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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Politics70

우주개발의 역사와 뉴 스페이스 미-중 패권 경쟁이 지구에서 우주로 확장되고 있다. 우주공간은 이제 지구의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1990년대까지 우주로켓은 100% 정부 주도였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전체 발사의 45%를 민간이 차지하고 있다. 이를 '뉴 스페이스(New Space)'라고 한다. 민간 주도 상업적 우주개발이 최근의 추세다. 1957년 10월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 1호가 발사되면서 인류는 우주 시대를 맞이했다. 1957년 이후 지금까지 1만 1000여 대의 인공위성이 우주로 발사됐다. 인공위성은 날씨 정보, 위치 정보, 내비게이션, 관측 영상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군사적으로도 표적 탐지와 조준, 정찰 영상, 통신 도청 등에 활용된다. 인공위성 관련 수요가 늘면서.. 2022. 6. 30.
북한의 ICBM 사거리와 재진입기술은 어디까지? 북한의 핵 능력과 관련해 정부와 전문가들은 핵탄두 소형화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에 탑재할 수 있는 핵무기는 사실상 마무리하고 전술 미사일에 탑재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일 것이란 추정이다. 사거리는? 탄도미사일은 비행거리를 기준으로 단거리미사일(SRBM·300~1000㎞), 준중거리미사일(MRBM·1000~3000㎞), 중거리미사일(IRBM·3000~5500㎞) 대륙간탄도탄(ICBM·5500㎞ 이상)으로 나뉜다. 대체로 미국을 포함한 서구사회는 사거리 5500㎞가 넘는 미사일을 아이시비엠이라고 부른다. 미국과 소련이 대결했던 냉전 시절 미국 본토의 동북 국경과 소련 본토의 북서쪽 국경을 잇는 최단거리가 5500㎞였기 때문이다. 북한이 보유한 ICBM급 미사일은.. 2022. 6. 30.
원자폭탄 vs 수소폭탄, 북한은 수소폭탄을 가지고 있을까? 핵무기는 파괴 에너지가 발생하는 핵반응에 따라 크게 핵분열무기와 핵융합무기로 분류한다. 통상 핵분열무기를 원자폭탄(Atomic Bombs·A-Bombs)이라 하고, 핵융합무기를 수소폭탄(Hydrogen Bombs·H-Bombs)이라 부른다. 과거 핵무기 개발 초기 원자폭탄은 원자 반응에 의해 에너지가 발생하고 수소폭탄은 이중수소(2H)를 핵융합 연료로 사용한 것에서 유래했다. 북한은 지금까지 6차례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런데 4차 핵실험부터 수소폭탄을 실험했다고 말하고 있다. 어디까지 믿어야할까? 원자폭탄(핵분열형) 1945년 8월 6일 아침 8시 15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235 핵폭탄 ‘리틀보이’는 단숨에 6만 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갔다. 핵폭탄이 떨어진 곳의 주변 온도가 최대 4천 도까지.. 2022. 6. 30.
북한의 핵개발과 북핵 실험의 역사 북한의 핵개발 역사 북한에 핵무기 야욕을 키워 준 나라는 소련이다. 소련은 64년 북한 영변에 핵연구소를 건설하고 85년 핵발전소 건설협정까지 체결했다. 조건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이었다. 그리고 핵발전소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었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로 핵발전소 건설은 중단됐고 북한은 독자적인 핵개발로 갔다. 북핵 실험 2006년 10월9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지하 동굴을 뚫어 만든 핵실험장 동쪽 갱도에서 첫 핵실험이 이뤄졌다. 당시 폭발력은 1kt 수준이었다. 인공지진 규모는 3.9였다. 2009년 5월과 2013년 2월, 추가 핵실험이 이뤄졌다. 핵실험 2·3차 때는 2~6kt, 6~7kt으로 강도를 높였다. 인공지진 규모도 4.5→4.9로 점점 커졌다. 실험 원료는 플루토늄.. 2022. 6. 28.
G6 → G7 → G8 → G7 그리고 G20 G7은 선진국 입장을 대변하고 G20는 신흥국 경제의 입장을 강조한다. ‘G’는 그룹(Group)을 나타낸다. 'G~'의 변화를 살펴보자. G7의 성립과 변화 1970년대의 세계 경제는 위기에 대응할 능력을 상실했고, 미국은 더 이상 혼자서 새로운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거나 주요국 간의 갈등을 조정할 수 없었다. G7은 이런 전 지구적 위기 와중에 탄생했다. 1975년 11월 프랑스 랑부예에서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정상이 만나 ‘주요 6개국(G6)’의 첫 정상회의를 열었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자본주의 진영의 주요 국가들이 전 세계 정치, 경제의 주요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틀이 만들어졌다. 다음 해에는 캐나다가 합류해 주요 7개국(G7, Group of Seven)이 되었다. .. 2022. 6. 28.
군사주권 없는 한국, 전작권 전환의 역사 전작권은 유사시 작전·지휘 통제권이다. 한국전쟁 이래 주한미군사령관의 권한이다. 전작권 반환은 노무현 정부에서 본격 추진됐다. 그 계획은 이명박 정권 때 3년 미뤄졌다가, 2015년으로 연장됐다. 박근혜 정권에선 사실상 무기 연기됐다. 그 이유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때문이다. 한국군의 대응능력이 갖춰질 때까지 늦춰졌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역사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이 주한유엔군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이양된 것은 1950년 북한의 남침 직후였다. 1950년 7월 12일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사령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이양에 대한 요청이 있었고, 이를 맥아더가 받아들였다. 1978년 한미연합사가 창설되면서 연합사령관에게 이양됐다. 1991년 작전통제권 이양을 위한 논의가 재개되었.. 2022. 6. 28.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 국제통화기금 총재는 유럽 제2차 세계대전 종결 뒤 열린 브레턴우즈 회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을 탄생시켰다. 두 국제 금융기구는 그동안 개발도상국의 경제정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서구 중심의 세계 금융구조를 유지해왔다. 현재 IMF 총재는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로 불가리아 출신이다. 역사상 최초로 개발도상국 출신 총재가 탄생했다. 그러나 역시 유럽 출신이다.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 출신이 맡고 있다. 왜 IMF 총재는 유럽출신이,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이 계속 가져갈까? IMF는 1946년 출범 이후 지금까지 11명의 총재가 거쳐갔다. 모두 유럽 출신이다. 4명은 프랑스, 2명은 스웨덴 출신이다. 스페인과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불가리아 출신이 각 1명이다. 유럽 출신이 국제 금융시장을 지휘하는 ‘경제 대통령’.. 2022. 6. 27.
핵무기 개발의 역사, 대한민국도 최소 6개월 안에 핵무장 가능! 북한의 6차례 핵실험과 핵보유국 선언으로 한반도에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핵무장론과 전술핵 재배치 등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의 역사와 핵폭탄 기술력을 살펴본다.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미국은 1969년 ‘아시아 문제는 아시아인끼리’란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고 베트남전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1971년 경기 동두천에 있던 주한미군 제7사단도 철수했다. 당시 한국이 군인 5만 명을 베트남에 파병해 미국을 도왔지만, 미국은 한국의 반대를 무시하고 7사단 철수를 강행했다. 미국을 믿을 수 없게 된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국방에 나섰다. 군 전력 증강 사업인 ‘율곡사업’을 시작하고 비밀리에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착수했다. 1978년 9월 26일 미사일 공개 시험 .. 2022. 6. 27.
전술핵 vs 전략핵, 한국 전술핵 배치의 역사 핵무기 확산이 21세기 지구촌 안보의 최대 위협이 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90년대 초까지 냉전 시기의 핵문제는 미국과 옛 소련을 주축으로 한 전략핵무기의 무한 경쟁이었다. 반면, 탈냉전 시대 이후에는 세계 곳곳의 분쟁 당사국들이 앞다퉈 소규모 핵무장과 핵운반 수단 확보를 동시에 추진하는 국지적 범위의 전술핵 경쟁이 확산되고 있다. 전략핵과 전술핵의 차이 전략핵은 통상 적국의 경제나 산업 기반을 붕괴시킬 정도의 강력한 폭발 위력을 가지며, 적대국이 전쟁을 결심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 발로도 대도시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파괴력이 엄청나다. 이는 거꾸로 사용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추진 중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비롯해 잠수함발사탄.. 2022. 6. 27.
주한미군과 방위비 분담금의 문제점 주한미군은 북한의 위협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는 데 핵심적인 존재다. 미국은 1991년부터 특별협정을 맺어 한국에 경비를 분담시켰다. 반대로 주한미군에 시설과 구역을 제공하는 한국이 받는 대가는 없다(필리핀은 미군이 철수하기 전까지 미군기지 사용료를 받았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정의 역사와 문제점을 짚어본다.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의 역사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 관련 내용들은 1966년 체결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소파)에 들어 있다. 소파 5조에는 주한미군 비용 분담 원칙이 명확하게 적혀 있다. ‘한국이 주한미군에 시설과 부지를 무상 제공하고, 미국은 주한미군 운영 유지비를 모두 책임진다’는 게 뼈대다. 이 소파 규정에 따라 1990년까지는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 경비를 전액 .. 2022.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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