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에 당선이 되고 자유롭게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회엔 교섭단체라는 제도가 있다. 교섭단체는 20명의 국회의원을 보유한 정당만 구성할 수 있다. 거대 정당 소속이 아니면 상임위원회 위원장, 간사도 맡을 수 없고 정치 일정도 논의할 수 없다. 우리가 TV에서 악수하고 문서를 교환하고 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국회의원이 교섭단체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교섭단체 또는 원내교섭단체는 국회에서 의사진행에 관한 중요한 안건을 협의하기 위하여 일정한 수 이상의 의원들로 구성된 의원단체를 말한다. 교섭단체 제도의 목적은, 국회에서 일정한 정당에 소속하는 의원들의 의사를 사전에 통합·조정하여 정파 간 교섭의 창구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가 소수 정당의 의사 개진을 막는다는 단점이 지적되고 있다.
교섭단체의 역사
48년 10월 제정된 최초의 국회법에는 교섭단체란 용어가 없었다. 49년 7월 개정된 국회법에서 ‘단체교섭회’라는 용어가 등장했고 구성 인원도 20인 이상으로 정해졌다. 60년 9월에는 ‘단체교섭회’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민의원의 경우 20인 이상, 참의원의 경우 10인 이상으로 분리했다.
국회법에서 ‘교섭단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63년 11월부터다. 당시 기준은 10인 이상이었다. 20인 이상으로 다시 높아진 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선포한 뒤인 73년 2월이었다. 그래서 당시 신진 세력이 국회에서 힘을 못 쓰게 하려고 기준을 높였다는 비판이 따라다닌다.
국회의 군소정당과 학계에서는 교섭단체 기준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적잖았다. 하지만 ‘교섭단체 20인’ 구성은 1973년 이후 변함없이 46년째 지속돼 오고 있다.
<원내 교섭단체 구성 요건 변화>
국회 | 의원정수(인) | 교섭단체 구성 요건 | |
제헌~5대 | 제헌 | 200 | 20인 이상 |
2대 | 210 | ||
3대 | 203 | ||
4~5대 | 233 | ||
5대 | 민의원 | 233 | 20인 이상 |
참의원 | 58 | 10인 이상 | |
6~8대 | 6~7대 | 175 | 10인 이상 |
8대 | 201 | ||
9~20대 | 9대 | 219 | 20인 이상 |
10대 | 231 | ||
11~12대 | 276 | ||
13~15대 | 299 | ||
16대 | 273 | ||
17~18대 | 299 | ||
19~20대 | 300 |
출처: 국회 사무처
비교섭 단체의 설움
한국 정당정치 역사에서 비교섭단체는 ‘그림자’ 혹은 ‘유령’ 같은 존재이다. 교섭단체와 비교섭단체의 권한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비교섭단체는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보좌하는 정책연구위원을 둘 수 없다.
또한 본회의장 의석 배정이나 상임·특별위원회 설치 및 위원 선임 등에서도 교섭단체 간 협상이 우선이다. 그러다 보니 비교섭단체에 소속된 의원들은 본인의 전문성과 상관없이 엉뚱한 상임위에 배정되기 일쑤다.
정치자금법 제27조①: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은 지급 당시 「국회법」 제33조(교섭단체)제1항의 본문의 규정에 의하여 동일 정당의 소속의원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대하여 그 100분의 50을 정당별로 균등하게 분할하여 배분·지급한다.
정치자금법 제27조②: 보조금 지급 당시 제1항의 규정에 의한 배분·지급대상이 아닌 정당으로서 5석 이상의 의석을 가진 정당에 대하여는 100분의 5씩을, 의석이 없거나 5석 미만의 의석을 가진 정당 중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당에 대하여는 보조금의 100분의 2씩을 배분·지급한다.
정치자금법 제27조③: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의한 배분·지급액을 제외한 잔여분 중 100분의 50은 지급 당시 국회의석을 가진 정당에 그 의석수의 비율에 따라 배분·지급하고, 그 잔여분은 국회의원선거의 득표수 비율에 따라 배분·지급한다.
< 교섭단체의 권한>
권한(국회법 조항) | |
원구성 | - 본회의장 의석배정(제3조) - 연간국회운영 기본 일정 결정(제5조 2항) - 국회사무처 사무총장 임면(제21조) - 상임위원회 및 특별위원회의 위원 선임(제48조) |
본회의 운영 | - 본회의 중 운영위원회를 제외한 위원회 개회(제56조) - 개의시간 변경(제72조) - 본회의 비공개 결정(제75조 ①) - 의사일정의 변경 및 안건의 추가(제77조) - 동일의제에 대한 총 발언시간 또는 교섭단체별 발언자 수 결정(제104조 ③,④) - 비교섭단체 소속의원의 발언시간 및 발언자 수 결정(제104조 ⑤) - 5분자유발언 허가, 발언자 수 및 발언순서 결정(제105조 ①,③) - 의원 발언 중 비밀, 안보사항 관련부분에 대한 회의록에의 불게재 결정(제118조 ①) - 대정부질문 시 의제별 질문의원 수, 질문의원·질문시간·질문순서 결정(제122조 2항 ③,⑦) - 교섭단체에 속하지 아니하는 의원의 질문자 수 결정(제122조 2항 ④) - 긴급현안질문 시간의 연장(제122조 3항 ⑤) |
위원회·인사 ·기타 |
- 교섭단체정책연구위원의 임면제청(제34조②) - 국회선출직 선출한 제출 및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설치(제46조 3항 ①) - 상임위원회 및 특별위원회의 위원 개선요청(제48조) - 전원위원회 개회요구시 전원위원회를 개회하지 않기로 하는 동의권(제63조 2항) - 위원회 회부안건의 심사기간 지정(제85조 ①) -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 자구심사기간의 지정(제86조 ②) - 대통령이 환부한 법률안과 인사안건의 기명표결 결정(제112조 ⑤) - 국무총리, 국무위원의 출석요구에 대한 대리출석 및 답변 승인(제121조 ③) - 폐회 중 정부·행정기관에 대한 서류제출 요구가 있을 때 요청 결정(제128조 ③) |
출처: 의회정치연구회
또 비교섭단체가 되면 살림살이부터 줄어든다(정치자금법 27조). 한국의 정당들은 국회의원 의석수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받는다. 보조금은 분기별 대략 100억 정도이다. 이 금액의 1/2은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이 나눠 갖는다. 20석 이하의 정당 중 5석 이상은 5/100, 5석 미만의 정당은 2/100의 금액을 받는다.
이후 남은 금액들을 의석수에 비례해 배분한다. 이 제도는 아무 근거 없이 20석을 기준으로 정당 간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국회 자체도 교섭단체 기준으로 운영되는데 보조금 지급마저도 교섭단체 구성 유무가 기준이라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역대 국회에서도 교섭단체 기준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16대 국회 때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공동 여당 구실을 하던 자유민주연합이 17석으로 교섭단체 특혜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의원 세 명이 2000년 말과 2001년 초 자민련으로 이적하면서 이른바 ‘의원 꿔주기’ 논란이 벌어졌다.
18대 국회에서는 자유선진당(18석)과 창조한국당(2석)이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란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했다. 정책 노선이 전혀 달랐던 이들은 원내 교섭단체가 아니면 국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9년 8월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가 탈당하며 ‘한 지붕 두 가족’체제도 끝이 났다.
20대 국회에서는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이 교섭단체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을 꾸렸다. 그러나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갑작스럽게 숨짐으로서 교섭단체 구성 요건 미비로 113일 만에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했다.
외국의 예
교섭단체는 정당 난립에 따른 의회운영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한 제도다. 한국의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은 300석 중 20석(6.7%)이다. 독일, 프랑스 등 교섭단체 제도를 운영하는 해외 선진국보다 까다로운 편이다.
<각국의 교섭단체제도>
제도 | 구성요건 | 명칭 | 권한 | |
독일 | 의사 규칙 |
5% 이상의 득표율 | Fraktion | - 국회의장 선임 위원회 구성과 배정 법안발의 |
스페인 | 헌법 | 의원 15명 이상 의석 5석 및 15% 이상 득표 전국득표율 5% 이상 |
Parliamentary Groups | 의사일정 재심의 위원회 구성과 배정 사물실과 시설 제공 |
이탈리아 | 헌법 | 의원 20명 이상 20개 이상 선거구 후보공천 또는 명부투표 30만 표 이상 득표정당 |
Parliamentary Groups | 위원회 구성과 배정 사물실과 시설 제공 |
일본 | 국회법 | 의원 2명 이상 | 회파(會派) | - 위원회 구성과 배정 본회의 발언자 지정 원내사무실 제공 |
프랑스 | 의사 규칙 |
의원 20명 이상 | Group Politique |
의상일정 설정 특별위원회 설치 위원회 구성과 배정 |
한국 | 국회법 | 의원 20명 이상 (단, 정당은 교섭단체 하나로 인정) |
교섭단체 | 위원회 구성과 배정 의사일정 설정 사무실과 시설 제공 |
출처: 의회정치연구회
독일처럼 선거마다 총 의석수가 조금씩 달라지는 경우 의석비율로, 대부분 국가에선 고정된 의석 숫자가 기준이다. 해외 선진국 교섭단체 요건은 총의석의 1~5% 범위다. 자세히 살펴보면 독일 하원(분데스탁)에선 총 의석수의 5% 이상이 되면 교섭단체(fraktion)를 구성한다. 현재 630석에선 32석부터다. 의석수로는 우리보다 기준이 높지만 총원 대비 비율로는 낮다.
프랑스는 하원 교섭단체(Les Groupes politiques) 기준이 15석, 총의석 577석의 2.6%다. 2016년 현재 15석짜리 좌파 정당을 포함 6개 교섭단체가 활동 중이다. 캐나다 하원은 338석의 3.5%인 12석으로, 원내 5개 정당 중 3개가 교섭단체(recognized party)로 인정된다.
일본은 교섭단체 대신 의원 2인이면 구성할 수 있는 ‘회파’(카이하)가 있다. 위원회 위원 배정, 질의시간 등을 배분할 때 각 회파의 의원숫자로 기준을 삼으므로 교섭단체와 비슷하다. 중의원(하원)에서 20석, 참의원(상원)에서 10석 이상 지닌 회파는 의회 운영위원회에 위원을 배정할 수 있다.
교섭단체 규정이 없는 미국, 영국, 북유럽 국가의 경우도 있다. 미국·영국은 사실상의 양당제여서 민주-공화당(미), 보수-노동당(영) 같은 원내정당이 사실상 교섭단체가 되는 셈이다. 북유럽의 경우 정파 간 타협하고 연정을 이루는 정치문화가 강해 굳이 교섭단체를 따로 두지 않는 걸로 알려졌다.
신명순과 이재만의 연구에 의하면 비교섭단체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가결률이 교섭단체 의원들에 비해 낮다고 한다. 자유민주연합의 경우 15대 국회 때 50석이었다가 16대 국회 때는 17석으로 의석수가 66% 줄었다. 법안 가결률은 16.4%에서 12%로 4.4%포인트 감소했다. 4석으로 줄어든 17대 국회 때 법안 가결률은 4.5%까지 떨어졌다. 이러한 결과로 토대로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20명 이하로 낮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한국 현실에서 원내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교섭단체 제도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해외에 비춰보면 대형정당들이 쳐놓은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지금처럼 교섭단체가 실질적인 국회운영의 주체로 계속 작동한다면 인력·보조금 면에서 비교섭단체와 양극화가 점차 심해질 수 있다. 거대 정당에 비해 군소정당 소속이나 무소속 의원들의 교섭단체 구성이 어려워 거대 정당이 국회 운영을 독점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2008년 국회 운영제도개선자문위원회는 정당 득표율 5% 이상, 혹은 의석수 10석 이상 단일정당으로 교섭단체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만약 당장 교섭단체 기준완화에 합의할 수 없다면, 비교섭단체에 일정한 권한을 주는 보완책도 고려할 수 있다. 독일 하원은 교섭단체가 안 돼도 특정 권역에 최소 3석 당선된 정당이면 일종의 준교섭단체로 인정해 제한적인 권한을 준다.
참고자료
신명순·이재만, “국회 교섭단체 제도가 입법 활동에 미치는 영향: 제15~17대 국회에서 의원 발의 법안의 가결 비율 분석”, 동서문제연구(2012).
의회정치연구회, 『한국 국회와 정치과정』, 오름(2010), 244~250쪽.
중앙일보, “군소정당 옥죄는 ‘교섭단체 20인’ 이번엔 완화될까”, (201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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