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대한민국 미래에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2018년 기준 0.98명으로 떨어져 사실상 국가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생산연령 인구(15~64살)의 감소로 노동의 성장기여도가 2020년 이후 마이너스로 떨어진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는 정치권에도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사회에서의 정년 연장 문제, 노인의 기준 나이 상향 문제, 청년 일자리 문제 등과 얽혀 국회의원직에도 정년 규정을 두자는 여론이 일부에서 일고 있다.
국회의원은 정년이 없다. 정치인이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를 찾기 어려운 이유이다.
제론토크라시(노인정치, gerontocracy)란 말이 있다. 이는 ‘고령자에 의한 지배’로 노년층이 사회 전반을 장악하여 젊은 세대에게 권한을 넘겨주지 않고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정치가 제론의 이름에서 유래한 말로, 노인 지배 사회를 비판적으로 지칭한다. 노인 지배 사회는 보수화되고 성장성과 역동성은 떨어진다. 노령층은 과대 대표되고 청년층의 발언권은 위축된다.
고 연령화 현상에 따라 정치권 구성원들의 평균 나이도 늘어나고 있다. 국회에는 젊은 사람을 보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국가의 정책도 노인을 위한 정책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젊은 층의 반감이 높아지며 정치의 주요 행위자들의 나이를 제한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대 국회에서 노인복지법 개정안 등 65살 이상 노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법안이 청년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법안보다 4배나 많이 발의됐다. 특히 노인 혜택 법안 300300여 개를 발의한 국회의원 대부분이 60대 의원이라는 점, 청년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법안을 최다 발의한 국회의원이 35세 최연소 국회의원인 김광진 의원이었다는 사실은 나이가 단순히 생물학적인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면 보통사람들이든 선출직이든 공평하게 만 65세 정년을 두면 어떨까? 국회의원의 정년이 없는 것을 특권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모든 공직에 정년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도입하면 “나라가 활력이 있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며, 청년에게 더 폭넓고 활발한 참여 공간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다만 은퇴한 공직자는 경험이 풍부한 ‘어른’으로서 갈등과 대립이 있는 곳에서 조정자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노년층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특권층을 겨냥한 것이라고도 했다. 예로서 독일 대부분의 주에서 시장 및 군수 선거에 있어서 피선거권 연령 상한 제한이 있다는 것도 예시했다.
그러나 모든 공직에 정년을 두는 것은 참정권을 제한하기 때문에 위헌 소지가 있다. 참정권은 국민이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권리를 말하며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적어도 큰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공무원이 잘릴 일은 없다.
반면 선출직은 임기가 끝나면 정년과 상관없이 물러나야 한다. 임기가 끝난 의원이 재선에 실패하면 그는 직장을 잃는 셈이다. 선거 때마다 당선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65세가 넘으면 피선거권을 제한하겠다는 것은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잔인한 처사일 수 있다. 정년이 없는 것을 특권으로 보려면 최소한 공직자의 임기가 법적으로 무기한일 때 가능하다.
공직에 정년을 도입하자는 논쟁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정년제를 경제논리만으로 접근하고 있다. 정년을 도입해 일정 연령에 도달한 사람은 퇴직하고 새로운 사람이 영입되는 구조가 사회의 순환과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사람이 정년을 넘으면 ‘쓸모가 없고’, 젊으면 ‘쓸모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문제다.
정년과 노인에게 우호적이지 않는 이미지는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는 사회적인 부담인 동시에, 개인에게도 고통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2016년 기준 중위소득의 50% 미만을 뜻하는 상대적 빈곤율은 노인인구의 경우 43.7%에 달한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이미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 가운데 최하위다.
그러나 선출직 정년제에 대한 여론은 찬성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2017년 1월 19일)의 조사 결과 찬성 54.7%, 반대 33.1%, 모른다 12.2%로 나타났다. 찬성비율은 40대 69.2%, 30대 60.6%, 20대 59.1%, 50대 54.1%, 그리고 60대 이상은 34.5%로 가장 낮았다. 젊은 사람일수록 최장 65세 정년 도입에 찬성 비율이 높다.
노년층이 생물학적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가치 절하될 수는 없다. 나이는 경륜을 의미할 수도 있고, 연륜 많은 정치인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보다 잘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 회사라면 이미 퇴직이나 명퇴를 했을 연령이다. 정치의 역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다양한 연령층의 국회 입성이 가능해야 한다.
정치권이 젊은 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공천을 할 때 젊은 정치인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비례대표에 젊은 정치인을 적극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지역구 선거로 당선이 힘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우선 비례대표로 물꼬를 터야 한다.
하지만, 비례대표 선거가 실시된 17~19대 총선에서 20대는 0명, 30대는 9명에 그쳤다. 반면, 50대와 60대 이상은 각각 71명과 36명이었다.
권력적으로 노인이 과대 대표되고 청년이 과소 대표되면서 청년의 사회적 소외가 심해지는 문제가 있다. 노인정치는 경험과 경륜을 중시하고 안정적인 사회질서 유지를 강조하던 시대에는 매우 바람직한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이 가지는 역동성·유연성·신속성 및 미래 지향성을 특징으로 하는 정보사회 구조와는 잘 부합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4차 산업혁명 등 새로운 시대로 가는데, 국회는 평균연령이 역대 가장 높다. 국회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상상력도, 급변하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이해력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요약하면 최근 한국은 선거권을 만 18세로 낮추었다. 선거권의 연령을 낮추면서까지 참정권을 확대하는 추세에 피선거권에 상한을 두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선출직은 국민이 투표를 통해 뽑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거를 통해 갈아치울 수 있다. 그들의 ‘정년 없는 특권’은 국민의 손에 달려있다.
참고자료
박영원, “공무원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와 검토과제”, 『이슈와 논점』, 국회입법조사처(2015).
조화순 편, 『사회과학자가 보는 4차 산업혁명』, 한울아카데미(2018).
전진영, “한국 국회의원과 미국 연방의원의 집단적 특성 비교”, 『이슈와 논점』, 국회입법조사처(2015).
한겨레, “‘고령사회’ 진입한 한국 ... 일본보다 7년 빨라”, (2018.8.27).
JTBC 뉴스룸 팩트체크 제작팀, 『팩트체크: 세상을 바로 읽는 진실의 힘』, 중앙북스(2015), 216~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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