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기거하는 대통령 관저이자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는 헌법기관이다. 공식명칭은 Cheong Wa Dae지만 외국에서는 보통 The Blue House로 많이 알려져 있다.
북악산 아래에 위치한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하여 회의실·접견실·주거실 등이 있는 2층 본관과 경호실·비서실 및 영빈관 등 부속건물로 구성되어있고 정원과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후원 및 연못 등의 미관을 갖추고 있다.
원래 청와대 터는 고려시대 남경의 이궁이 있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이곳이 경복궁의 후원으로 사용되었다. 후원에는 각종 누각과 함께 연무장, 과거시험장이 만들어졌으며 이 지대를 경무대라 하였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경복궁과 경무대가 완전히 폐허가 되었는데, 그런 상태로 270년간 방치되었다가 고종 때 중건되었다. 광복 후에는 주한미군사령관 존 하지 중장(John R. Hodge)의 숙소로 사용되다가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거주하던 이화장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무대’라는 이름을 되찾아 대통령 관저명으로 사용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가 심해지고 경무대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부정·부패 및 음습한 권위주의의 이미지 때문에 국민의 원성이 점점 높아지자 1960년 8월 윤보선 대통령 재임 당시 경무대의 이름을 바꾸자는 의견이 나오게 되었다. 이후 윤보선 대통령이 개명에 동의하자 당시 서울시사 편찬위원이었던 김영삼이 '화령대'와 '청와대'라는 두 가지의 이름을 제시하게 되었다.
윤보선 대통령은 관저의 청기와가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재인 만큼 고유한 전통을 지닌 집이라는 뜻의 '청와대'로 이름을 고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고, 그것을 반영해 이름이 '청와대'로 바뀌었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직후 또 다시 이름을 고치자는 요청이 있었으나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일축해 지금까지 ‘청와대’라는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
수궁터는 청와대의 구 본관 터이다. 일제강점기때 일본이 여기를 허물고 총독 관사를 짓고 이 총독 관사를 그대로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로 사용한 것이 청와대의 시작이다.
1989년에 집무실과 관사를 분리하면서 청와대 구 본관을 역대 대통령의 기념관 및 박물관으로 보존하자는 일부 의견도 있었으나,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국민들의 자긍심을 되살리기 위해 1993년 11월 김영삼 대통령은 구 총독부 관사 건물을 철거하도록 했다. 새 본관과 관저가 완공된 뒤, 철거된 그 자리를 옛 지형대로 복원해 원래 이곳에 있던 건물의 명칭을 따라 수궁터라 부르게 되었다.
본관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공간으로 외빈 접견과 국무회의 등에 사용되는 건물이다. 국빈 환영식이 대부분 여기서 진행되며 과거에는 수석보좌관회의도 이곳에서 열렸다. 공간이 필요 이상으로 넓고, 업무와 소통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의식만을 위한 건축물에 더 가깝다는 비판도 존재하여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부터는 공식적인 업무만 본관에서 보기로 하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1층에는 영부인의 집무실과 접견실, 무궁화실, 인왕실이 1층 별채에는 충무실, 세종실이 있으며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백악실, 집현실이 있다. 서쪽 별채인 세종실은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가 열리는 장소이며 동쪽 별채인 충무실은 임명장 수여 행사, 중규모 만찬, 간담회 등이 열리는 장소이다.
청와대 본관은 정부와 국가를 대표하는 우리의 얼굴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에 전통 목구조와 궁궐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하여 내부 구조는 현대적인 감각과 시설을 갖추도록 하였다. 또한 2층 본채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단층의 별채를 배치했으며 우리나라 건축양식 중 가장 격조 높고 아름답다는 팔작지붕을 올리고 한식 청기와를 이었다.
영빈관은 손님을 맞이하는 곳으로 공식 행사장으로 이용되거나 대규모 회의 및 연회를 위한 장소로 이용된다. 영빈관 1층은 대접견실로 외국 국빈의 접견행사를 치르는 곳이다. 만찬행사시에는 음악과 무용 공연이 행해지기도 하며 국빈행사 외에 대규모 회의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내부 정면 벽 중앙의 원형 속에 새겨져 있는 봉황 문양은 태평성대와 대통령을 상징하고 천장의 원형은 대화합을 상징한다. 영빈관 2층은 대규모 오찬 및 만찬 행사를 하기 위한 장소이다. 내부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와 월계수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상춘재는 1983년 4월 준공된 전통적인 한식 가옥으로 현재 외빈 접견이나 비공식회의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부터 오찬과 만찬 장소로 쓰여오다가 전두환 대통령 재임 당시 개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자리에는 원래 일본식 건물이 있었으며 1983년까지만 해도 청와대 경내에는 전통 한옥식 건물이 단 한 군데도 없었으나 외국에서 손님이 와도 우리나라 가옥 양식을 소개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전통 한식 가옥인 상춘재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여민관은 여민 1관, 2관, 3관 총 3개 동의 건물로 구성돼 있으며 대통령 비서실과 국가안보실, 사무실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여민관은 청와대 참모들이 일하는 곳으로 대통령 관련 업무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여민1관에는 대통령 간이집무실 등의 주요 시설이 있다. 이곳에서는 대통령이 일상적인 업무를 보고하고, 수석·보좌관 회의 등이 열린다.
원래 여민관은 이명박 대통령 재임시에 국민을 위한다는 뜻을 가진 '위민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나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과 함께한다는 뜻의 '여민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는 노무현 정권 시절 증축 당시 이름이기도 하며 '대통령과 비서진들이 국민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여민고락(與民苦樂)'에서 따온 이름이다.
춘추관은 현재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소와 출입 기자들의 기사송고실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외 언론사 기자 300여 명이 출입하는 청와대 프레스센터로 1층은 기자들이 사용하는 기자실과 자료실 겸 소브리핑룸으로 구성되어 있고 2층에는 대통령 기자회견과 각종 브리핑 등을 하는 브리핑룸이 있다. 춘추관이라는 명칭은 고려와 조선 시대 역사기록을 맡아보던 관아인 춘추관과 예문 춘추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가 오늘날의 자유 언론의 정신을 잘 상징한다는 뜻에서 채택되었다.
청와대 여러 시설 중 일반인에게는 물론 취재진에게도 가장 공개되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관저이다.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대통령 관저는, 대통령의 공적인 업무공간과 사적인 업무공간을 구분할 필요성을 느껴 지난 1990년 10월 25일에 완공되었다. 관저는 본채, 별채, 대문채, 사랑채,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청와대 내 대통령 관저는 본관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때 지어졌으며 위치상으로도 그렇고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점에서도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관저는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곳으로 청와대 내에서도 가장 폐쇄적인 공간이나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기에는 내부 모습이 언론에 제한적으로 공개된 바가 있었다. 또한, 세월호 침몰 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 직후 언론을 통해 언급되며 당시 국민들의 관심도가 높아진 건물이기도 하다. 이곳은 대통령과 가족의 사적인 공간이므로 공식행사나 공개행사가 없는 곳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집으로, 일반 국민들이 쉽게 접근하기 곤란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청와대 개방은 국민과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청와대 개방은 이승만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55년에 경무대 경내 일부를 공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기인 1968년까지는 매년 4월과 5월에 청와대 경내 일부가 개방되었으나, 1968년 1월 21일 북한군에 의해 청와대가 습격당하는 이른바 ‘1·21사태’가 일어나면서 청와대 개방이 중단되었다. 1·21사태는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군인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청와대 뒤편에 있는 북악산 일대까지도 일반 국민의 접근이 통제되었다.
1·21사태 이후 전두환 대통령 재임 시기 동안 청와대와 인근지역은 전면 통제되었다. 그렇게 닫혀있던 청와대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점차 개방이 되었다. 노태우 대통령 재임 당시인 1988년부터 청와대 경내가 개방되었고, 김영삼 대통령 정부에 들어서는 인왕산 등산로와 청와대 주변도로가 열렸으며, 궁정동 안가가 헐리고 그 자리에 무궁화동산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청와대 경내 관람은 극히 일부에게만 허용되었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 정부부터는 청와대 경내 방문에 제한 대상도 없어졌고 조선조 후궁들의 위패가 있는 ‘칠궁’도 개방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출범과 동시에 청와대 경내 관람코스를 본관 앞까지 확대했고, 2007년에는 북악산의 일정 범위도 전면 개방되었다. 2020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1·21사태' 이후 약 5252년 만에 북악산 철문을 직접 열었다. 등산로로 재탄생된 북악산 일부 구간은 시민들의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오는 2022년 상반기에는 나머지 북악산 남측 면도 개방할 예정이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청와대와 북악산을 국민에게 돌려 드리겠다"라고" 공약한 바 있었다. 이는 대통령 공약 이행 차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청와대 인근 지역은 국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 되었다. 한 나라의 국가 원수가 기거하는 곳인 만큼 안전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한편,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국민의 사랑을 받는 청와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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