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의 전당인 국회는 국민들의 복리 증진과 국익 실현을 위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기능들을 수행함에 있어 본질적인 권한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중 대표적인 권한이 바로 입법권과 재정권이다.
국회가 보유한 재정권은 국민이 납부한 세금 등을 기초로 하는 국가 재정작용이 자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통제를 받도록 하려는 것이다.
근대 유럽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전제 군주의 방만한 재정지출을 통제하기 위한 의회의 투쟁에서 출발했다. 군주가 무리한 사업이나 전쟁, 사치스러운 행사 등에 세금을 낭비하지 못하도록 의회가 통제함으로써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의 기틀을 세웠다.
예산이란?
국가 재정작용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예산이다. 그렇다면 예산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예산이란 국회의 의결을 통해 확정된, 중앙정부의 한 회계연도에 걸친 수입·지출 계획을 말한다. 국회는 이러한 수입과 지출 항목의 제대로 된 편성 여부와 효율적인 편성·집행 방법에 대해 심의한다.
예산은 크게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로 나뉜다. 일반회계는 국가의 일반적인 지출, 즉 통상적인 국가활동과 행정작용·재정사업에 사용하기 위해 설치된 회계를 의미한다. 특별회계는 특정 사업이나 특정 자금을 위해, 또는 특정 세입·세출을 연계하는 차원에서 일반회계와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 설치하는 회계이다.
대부분의 주요 선진국이 예산법률주의를 채택한 반면 우리나라는 헌법 제53조 및 제54조에 의거해 예산과 법률이 별개의 형식으로 국회를 통과한다. 예산법률주의를 채택할 경우 예산의 목적, 내용, 한계가 법률 조문으로 명확히 기술되기에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법적 규범력도 높아져 국회 재정권한을 높일 수 있는 측면이 존재한다.
반면, 예산운용의 경직화와 예산안 심의에 시간과 노력이 더욱 투입된다는 부정적 측면도 뒤따른다. 또한 우리 헌법은 조세에 대해 그 종목과 세율을 법률로 정하는 조세법률주의를 규정하고 있지만 지출에 대해서는 지출법률주의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국회가 심의·확정하는 예산안의 종류는 통상 본예산안, 수정예산안 및 추가경정 예산안으로 구분되며 특히 본예산안과 추가경정 예산안에 대한 주목도가 가장 높다. 일반적인 예산안을 의미하는 본예산 안은 헌법 제54조 제2항에서 정부가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의결하도록 규정한 예산안이다.
다음으로 추가경정예산안은 예산이 성립된 후, 즉 국회가 심의·확정한 후 예산에 추가할 사항이 있거나 변경할 사항이 있을 때 정부가 국회에 제출하는 예산안으로, 헌법 제56조에서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재정법 제89조 제1항은 추가경정 예산안을 편성할 수 있는 경우로 첫째,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둘째, 경기침체·대량실업·남북관계 등 대내외 중대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 셋째, 법령에 따른 긴급한 지출 등을 규정하고 있다.
예산 과정은?
이렇듯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예산은 편성·심의를 위해 본격적인 과정을 거친다. '예산 과정(Budget cycle)'이란 예산 편성에서부터 심의·확정, 집행, 결산으로 연결·반복되는 과정을 가리키는데 통상 3년의 기간이 하나의 주기로 구성된다. 이는 당해 연도를 기준으로 할 시 예산주기가 전년도 결산, 당해 연도 예산 집행, 다음연도 예산편성 및 심의의 순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예산 과정의 출발은 바로 정부의 예산안 편성에 있다. 우리 헌법 제54조 2항은 예산안 편성권을 정부에 부여하고 있다. 정부의 예산안 편성은 첫째, 각 부처의 중기사업계획서 제출, 둘째, 기획재정부의 예산안편성지침 통보 , 셋째, 각 부처의 예산요구서 제출, 넷째, 기획재정부의 예산안 편성, 다섯째, 국무회의 심의 및 대통령 승인, 여섯째, 국회 제출로 이루어진다.
먼저 각 중앙관서는 매년 1월 31일까지 향후 5년 이상 기간 동안의 신규 사업 및 주요 계속사업에 대한 중기사업계획서를 기획재정부에 제출한다. 기획재정부는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의 승인을 거쳐 다음 연도의 예산안편성지침을 매년 3월 31일까지 각 중앙관서에 통보하고 같은 내용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보고한다. 이후 각 부처는 지출한도 내에서 기존 사업의 구조조정 등을 통해 예산 요구서를 작성하고 이를 5월 31일까지 기획재정부에 제출한다.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의 예산요구서를 조정해 편성한 전체 예산안은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이 승인해 회계연도가 개시되기 전 120일 전(9월 3일)까지 국회에 제출된다.
현행 헌법 제54조 제2항에서는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10월 2일)까지 국회에 제출하도록 규정했으나 심의기한이 촉박하다는 비판이 지속되었다. 이에 국회는 2013년 개정된 국가재정법 제33조에 따라 예산안의 회계연도 90일 전 제출 규정을 120일 전 제출로 바꿔 예산 심의 기간을 30일 늘렸다.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이 매년 9월 3일까지 제출되면 국회는 본격적인 심의에 착수한다. 먼저 국회의장은 제출된 예산안을 의원에게 배부하고 본회의에 보고한다. 본회의 보고는 법률안과 동일한 방식으로 행해진다. 국회는 예산안이 제출되면 본회의에서 정부로부터 국정의 각 부문별 역점 운용방향 등에 관해 시정연설을 청취한다. 그동안 정부 시정연설은 대통령의 임기 첫 시정연설을 제외하고는 관행적으로 국무총리가 대독해왔으나 2013년 이후에는 매년 대통령이 직접 시정연설을 행하고 있다.
정부 시정연설이 끝나면 해당 예산안은 본격적인 심사 단계에 들어간다. 예산안 심사절차의 주요 특징은 예산안이 법률안과 달리 상임위원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2단계 심사구조를 취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측면에 입각해 국회법은 상임위의 예산안 심사를 '예비심사'라고 표현했으며 예결위의 심사는 '본심사'라 지칭하고 있다. 먼저 상임위의 예비심사는 첫째, 소관 상임위 회부, 둘째, 상임위 상정, 셋째, 위원질의· 정부답변, 넷째, 소위원회 심사, 다섯째, 토론 및 표결, 여섯째, 예비심사보고의 순서를 거친다.
의장은 예산안이 제출되면 이를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하고, 회부 사실을 예결위에 통지한다. 상임위가 회부된 예산안을 상정하면 소관 부처의 장은 예산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한다. 뒤이어 법률안과 마찬가지로 전문위원 검토보고가 진행되며 전체 회의에서 해당 부처의 예산안에 대해 위원들이 질의하고 소관 부처 장이 답변하는 대체토론이 이루어진다. 대체토론이 종료되면 예산결산 심사를 담당하는 소위원회에 예산안을 회부하는데 해당 소위원회는 법률안과 동일하게 5~10인으로 구성된다.
이후 토론 및 표결을 거쳐 예비심사가 종료되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본심사가 시작된다. 국회법 제84조 제5항에 의거해 예결위는 소관 상임위의 예비심사 내용을 존중해야 하며, 소관 상임위에서 삭감한 세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액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경우 소관 상임위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예결위의 심사는 첫째, 예산안 공청회, 둘째, 위원회 상정, 셋째, 종합정책질의, 넷째, 부별심사 또는 분과별 심사, 다섯째, 조정소위 심사, 여섯째, 토론·표결, 일곱째, 심사보고 순서를 거친다.
기본적인 의안심사 과정은 동일하지만 정부 전체 예산안의 종합심사이므로 공청회를 개최하고 전체회의를 종합정책질의와 부별심사로 나누어 여러 차례 진행한다는 점은 차이가 있다. 국회법 제84조의3에 따르면 공청회 단계에서 본예산 안에 대한 공청회는 필수이지만, 추가경정예산안·기금운용계획안은 의결로 공청회를 생략할 수 있다. 부별심사의 경우 경제부처와 비경제부처 두 부분으로 구분 지어 심사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특이점이 있다.
예산안의 실질적인 심사·수정을 담당하는 조정소위는 예산안을 종합적으로 조정하고, 수정안을 마련해 예결위 전체회의에 보고한다. 15명 내외로 구성된 조정소위는 전체 예산안의 조정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조정소위에서도 합의를 보지 못하고 시한이 지나면 여야 합의에 따라 협상은 비공식 협의 창구로 넘어간다. 이때 등장하는 기구가 이른바 ‘예산 소소위’다. 공식 기구인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를 축소해 교섭단체 여야 간사들만 참여한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이는 법적 근거가 없는 기구로 속기록조차 남기지 않는다. 참석자들이 입을 다물면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의원들이 막판에 지역구 예산을 챙길 ‘쪽지 예산’을 밀어 넣는 통로로 활용되는 이유다.
예산안에 대한 예결위 심사가 종료되면 심사결과보고서를 작성해 이를 의장에게 보고한다. 해당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면 이를 지체 없이 정부에 이송하는 것으로 국회의 예산안 심사 과정은 마무리된다.
과거에는 국회가 예산 처리 법정시한인 12월 2일을 지킨 경우가 드물었으나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으로 상황이 다소 개선되었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른 예산안 자동부의 제도가 본격 적용되면서 여야 간 빠른 합의가 이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국회의 책무 이행 차원에서 큰 시사점을 남겼다.
이렇듯 정부의 예산안 편성과 국회의 예산안 심사는 철저한 논쟁과 분석을 거쳐 완성되는 고도의 기능체계이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서 여러 문제점들이 분출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졸속 심사를 최대한 방지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앞으로 국민의 대변인이 모인 국회의 예산안 심사 과정에 대해 철저한 인식을 견지하는 것은 물론 혹시 모를 의원들의 꼼수를 방지하도록 다방면의 감시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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