 있었다. 두 나라 병사들은 언제 치열한 교전을 벌였냐는 듯 무기를 내려놓고 술과 담배를 나누고 카드놀이와 축구 경기까지 즐겼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양국 군 지휘부가 발칵 뒤집히면서 깜짝쇼 같은 ‘크리스마스 휴전’도 금세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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