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여론조사는 선거에 관한 국민의 이해와 참여를 증진시키는 동시에 정당과 정치인의 선거전략 수립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민주정치에 기여한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여론의 왜곡 또는 조작 가능성이 수반되어 역기능을 초래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즉, 여론조사는 표본 수와 방법, 질문 내용, 시기 등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동일시기 동일후보자군에 대한 조사임에도 크게 차이가 나는 여론조사들이 보도됨으로써 선거여론조사에 대한 유권자의 불신은 여전하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한국에서 유권자는 선거 전 6일부터 선거당일까지 ‘깜깜이 선거’를 한다. 이 기간 동안 당선자를 예상할 수 있는 후보 지지도나 정당 지지도와 같은 선거여론조사 결과를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련된 공직선거법(공직선거법 제108조①항)을 보자.
공직선거법 제108조①항 누구든지 선거일 전 6일부터 선거일의 투표마감시각까지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모의투표나 인기투표에 의한 경우를 포함한다.)의 경위와 그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하여 보도할 수 없다.
선거여론조사 공표 금지는 1994년 공직선거법이 제정되면서 처음 도입됐다. 당시에는 대통령 선거의 경우 22일 동안 제한했다가, 2005년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선거일 6일 전으로 단축했다.
선거에서 여론조사의 결과는 대중매체를 통해 공표됐을 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다. 특별히 선거일 직전에만 금지기간을 두는 이유는 시정 불가능한 부정확한 여론조사결과 공표로 인한 공정성 훼손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승산이 있는 쪽으로 표가 쏠리는 밴드왜건 효과나 열세 후보에게 동정표가 몰리는 언더독 현상을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헌법재판소에서는 공직선거법 제108조 1항의 위헌소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헌재 1991.1.28.헌바64). 조금 길지만 적어본다.
대통령선거에 관한 여론조사는 그것이 공정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공표되면 투표자로 하여금 승산이 있는 쪽으로 가담하게 만드는 이른바 밴드왜곤효과(bandwagon effect)나 이와 반대로 불리한 편을 동정하여 열세에 놓여 있는 쪽으로 기울게 하는 이른바 열세자효과(underdog effect)가 나타나게 됨으로써 선거에 영향을 미쳐 국민의 진의를 왜곡하고 선거의 공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더구나 선거일에 가까워질수록 여론조사결과의 공표가 갖는 부정적 효과는 극대화되고, 특히 불공정하거나 부정확한 여론조사결과가 공표될 때에는 선거의 공정성을 결정적으로 해칠 가능성이 높지만 이를 반박하고 시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진다. 따라서 대통령선거의 중요성에 비추어 선거의 공정을 위하여 선거일을 앞두고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를 금지하는 것 자체는 그 금지기간이 지나치게 길지 않는 한 위헌이라고 할 수 없다.
밴드웨건 효과와 언더독효과
판결문에는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용어가 나온다. 밴드웨건효과와 열세자효과이다. 밴드왜건효과(bandwagon effect)는 일명 편승효과라고도 한다. 선거에서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꿔 우세한 후보에게 투표하는 경향을 말한다.
밴드왜건효과는 미국의 경제학자인 하비 라에벤스타인(Harvey Leivenstein, 1922~1994)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명 ‘네트워크 효과’로 특정 상품에 대한 어떤 사람의 수요가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주관이나 기호보다는 같은 또래의 친구나 모임 등에서 구매하는 것을 따라하거나, 유명 스타가 나오는 광고를 보고 구매하는 행위 등을 밴드웨건 효과로 설명했다. 기업에서는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마케팅활동으로,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특정 유력후보를 위한 선전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 그리고 몇 년 전 중고교생들의 ‘노스페이스 패딩’ 열풍, 2017년 말의 ‘평창 롱패딩’ 현상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Georg Simmel, 1858~1918)의 시각을 빌리면, 현재의 4차 산업혁명의 바람도 일종의 유행으로 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가 대단히 멋지고, 우리의 삶을 효율적이고 안락하게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4차 산업혁명에 동참하려는 것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이 미래의 대세이고 거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대세의 흐름에 뒤처지기 때문에 동참을 모방하고 있다고 본다. 여기에 기업이 새로운 상품을 내 놓으면서 이 상품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 상품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소비자가 소비해야만 4차 산업에 익숙해질 수 있다고 유혹한다.
소비자는 그 상품의 효용성과 상관없이 ‘고립에 대한 불안감 해소’를 위해 그 상품을 소비한다. 특히 다른 사람의 시선과 유행에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이와 반대로 언더독효과(underdog effect)는 일명 열세자효과라고도 하는데, 선거에서는 열세에 놓여있는 후보에 대한 동정심 등으로 인해 투표하는 경향을 말한다.
언더독은 투기견의 싸움에서 유래했는데, 싸움만 붙으면 항상 패할 것이 예상되는 개와 같이 세력이 불리한 약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약자가 강자를 이겨주기를 바라는 심리로, 대체로 젊은 세대일수록 잘 나타난다고 한다.
밴드왜건효과와 언더독효과는 선거 때 여론조사의 결과 공표가 투표자, 그 중에서도 특히 부동표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여론조사 효과를 후보자 캠프에서는 선거 기간 중 전략적으로 이용한다.
다음은 19대 대선과정에서 한 신문의 기사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지지세 확장보다는 ‘굳히기’에 돌입한 듯 보인다. 안철수 후보와 오차범위 밖에서 차이가 나는 이상 선거 막판 ‘헛발질’을 조심하는 데 캠프가 주력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가 노리는 효과는 이른바 ‘밴드웨건’효과다. 안 후보는 처음부터 이 같은 효과를 활용해 ‘반문정서’를 공유하는 중도-보수 유권자의 지지를 한 데 모았다. 이른바 ‘홍찍문’(홍준표를 찍으면 문재인이 당선된다)이 대표적인 예시다...
홍준표 후보는 철저히 ‘언더독’효과를 노린 전략을 구사했다. 홍후보는 “저의 아버지의 마지막 직장은 울산에서 야간 경비원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 일당은 800원”이라 했고, “어머니는 문맹이어서 제가 항상 아라비아 숫자로 된 버스 번호를 적어드려야 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커뮤니케이션학에는 침묵의 나선이론(Spiral of Silence Theory)이 있다. 침묵의 나선이론은 독일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노엘 노이만(E. Noelle-Neumann)이 주장한 이론으로, 핵심은 다수의 의견 앞에서 소수의 의견은 침묵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이 대중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의견을 표명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침묵하게 될 때 발생한다. 침묵의 나선이론 역시 여론조사결과 공표가 대중매체를 통해 소수의 의견을 가진 사람을 침묵시키는 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이것을 통해 여론조사결과 공표는 공정한 선거에 있어서 긍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지만, 여러 부정적인 측면도 역시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은 여론조사 결과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리얼미터가 2018년 선거여론조사 공표 금지에 대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현행 유지’ 응답이 46.4%, ‘폐지 또는 축소’ 응답이 43.6%였다. ‘선거여론조사 공표 금지’에 대해 찬반 여론이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하게 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 입장의 경우 세부적으로 ‘투표 당일과 하루 전 정도로 공표금지 기간을 줄이는 것이 좋다’(25.8%), ‘국민의 알권리를 막고 깜깜이 선거를 유발하기에 전면 폐지하는 것이 좋다’(17.8%)로 전면 폐지보다는 기간 축소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해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을 축소하거나 아예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할 때라는 주장을 한다. 주요 선진국 중 이러한 금지 규정을 두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 이탈리아 정도다. 프랑스는 이틀 동안 금지 기간을 가지고 있다.
미국·영국·일본·독일 등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여론조사 공표 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유권자의 알 권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차원에서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마지막 6일의 상황 변화를 모른 채 투표해야 한다. 발표를 못할 뿐이지 조사는 할 수 있다. 결국 여론조사 결과를 유권자만 모르는 정보 단절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중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여론조사와 관련된 가짜 뉴스(fake news)다. 과거 대선 때 각 캠프들이 “우리 후보 쪽으로 판세가 기울었다”는 막판 선전전을 벌여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일이 비일비재했다.
현재 시점에서 볼 때 여론조사 공표 금지는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인다. 정보 부재로 인해 유권자들은 혼란을 겪으며 가짜 여론조사 뉴스에 끌려 다닐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알 권리와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일 일수도 있다. 또한 유권자들 사이의 정보격차만 더 벌어지게 할 뿐이다.
밴드웨건
밴드웨건(bandwagon)은 서부개척시대에 운송수단으로 쓰이던 역마차다. 악단(band)을 태운 차(wagon)를 선두에 세우고 요란한 음악을 연주하면서 사람들을 모았다. 사람들은 금광이나 신천지가 있다는 말만 믿고 무작정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벤드웨건의 무리들이 다른 사람을 따라 이리저리 이동하는 것처럼, 선거여론조사에서도 지지도가 앞선 우세자 한데 쏠림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참고자료
뉴데일리, “안철수의 ‘밴드웨건’이냐 홍준표의 ‘언더독’이냐”, (2017.4.27).
데일리한국, “‘여론조사 공표금지’ 찬반 팽팽 ... ‘현행 유지’ 46% vs ‘폐지·축소’ 44%”, (2018.6.14).
오택섭 외, 『현대 정치커뮤니케이션 연구』, 나남(2006), 286~288쪽.
조화순 편, 『사회과학자가 보는 4차 산업혁명』, 한울아카데미(2018), 75~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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