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rean Politics

한국에서 지역정당은 가능할까?

by 누름돌 2022. 7. 12.
반응형

지방에 사는 사람은 2등 국민이다. 화창한 날씨 출근 하는 시간, 라디오에선 뉴스 말미에 서울의 비 내리는 일기예보만하고 끝낸다. 뒤이어 교통방송에선 한강 강변도로의 교통상황만 중계되고 있다. 휴일 갈만한 곳, 먹거리 명소, 주말 동정도 다 서울뉴스가 차지한다.

 

지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도 서울로 (올라)간다. 지방은 휴가철의 대피장소로 (내려)오곤 한다. 지방 사람은 국민도 아니다. 지방은 TV나 라디오의 뉴스 내용, 일기예보, 교통정보 등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던 서울의 날씨와 교통상황을 억지로 들어야 하며, 서울사람들의 휴가철 대피장소를 평소 잘 관리해 놓아야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정치지도자들도 그들 이야기대로 국민을 위해 봉사한 후 모두 다 서울에 머문다. 전두환(연희동), 노태우(연희동), 김영삼(상도동), 김대중(동교동), 이명박(논현동), 박근혜(내곡동) 등 예외가 없다. 딱 두명 예외가 있다. 퇴임 후 고향인 김해 진영에 내려온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경남 양산에 거처를 마련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있다.

 

미국의 대통령처럼 퇴임 후 거의 예외 없이 자기가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다. 수구지심(首丘之心, 여우는 죽을 때 머리를 태어난 언덕 쪽으로 향한다)이라고 사람은 죽을 때 자기 고향을 찾고, 연어도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죽는다. 그러나 정치()는 그렇지 않는 것 같다.

 

 


 

서울 중심의 정치와 정당

 

대한민국의 정치는 서울 중심의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구조는 권위적이고, 서울 중심적이며, 중앙집권적인 모습을 유지해왔다. 현재 등록된 34개 정당의 중앙당은 서울에 있다(20191229일 기준). 이는 자유로운 정당 활동을 침해하고, 지역균형 발전과 지방분권정책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정당 활동도 자연스럽게 서울 중심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원내정당의 중앙당은 서울 여의도와 그 부근에 몰려 있다. 정당의 중앙당만 그런 것이 아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선출된 국회의원도 실제로 거주하는 곳은 서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당 활동 뿐 아니라 교육, 경제 등 모든 것이 중앙으로 집중되어 있다.

 

 

정당법 제3: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 광역시, 도에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한다.

 

 

국회의원은 서울에 거주하고, 서울에 있는 중앙당의 회의에 참석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근무한다. 이들은 제대로 거주도 하지 않으면서 지역을 단지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가끔 지역구를 방문하고, 그것도 행사위주로 참여해서 따분한 장광설의 연설만 하고 서울로 떠난다. 선거가 다가오면 서울에 있는 중앙부처에서 예산을 얼마 따왔다는 생색만 내는 것으로 국회의원직을 연장하고 있다.

 

이런 상태를 벗어나려면 정치의 분권화와 지역정치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모든 정당이 서울에 중앙당을 두고 정치활동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은 지역정치의 활성화를 방해하고 지역정당(local party)이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저해한다.

 

지역정당은 전 국가적인 국민의사 형성과정에의 참여는 이차적인 목적에 지나지 않고, 주로 지역문제의 해결 내지 지역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결사체를 의미한다. 지역정당은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지역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정당이다. 지방선거 출마를 주된 목적으로 삼는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제도의 본질에 잘 부합하는 정당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정당법의 서울 중심 조항은 시대착오적 규정이다(정당법 3). 우리나라 정당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지역정당을 위한 요건

 

정당의 중앙당이 꼭 서울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생태적 가치와 탈 원전을 주장하는 녹색당이라면 중앙당을 농촌지역이나 원전지역에 둘 수도 있다. 세계에서 핵발전소가 가장 많이 집적되어 있는 고리원전 근처 기장군(행정구역상 부산시에 속함)에 녹색당의 중앙당(본부)이 있는 게 자연스럽다.

 

또 지방분권과 지역균형 발전을 중시하는 정당이라면 서울이 아닌 비수도권에 그들의 중앙당을 두는 것이 그 정당의 정체성에 맞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 설립 요건을 대폭 완화하여 지역정당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인 조직이다. 현행 정당법은 정당 설립요건(3~18)을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 광역시·도에 소재하는 5개 이상의 시도당(당원 1천인 이상)을 가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설립요건은 군소정당이 충족하기도 쉽지 않다. 설립요건을 완화하고 중앙당의 수도 소재 요건을 삭제하여, 지역단위에서도 다양한 이념과 노선을 표방하는 풀뿌리단위의 정당 즉, 지역정당의 창당이 용이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정당 설립 규정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규제적인 조항으로 국민들의 자발적인 정치결사체라는 본래 의미와 달리 정치 참여의 기회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특히 2006년 기초의원 선거의 정당공천제가 실시된 이후 풀뿌리 신인정치인들이 중앙정당 공천을 받기 위해 지역구 국회의원과 중당정당 지역조직에 매달리면서 유권자와 괴리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외국의 예

 

우리에겐 다소 낯설지만, 다른 나라에선 지역정당이 이미 보편적인 정당 형태로 자리 잡았다. 지역정당이 활성화된 나라로는 일본, 독일, 미국, 영국 등이 있다.

 

독일에서도 지방선거에서만 후보를 내는 정치단체를 만들 수 있다. 다만 유권자에게 일정한 수의 지지 서명을 받도록 하고 있다. 서명인 수는 10인을 기본으로 하고 주민 수에 비례해서 정해진다.

 

독일의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의 기사당도 바이에른주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정당이다. 기민당과 기사당은 흔히 ‘자매 정당’으로 불린다. 전국정당인 기민당은 선거 때 바이에른주에는 후보를 내지 않는다. 그 덕에 기사당은 수십년간 지방선거에서 다른 전국정당들을 제치고 유력 정당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일본은 정당법이 없지만 헌법 21결사의 자유에 의거해 정당 결성의 자유, 활동의 자유, 정당의 자율 운영 등이 보장된다. 정당의 조직이나 운영에 대해서는 당원과 국민에 위임해 판단하도록 할 문제이지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일본에서는 지방선거에만 참여하는 지역정당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오사카를 지역 기반으로 출범한 야당인 오사카유신회를 비롯해 도쿄생활자네트워크, 가나가와네트워크 등이 대표적이다.

 

 


지방분권 시대에 지역에 뿌리를 박고 있는 사람들 중심이 되는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지역정치가 중앙정치에 종속되지 않고 자율성을 갖고 활동할 수 있도록 지역정당을 제도화해야 한다. 즉 전국 정당과 지역 현안을 놓고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당법 개정을 통해 지역정당을 허용한다면 지방선거에 미치는 중앙정치의 영향력을 감소시킴과 동시에 지역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정치세력이 지방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될 것이다.

 

 

 

 

 

 

지방선거 출마 자격 요건

 

선출직에 출마하려는 사람의 자격조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것이 있다. 현재 공직선거법(공직선거법 제16)에서는 지방선거의 피선거권에 거주요건을 두고 있다. 이는 지역 연고와 주민과의 연대감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주민대표성을 중시하는 생각이 담겨있다.

 

 

<선거에서 후보자 자격요건>

선거명 자격요건 연령조건 거주요건(선거일 현재)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피선거권이 있는 자 40세 이상 5년 이상 국내거주
국회의원 선거 25세 이상
지방선거 25세 이상 60일 이상 당해 지방자치단체에 주민등록
(국내거소신고인명부에
있는 경우 포함)

 

 

공직선거법 제16: 선거일 현재 계속하여 60일 이상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관할구역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주민으로서 25세 이상의 국민은 그 지방의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피선거권이 있다. 이 경우 60일의 기간은 그 지방자치단체의 설치·폐지·분할·합병 또는 구역변경에 의하여 중단되지 아니한다.

 

 

반면, 지방선거와 달리 총선 출마 자격조건에는 거주요건이 없어 선거 시점에 맞춰 지역구를 갈아타는 일이나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역구를 대표하는 일꾼을 뽑는다는 취지에 걸맞게 해당 지역에 일정 기간 이상 거주해야 출마 자격을 부여하는 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전략공천, 낙하산공천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참고자료

 

장영수, “지방자치와 정당”, 정당과 헌법질서, 박영사(1995), 341.

하세헌, “지방정당”, 강원택 편, 지방정치의 이해 2, 박영사(2016), 175~179.

한겨레, “극에 달한 수도권 쏠림 ... 총인구의 50% 첫 돌파”, (2019.8.21).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