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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Politics

대통령 테러의 역사

by 누름돌 2023.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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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이념의 갈등으로 분단된 이후에 북한은 남한에게 수많은 무력도발을 가해왔다. 그 중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에게 큰 위협이 되었던 사건은 무엇이 있었을까?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는 실제로 대통령이 암살당할 수 있는 위기가 수 차례 있었는데 그 사례로 1968년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1974년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은 대통령이 암살당할 수도 있었던 큰 사건이다. 먼저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북한 공작원 31명이 청와대에서 300m 떨어진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암살하려 했던 사건이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 32명이 사망(군 장병 25, 민간인 7)하고 5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침투했던 북한 공작원 31명 중 29명은 사살, 1명은 미확인, 1명은 생포되었는데 생포된 1명이 바로 김신조이다. 김신조는 항복하여 생포되었고 공비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공비 소탕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실미도 부대를 창설하여 해외 파병보다 내부 단속에 집중하였고 향토예비군제도, 5분전투대기부대, 육군 3 사관학교가 창설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주민등록번호가 이때 만들어졌으며 (참고로 박정희 주민번호 뒷자리 100001, 육영수는 200002) 공작원 침투경로인 북악산 성곽길은 38년 동안 폐쇄되었다가 2010년에 개방되었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 암살미수사건 또한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바로 암살당할 뻔한 사건이었다. 사건의 범인 재일교포 문세광은 국립극장에서 8.15광복 기념연설을 하던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가며 권총을 발사하기 시작하였고 박정희 대통령이 단상 아래로 숨자 총구는 육영수 여사를 향했다. 현장의 경호원들은 그를 경호원으로 착각하여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최악의 경호사례로 남아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영부인 육영수 여사와 합창단원으로 참석했던 장봉화 양이 사망했다.

 

범인 문세광은 체포되어 4개월 뒤 대법원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3일 만에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이 사건의 배후라고 추정되는 북한의 김일성은 자신의 지시와는 관계가 없다는 말로 부정하였으며 문세광을 박정희와 경쟁 중이던 김대중 지지 세력의 배후인 것처럼 말하기도 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부분의 경호인력들이 교체되었고 이후에 박정희 암살 사건(10.26사태)의 주인공이 되는 김재규도 이때 새로 임명된다.

 

전두환 대통령 시기에 들어서 북한은 테러를 이용한 도발을 시행했는데, 주로 해외에서 테러를 하여 범인을 파악하지 못하게 위장하려고 했다. 전두환 대통령 또한 직접적으로 테러에 휘말릴 수 있던 사건도 있었는데 버마 아웅 산 묘소 암살폭발 사건이 그 사례이다. 사건의 발생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시 시대적 상황도 고려해봐야 하는데 당시 시대는 북한과 남한의 제3국과의 외교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였고 서로 상대 국가와는 단교하고 자신들과의 수교를 요구하면서 상대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려 하던 시기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사회주의 국가였던 미얀마를 대한민국과 우호적인 국가로 만들기 위해 동남아 순방에 미얀마를 포함했다. 정부 핵심 관료들은 북한의 테러위험, 미얀마를 통해 얻을 실리나 위상이 부족함, 미얀마가 북한에 더 우호적임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했는데 전두환 대통령은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목적이 강하여 미얀마 순방을 추진하게 되었다.

 

첫날 순방일정이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기에 이전에 진행헀던 해외순방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해외순방으로 마무리 될 것으로 보였으나 순방 이틀째인 날, 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 산 장군의 묘소를 참배하러 가는 일정 중 폭탄 테러가 발생하게 된다. 이 테러로 대한민국 정부수행원 17, 미얀마인 7명이 사망하였고 북한공작원은 1명이 사망 2명이 체포되었다.

 

출처: 동아일보

 

 

전두환 대통령이 이 테러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던 원인이 정말로 천운이 따랐다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데 미얀마 외무장관이 전 대통령을 태우고 행사 장소로 향하던 중 길바닥에서 승용차가 고장이 나버렸다. 당시 미얀마는 교통 인프라 수준도 낮았기 때문에 택시도 잡을 수 없었고 당연히 행사에 지각을 하게 된 것이다.

 

또 전두환 대통령이 테러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던 몇 가지 운 적인 요소도 있었는데 바로 대한민국 정부수행원 중 이계철 대사가 전두환 대통령과 용모가 비슷했다는 부분과 대사가 태극기가 펄럭이는 차량에서 내렸다는 부분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이계철 대사를 대통령과 오인하여 폭탄테러를 감행했다는 요소도 있었고 그냥 비서실장이 도착했으니 대통령도 도착헸겠거니 해서 테러를 감행했다는 이야기도 있다는 점에서 천운이 따라서 전두환 대통령이 테러에 휘말리지 않았다고 설명할 수 있다.

 

이후 국내에서는 북한에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득세하였으나 군사적 충돌을 우려한 미국이 이를 중재하였고 전두환 대통령은 "명령없이 움직이면 반역으로 간주하겠다" 라는 명령으로 군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추가적으로 테러 이후에 세계 69개국은 대북 규탄 성명을 발표했고 미얀마 외에도 여러 국가가 북한과 단교를 선언하면서 서양권을 향한 북한의 외교는 치명타를 입게 되었지만 소련과 중국 등의 같은 이념을 가진 동양권 국가 간 우호관계를 다시 정리하면서 동양권 국가 간의 외교는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전두환 대통령 시기에는 외교적 측면에서 정부에 타격을 준 사건도 있었다. 바로 김포국제공항 폭탄테러 사건이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 유치를 성공시킴으로써 국위 선양을 이루기 위해 국가 총력을 기울이던 시기에 북한이 또 다시 폭탄테러를 일으킨 것이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내상황에 공포심을 가지도록 하여 외교에 불리하게 만들려고 한 북한의 의도였다. 당시 테러범의 실체를 찾을 수 없어 미제 사건이 되었으나 아웅 산 테러 때와 같은 폭탄이었다는 점에서 북한이 일으킨 것이라고 단정지었고 사건 23년 후, 2009년 아부 니달이 북한의 사주를 받아 테러를 일으킨 것이다라고 밝힌 월간조선 3월호를 통해 테러범의 실체가 밝혀지게 되었다.

 

사건 이후 국제공항 보안검색이 강화되어 김포, 제주, 김해국제공항에 보안대를 설치하였고 1992년 단계적 폐지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공항을 지나는 모든 인원들이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기에 이어 김영삼 대통령 시기에도 대통령에게 위협을 가하려 했던 사건이 있었는데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바로 그 사건이다. 당시 북한 공작원들은 김영삼 대통령이 춘천에서 개최되는 전국체전 개막식에 참석할 경우 대통령을 저격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잠수함을 통해 저격조와 복귀하려는 승조원으로 나누어 강릉 앞바다에 침투하였다. 당시 잠수함이 좌초되어 승조원들은 북으로 복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저격조들이 저격조로 편성이 가능한 인원을 제외하고 남은 승조원들을 직접 정리했다.

 

우연히 택시기사 이진규 씨가 좌초된 북한 잠수함을 발견하면서 수색에 들어갔고 총 49일간 수색작전이 이어졌다. 북한공작원 중 13명이 국군에 의해 사살됐고, 11명은 함께 침투한 공비에 의해 처형, 1명이 생포되었으며 남한 쪽 피해는 국군, 경찰, 민간인, 예비군을 포함하여 18명이 사망하였다.

 

이 사건으로 남한 정부는 대북 강경파가 득세하기 시작하게 되었고 보수 언론들 또한 이를 부추기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김영삼 정부는 대북경협을 동결하고, 경수로 부지 인수와 서비스 의정서의 서명을 유보하여 북한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렇게 남한이 강경대처하자 미국이 이를 중재하기 시작했는데 북에 대해서도 공식 사과는 아니더라도 유감이라는 표현이라도 하도록 권유하자 북한은 평양방송을 통해 유감이라며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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