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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Politics

치킨게임과 국제정치

by 누름돌 2022.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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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뭘까?


대다수 사람은 흔히 볼 수 있는 닭 요리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치킨은 닭 (Chicken)을 의미하는 것 말고도 겁쟁이(Coward)로도 불린다. 서양에서는 닭을 겁이 많은 대표적 동물로 여기는데, 주인이 모이를 주려고 해도 가까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심과 겁이 많아 도망을 잘 가는 겁쟁이를 '치킨'이라고 부른다. 

 

 

 



치킨게임 (Chicken game)은 두 명의 경기자 중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이다.

치킨게임은 1950년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자동차 게임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밤중에 도로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이다. 이때 핸들을 꺾은 사람은 '치킨', 즉 겁쟁이로 몰려 명예롭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게 된다.

치킨게임은 각자가 고른 최적의 선택이 다른 쪽 경기자의 행위에 의존하는데, 여기서 의존적인 것은 한쪽이 포기하면 다른 쪽이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한쪽이 포기하지 않으면 다른 쪽이 포기하는 사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A와 B가 자동차를 타고 서로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이라고 하자. 이때 나올 수 있는 상황은 

첫째, 양쪽 모두 돌진을 함으로써 둘 다 죽는 상황 (직진-직진)

둘째, 양쪽 모두 핸들을 꺾어 피해 죽지는 않지만, 승자는 없는 상황 (회피-회피) 

셋째, 한쪽은 돌진하고 한쪽은 핸들을 꺾어 피해 피한 자는 패자가 되고 돌진한 자는 승자인 상황 (직진-회피& 회피-직진) 이렇게 총 세 가지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만약, 서로 돌진하는 첫 번째 상황에서 선택을 바꿔 양쪽 모두 핸들을 꺾어 피한다면 사망 대신 패배라는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서로 회피하는 두 번째 상황에서는 선택을 바꿔 양쪽 모두 "먼저" 돌진으로 무승부 대신 승리라는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한쪽은 회피, 한쪽은 돌진을 선택한 세 번째 상황에서 돌진한 쪽은 회피로 선택을 바꾸면서 승리 대신 무승부를, 회피한 쪽은 돌진으로 선택을 바꾸면서 패배 대신 사망이라는 양쪽 모두 선택을 바꿔 보는 이득이 없기 때문에 모든 행위자가 이동할 유인이 없는 내쉬 균형 상태가 된다.

여기서 내쉬 균형은 미국의 경제학자 존 내쉬 (John F. Nash)가 정의하였으며 각 경기자가 상대방의 전략을 주어진 것을 보고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전략을 골랐을 때 나타나는 균형 상태를 말한다. 즉, 치킨게임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상대방이 돌진하면 '나'는 회피하고 상대방이 회피하면 '나'는 돌진하는 것이다. 문제는 양쪽 모두가 원하는 이득은 '나'는 돌진하고 상대는 회피하는 것이고 반대로 가장 최악의 결과는 상대는 돌진하고 '나'가 회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회피하는 결과는 받아들이기 힘들고 상대가 회피하는 결과는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결국, 어느 쪽이 이기는가에 따라 자신이 받는 이득이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로 만들기 위해 직진을 취할 수밖에 없으며 비합리적으로 '직진'이라는 최선의 결과를 낸다는 점에서 비합리적 합리성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치킨 게임은 과거에서부터 정치뿐만 아니라 외교, 경제 등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럼 치킨게임이 일어났던 사례들은 뭐가 있을까?

첫 번째로 쿠바 미사일 위기 (Cuban missile crisis) 사건이다. 1962년 10월에 미국 첩보기에 의해 쿠바에 건설 중이던 소련 미사일 기지의 사진과 건설 현장으로 부품을 운반하던 소련 선박 사진이 촬영되면서 미·소 간 군사적 대립이 발생했다.

 

당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 기지 완공을 강행한다면 제3차 세계대전도 불사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쿠바 앞바다에 봉쇄선을 설정하고 만약 소련 배가 봉쇄선을 넘으면 미국 본토를 공격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전쟁으로 맞대응하겠다는 최후통첩을 소련에 보냈다. 결국 소련은 미국의 단호한 의지와 핵전쟁의 위험성을 간파해 13일 만에 미사일을 철수함으로써 먼저 핸들을 꺾게 되었고 대신 쿠바를 점령하지 않겠다는 양보를 얻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치킨게임'은 국제정치학 용어로 쓰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미국과 소련의 이 치킨게임은 파국을 향하지 않고 평화롭게 끝낸 사례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치킨게임 대표적 사례인 반도체 사업 경쟁이다. 2007년과 2010년 반도체 산업계에서 발생한 시장 경쟁으로 2007년 대만의 메모리 업체들이 앞다퉈 생산량을 늘리면서 시작했다. 대만 업체를 필두로 반도체 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가격을 낮추게 되고 2년 정도 가격경쟁을 한 결과 당시 세계 2위 D램 생산업체였던 독일(키몬다)이 파산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2010년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미국, 대만의 D램 업체들이 치열한 2차전을 벌였다. 당시 일본(엘피다), 미국(마이크론), 대만(난야), 우리나라 기업(삼성, SK)은 상대가 승복할 때까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반도체 가격을 경쟁적으로 내렸고, 기술력과 공격적인 설비 투자 등 막강한 규모를 동원한 경제력으로 마지막까지 버텨 대만(난야)과 일본(엘피다) 업체들이 줄줄이 파산하며 항복하게 되자 우리나라(삼성)는 반도체 시장의 승자가 되었다.

그 밖에도 상대국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서로 인상해 누구 하나 끝내지 않고 버티고 있는 미국-중국 간 무역전쟁, 셰일 오일의 등장으로 셰일 오일 생산지인 미국과 사우디 등 중동국가가 속한 석유 수출국 기구(OPEC) 간 석유 판매량/수출량을 두고 서로 석유 가격을 인상함으로써 양쪽에서 원유 수요가 줄어드는 석유 전쟁, 한국의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에서 시작된 한국-일본 간 무역 분쟁 등 국가 대 국가 간 양보 없는 치킨게임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정치권에서도 예산안이나 법안 처리, 선거구 획정안 등 상대방의 양보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 '벼랑 끝 전술'을 자주 볼 수 있다. 

 

 

 


제임스 딘 (James Byron Dean) 주연의 1955년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도 주인공이 라이벌과 절벽을 향해 질주하는 치킨게임과 비슷한 전개의 장면 묘사가 잘 나타나 있다.

이판사판, 벼랑 끝 전술로도 많이 불리는 양보하면 패자가 되는 치킨게임. 때로는 양보가 더 큰 이익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치킨게임은 지속하면 할수록 파국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서로 파국이 아닌 이득을 얻을 수 있도록 대화와 협상으로 타협점을 찾아 합리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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